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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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 목장인터뷰뉴스
  • 승인 2019.05.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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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대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그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경위를 방청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의했다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 이정화 독후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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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밀 때 600만 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그때 연행된 아이히만의 풍모를 본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을 연행한 모사드의 스파이는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학살 계획을 지휘하던 최고 권위자 아이히만이 냉철하고 건장한 게르만의 전사 모습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상상을 했을것이다.

실제로 마주한 그는 무척 왜소하고 기가 약해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재판은 기가 약해보이는 이 인물이 저지른 수많은 죄들을 낱낱이 밝혀 나갔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그의 모습을 책에 기록했다. 책의 제목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주제가 그대로 드러나 이해하기 쉽지만, 문제는 부제다. 아렌트는 이 책의 부제를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고 붙였다. 악의 평범성이라니! 기묘한 부제가 아닌가?

보통 '악'은 '선'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이 둘은 모두 정규분포에서 최대치와 최소치에 해당하는 양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아렌트는 여기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넘칠 정도로 많아서 시시하다는 의미이므로 정규분포의 개념을 적용시키면 최빈치 혹은 중앙치를 뜻한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의 위치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철학자들 흉상

 

아렌트가 의도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악'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즉 악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대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그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경위를 방청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의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게다가 아렌트는 '평범'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우리도 누구나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다른 말로 바꾸면 보통 악이라는 것은 악을 의도한 주체가 능동적으로 저지르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렌트는 오히려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중략...

이야기를 다시 되돌리면,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은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행은 그 잔인함에 어울릴 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데만 열심이었던 하급 관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중에서  독후감 제공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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