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부기고> 코란에, 지하드를 하다 죽으면 72명의 미녀 상급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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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외부기고> 코란에, 지하드를 하다 죽으면 72명의 미녀 상급을 받는다. .
  • 박동현기자
  • 승인 2015.11.18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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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복음만 전하는 곳이 아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지키기 위해 막을 것은 막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프랑스 테러로 온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교회도 추모기도회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은 불쌍한 종교의 희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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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에 보면 지하드를 하다 죽으면 72명의 미녀 상급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은 죽여도 좋다는 폭력적인 내용이 164번이나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9·11테러를 비롯해 각국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구원에 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 종교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종교가 자기 종교를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단 말인가. 물론 이슬람 신도 중에도 선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면 우리나라가 욕을 먹는다.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왜 한국교회가 욕을 먹었는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대부분이 신실한 신앙을 지키며 살아도, 몇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이지 않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슬람의 코란이 폭력적 지하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테러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슬람의 테러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에릭 제무르가 말한 대로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스스로 자살의 길을 선택했다. 프랑스가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해서 과감하게 수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지금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이슬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프랑스는 이슬람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견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의 정신기조인 톨레랑스(관용)도 국가적 정체성과 사상의 중심을 갖고 해야지, 톨레랑스를 빙자한 폭력적 종교 형태와 요구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 제2, 제3의 테러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프랑스도 이제 관용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뒤늦게 이슬람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슬람 종교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지난 정부(이명박) 때도 이슬람 수쿠크(이슬람국가들이 발행하는 채권)를 도입하려고 했다. 우선 볼 때는 달콤한 떡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프랑스 사태가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수쿠크를 입법화하면 샤리아법이 들어오게 되고 이슬람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들어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사태까지 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할랄푸드 정책도 다시 재검토돼야 한다.

사실 프랑스 테러가 발발하기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테러가 곧 일어날지 모른다는 경고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방관하고 무시하다 이런 참극을 맞게 되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발발하는 테러 사건들은 하나의 징조요, 사인이다.

우리나라도 소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서는 안 된다. 테러는 전쟁보다 더 무섭고 끔찍하다. 그러므로 정부 당국도 이슬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책을 다시 입안하고 이슬람의 테러와 관계될 법한 것은 정말 엄격하고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우리 국민 중에서도 이슬람을 은근히 미화하거나 예찬하고 있는 중동 유학파 출신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직 안전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한국교회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영국교회도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수수방관하다가 샤리아법을 통과시켜 버렸지 않은가. 프랑스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들의 안일한 대응과 침묵이 오늘의 비극을 낳은 것이다. 교회는 복음만 전하는 곳이 아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지키기 위해 막을 것은 막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가 선견자의 안목과 입술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연합하고 사회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와 정치인들도 한국교회의 선지자적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럴 때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소강석목사 (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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