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아웅산 수치, 英國 평범한 가정주부서 民主化 꽃이 되기까지… '갇혀 산 세월만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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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아웅산 수치, 英國 평범한 가정주부서 民主化 꽃이 되기까지… '갇혀 산 세월만 15년'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5.11.10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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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 가택연금을 당했다. 모두 15년을 갇혀 살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아픔도 겪었다. 1999년 부군인 마이크 아리스가 영국에서 암(癌)으로 숨졌을 때,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수지 여사는 "군부는 오히려 '다녀오라'는 입장이었지만, 나가면 입국이 거부될 것이 분명해서 그저 자택에만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웅산 수치(70)라는 이름이 언론에 처음 오르내린 것은 1988년이다. 영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는 바로 이 해에 미얀마의 민주화 투사로 변모했다. 대규모 미얀마 민주화 시위 '양곤의 봄' 사태로 수천 명이 군부에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부터다. 그의 주도로 민주주의민족동맹 (NLD)이 창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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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가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된 이유는 '혈통(血統)'이었다. 아웅산 수치의 부친 아웅산 장군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건국 영웅인 까닭이다.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리더들이 먼저 "영웅의 딸인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아웅산 장군의 장남인 친오빠 아웅산 우(Aung san Oo)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로 미얀마 실정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화 리더들은 수치 여사 자택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 가택연금을 당했다. 모두 15년을 갇혀 살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아픔도 겪었다. 1999년 부군인 마이크 아리스가 영국에서 암(癌)으로 숨졌을 때,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수지 여사는 "군부는 오히려 '다녀오라'는 입장이었지만, 나가면 입국이 거부될 것이 분명해서 그저 자택에만 있었다"고 회고했다.

2009년 가택연금 당시 미국인 존 윌리엄 예토(59)가 "수치 여사를 돕겠다"며 자택의 담장을 넘어온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가 이를 반란행위로 규정하고, 수치 여사를 인세인 감옥으로 옮겨 가뒀기 때문이다. 2010년 연금에서 풀려 집 밖으로 나온 수치 여사는 2012년 보궐선거에서 당선해 마침내 현실 정치가로서 첫발을 디뎠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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