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광복감사주일 공동 설교문(예장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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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광복감사주일 공동 설교문(예장통합)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08.08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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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2개월을 산 조선의 젊은이는 그렇게 꺾이고 말았습니다. 사인이 뇌출혈로 기록되어 있으나 나중 밝혀진 바로는 매일 맞은 의문의 주사가 원인이었습니다. 증거인멸을 위해 형무소와 경찰서 당국이 관련 문서를 모두 소각한 탓에 정확한 증거자료를 찾기 어렵습니다만, 의문의 주사로 인해 사망한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감옥에 갇힌 사촌 송몽규 역시 그 주사를 맞았다고 면회 온 가족에게 밝혔고 3주 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일본 문학평론가 고노 에이지(鴻農映二)는 “당시 규슈제국대학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습니다.
태극기
태극기

그날, 우리는 감사의 노래를 가슴에 담습니다. 시 126편,말씀으로 나아감, 민족의 깊은 밤을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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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그 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 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 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꿈에서도 민족 해방을 염원하였던 시인은 광복의 그날을 보지 못한 채 1936년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검열 때문에 시인은 생전에 이 시를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검열을 통과하지 않고 발표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치열한 저항성을 바탕으로 한 이 시가 검열에 통과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시인의 비밀 노트에 쓰인 시였기에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의식하지 않고 격정적 표현을 담아 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외침은 독자들의 저항의식과 그날에 대한 염원과 환희를 불러 일으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C. M 바우라(C. M. Bowra)는 이 시를 “세계적인 저항시의 모범”으로 소개했습니다. 바우라는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하였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광복의 그 날’을 간절히 염원하는 이 시는 해방 후 1949년에 시인의 유고시집에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많은 문인이 친일한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민족의 밤이 깊고 절망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날’은 아득한 미래 였으며 민족의 가슴 속에 있던 염원이었을 뿐입니다. 어둠이 깊어 희망의 노래조차부를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 이육사나 청산리전투에 참가 했던 이범석조차도 해방의 그 날은 아득한 미래로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항복(일본어: 日本の降伏)은 일본 제국이 1945년 8월 14일에 연합국에 통보하였고, 8월 15일 낮 12시에 쇼와 천황이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한 것을 말한다. 9월 2일에는 일본의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USS 미주리 (BB-63) 선상에서 일본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대신이 정식으로 나와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 종결되었다.
일본의 항복(일본어: 日本の降伏)은 일본 제국이 1945년 8월 14일에 연합국에 통보하였고, 8월 15일 낮 12시에 쇼와 천황이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한 것을 말한다. 9월 2일에는 일본의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USS 미주리 (BB-63) 선상에서 일본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대신이 정식으로 나와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 종결되었다.

당시는 참으로 암담해서 ‘그날’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30년대 초 캄캄한 어둠 속에서 민족 적 염원과 소망을 담은 시인의 노래는 신앙적 염원과도 같습니다. 확고한 신념으로 민족 해방의 ‘그날’을 염원하면서 시인은 민족의 한이 풀릴 그날에 격정에 찬 환희까지 담아냈습니다.

절망의 밤에 몸을 떨다 오늘 본문 말씀도 긴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는 말씀은 칠흑과 같은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임한 하늘 은혜, 그리고 그들의 환희와 결단까지 간결한 표현을 통해 들여줍니다. 먼저 그들의 암담한 삶의 자리를 압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단어로 보여주는 상황은 가히 절망적입니다. ‘포로...’ 이 한 단어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다는 말이지요. 이룬 모든 것,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말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가고 있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낙담하고 포기하고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짧은 시구에서 그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암담한 삶의 처지를 독자들이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칠흑 같은 민족의 어두운 밤에 몸을 떨어야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그러한 눈물에 젖은 사연은 수없이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람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를 들 수 있습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해서 한 학기를 공부하다가 교토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영문과로 옮깁니다. 모두가 굶주림을 친구삼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던 시절에 일본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시를 썼던 그는 조국에 대한 아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젊은 시인은 제국에서 공부하는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때론 시가 너무 쉽게 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식민국 청년의 무력감과 절망을 시에 이렇게 담아냈습니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쓰여진 시,” 일부)고 노래했고,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또 다른 고향,” 일부) 제국주의는 그런 청년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었습니다. 교토 지방법원에서 2년 형을 선고받고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정신도 몸도 강건했던 젊은이는 1945년 2월 16일, 갑작스럽게 옥사했습니다.

27년 2개월을 산 조선의 젊은이는 그렇게 꺾이고 말았습니다. 사인이 뇌출혈로 기록되어 있으나 나중 밝혀진 바로는 매일 맞은 의문의 주사가 원인이었습니다. 증거인멸을 위해 형무소와 경찰서 당국이 관련 문서를 모두 소각한 탓에 정확한 증거자료를 찾기 어렵습니다만,

의문의 주사로 인해 사망한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감옥에 갇힌 사촌 송몽규 역시 그 주사를 맞았다고 면회 온 가족에게 밝혔고 3주 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일본 문학평론가 고노 에이지(鴻農映二)는 “당시 규슈제국대학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리의 ‘포로’ 시절은 그렇게 암담했고, 조선의 젊은 꽃봉오리들은 그렇게 짓밟혔습니다. 아 그들에게 그날이 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은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캄캄한 한밤중과 같은 시간, 인생의 외로움에 떨고 있을 때, 문제와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을 때 거기에 찾아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텅빈 들판에서 몰아쳐 오는 찬바람에 떨고 있을 때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답답한 시간을 다스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고 계셨습니다. 강대국의 억압 가운데서 흑암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두움은 물러가고 새날이 활짝 펼쳐졌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입술에는 절로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놀라운 일로 인해 터질듯한 감격으로 경배했습니다.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했는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방 사람들까지도 그분의 일하심을 함께 찬양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해 끌려가 70년의 고난의 시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었습니다. 그 해방의 축복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주어진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눈물 어린 감사의 노래를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친일과 변절의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았지만 꺼져가는 민족의 등불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건 독립투사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 저항시인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源綠)이었습니다. 의열단에가입하여 북경과 조선을 오가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습니다. 그때 수인번호 264여서 호로 육사(陸史)로 선택했고 1933년 이후에는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여 본명을 대신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17번이나 옥고를 치른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광복의 기쁨
광복의 기쁨, 태극기 시사 행진

1941년 북경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에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꿈조차 꿀 수 없는 시절에 그는 광복의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 “광야”는 이렇게 희망을 노래합니다.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암울한 상황을 벗어나게 할 초인, 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눈이 내리는 한겨울이지만 그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뿌렸습니다. “절정”이라는 시에서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고 할 만큼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무지개를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 “청포도”에서도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라고 광복의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염원하던 해방의 그 날이 선물로 온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우린 씨 뿌리러 갑니다.

감격하며 찬양을 올려드리던 그들은 벌떡 일어납니다. 찬양하면서 다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무너진 성읍과 성전을 세우고 황폐해진 땅을 일구며 씨를 뿌리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라 는 말씀은 씨주머니를 차고 밭으로 나가는 일꾼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가정에, 일터에, 교회에 말씀의 씨를 가지고, 복음의 씨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늘 향해 한 가지를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4절).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풀려났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 묶여 있었습니다. ‘남방’은 이스라엘 남쪽 불모지 ‘네게브 사막’을 뜻합니다.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 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남방 시내’는 말이 시내이지 평소에는 바짝 말라 있습니다. 한강이 말랐다면 누가 그것을 다시 흐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못 합니다. 그러나 우기가 되어 비가 내리면 일순간 흙탕물이 가득한 격류가 됩니다.

말라버린 네게브 사막에 시내물이 흐르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누가 일으킬 수 있습니까? 하늘에서 비가내리면 가능해집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그들은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올해로 우리는 조국 광복 74년, 3.1운동 100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일본 아베 정권이 국제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경제 보복 조치를 내려서 어수선한 상황에서 광복절을 맞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이 제국주의의 부활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지난 달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나라 영공을 침공했고, 북한은 서귀포 까지 공격이 가능한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반도주변에 역사의 파고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으면서 민족의 역사를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억압받던 ‘바벨론’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무력으로 국권과 강토를 빼앗았습니다.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총알받이와 위안부로 끌려가 모멸을 당하다가 외국 땅에서 죽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민족과 교회지도자들을 모두 죽일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성씨와 자유와 젊은이들과 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해방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안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모두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풀어주시던 날, 꿈이든가 생시든가! 그날 우리의 입에서는 함박 같은 웃음 터지고 흥겨운 노랫가락 입술에 흘렸도다.... 놀라워라. 야웨께서 하신 일들! 야웨께서 놀라운 일들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고!”(시 126:2-3, 공동번역).

이 광복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한 가지를 더 기억합시다. 작은 나라, 작은 민족을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부탁하신 씨주머니가 있습니다. 세계 선교의 사명을 맡겨 주셨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본과 화해를 추구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신 말씀에 의지해서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를 꿈꾸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넘어서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통일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민족복음화를 넘어서 한반도 복음화, 일본 복음화, 동북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 이야기를 다음세대에 전하는 화평케 하는자가 됩시다. 화해와 치유, 평화의 노래를 하나님께 바치십시다. 한민족은 억압을 거부하고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민족이 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참된 행복은 정의와 평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힘써 증거하십니다. 주께서 이 민족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가슴에 담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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