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경제학 박사의 한국미래 예측
상태바
공병호 경제학 박사의 한국미래 예측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09.21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는 절대 진리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내 곁에서 설교를 듣다가 "여보, 저게 진리였네!"라는 고백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접고 성경공부에 뛰어든다. 공병호의 성경공부, 최근작인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에서는 "책을 마무리 하면서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꾸 해보게 됩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병호 미국 라이스대학원 경제학 박사 (크리스천)
공병호 미국 라이스대학원 경제학 박사 (크리스천)

경제학 박사 공병호(孔柄淏, 1960년 5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이자 강연자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1987년에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Like Us on Facebook

그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라이스 대학교는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위치한 4년제 사립대학(원)으로, 면화 재벌인 윌리엄 라이스(William M. Rice)가 미국 남부 지역에서 높은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사립대를 만들겠다는 건학이념으로 1912년에 세운 학교이다. 

따라서 학교의 정식 이름은 윌리엄 마시 라이스 대학교(William Marsh Rice University)이다. 흔히 '남부의 하버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학교의 상징동물로는 미네르바의 지혜를 의미하는 올빼미(Owl)를 사용하고 있다.

공병호 박사의 대표작으로는 ‘10년 후 한국, 공병호의 자기 경영노트, 1인 기업가로 홀로서기,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공병호의 고전강독, 등 100여 편이 있다. 현재는 공병호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2013년에는 공병호의 인생사전, 군대 간 아들에게, 진화심리학을 통해 본 5년 후 대한민국, 2014년에는 공병호의 성경공부와 공병호가 만난 하나님,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 을 저술하였다.

2015년에는 리더의 나침판은 사람을 향한다, 2016년에는 3년 후, 한국은 없다 김재철 평전 파도를 헤쳐 온 삶과 사업이야기, 공병호, 탈무드에서 인생을 만나다를, 2017년에는 이용만 평전 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이야기를, 2018년에는 불안한 평화, 이름 없이 빛도 없이-미국 선교사들이 이 땅에 남긴 것, 무기가 되는 독서, 크리스천의 자기경영, 2019년에는 일어서라! 서서 일하고, 서서 공부하라!, 좌파적 사고 왜 열광하는 가,를 집필하였다.

인생 5막

공병호는 자신이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삶을 연극의 5막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인생 1막 학창 시절 부모 슬하를 떠나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라이스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마무리한 시기.

인생 2막 연구원 생활 직장을 잡고 한국 사회를 더 번영되고 더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 보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추진하였던 시기다.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와 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의 지적 토대를 확실히 구축하게 된다.

인생 3막 기업 CEO 생활 40대에 불어 닥친 정체성 위기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기업체에 뛰어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시기. 짧지만 굳게 뛰었고 세상 기준으로 결실을 얻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지만 훗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찾아낸 시기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40대에 접어들 무렵에 겪었던 정체성 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유전자 속에는 공익을 위해서 평생 동안 헌신할 수만은 없는 특성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억은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40대의 어느 날까지 수없이 많이 끄집어 낼 수 있다. 일례로 연구소의 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도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분명히 내세울 수 있는 활동들을 좋아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느 연구소의 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누구인가가 가려지는 지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과 아울러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변신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공익을 위한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아들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었다는 점도 역할을 하는데 그의 회의감은 이랬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조연일 수 밖에 없다. 내가 그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그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조연이 되는 일에 투입하고도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탁월함에 미쳤다.

인생 4막 개인 연구소 설립 공병호 경영연구소를 중심으로 집필과 강연으로 자기 경영과 사회 평론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시기. 공병호 경영연구소(2001년)를 설립하여 자기경영, 자기계발, 성공학, 사장학, 미래 전망 등의 주제에 관한 활발한 집필활동과 강연 활동으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2000년대 한국 사회의 자기계발에 대한 논문으로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동진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2009년 돌베게에서 구본형과 공병호를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는 자기계발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공병호와 구본형의 주요 저작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거의 매년 끊임없이 자기계발 담론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주요한 텍스트를 쏟아냈고 각기 스스로를 1인 기업가로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화한 자기계발 테크닉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두 명이 자기계발 분야의 한국판 '구루'로 추앙받고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의 스타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공병호식 혹은 구본형식의 자기계발 담론의 담론적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구본형은 조잡하고 유치하한 것이기는 하지만 숱한 문화예술가들의 말이나 저술을 인용, 참조하고 나열한다.

이런 점에서 구본형과 공병호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 공병호가 쓴 글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렇듯이, 그는 이른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공공연하게 옹호하는 이념적인 지식인으로서 경제질서나 정부정책 같은 거시적인 대상을 분석하면서 이를 자기계발 텍스트와 결합한다.

어쨌든 두 저자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사회의 자기계발 담론을 대표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기계발에 관련한 수많은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서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권위를 인정 받는다

인생 5막은 절대 진리를 향한 여행길 서양 고전철학 공부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 만나는 경험을 하는 시기, 그가 2011년 9월 28일 한 칼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나에게 누군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의 절반을 고전 읽기와 쓰기에 투자하는 일명 '그레이트 펄슨' 프로젝트를 더 힘차게 추진해 나가려 한다.

딱 한 번 살다 저 세상으로 간다면, 좋은 음악과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천재들이 남긴 걸출한 고전을 탐구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내가 가진 소박한 바람이다. 50세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고전 읽기 작업을 시작하리라 계획하였던 것을 지난해부터 실행에 옮기게 되었는데 가을부터 결과물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진리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내 곁에서 설교를 듣다가 "여보, 저게 진리였네!"라는 고백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접고 성경공부에 뛰어든다. 공병호의 성경공부, 최근작인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에서는 "책을 마무리 하면서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꾸 해보게 됩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