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뭇가지’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5집 이후 약 15년 만에 나온 김수지 씨의 정규 앨범 타이틀이다. 손으로 가릴 수 없는 눈부신 하늘, 마른 나뭇가지들이 드리운 긴 그림자, 그 위에 맑고 투명한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이윽고 화면에 나타난 한 여인은 “어디에나 있고 그리 특별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나뭇가지”이지만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변화시키는 나뭇가지”를 노래했다.
김수지 씨는 1995년 ‘하나님을 느낌’으로 데뷔해 CCM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이 시간 너의 맘 속에’, ‘천사처럼’, ‘영원한 사랑’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심리학 공부를 위해 음악 사역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향했다. 이를 통해 기독교인으로, 음악사역자로 알 수 없던 것을 배우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 언어와 문화의 벽과 문턱도 느겼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약 11년만의 공백을 깨고 ‘라벤더커피’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교회를 어렵게 느끼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2년 전 대중음악 장르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올 가을, 다시 한 번 ‘정규 앨범’으로 본격 ‘김수지’의 컴백을 알렸다. 최근 합정역 인근에서 만난 그녀는 ‘첫 사랑’에 빠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하고 명확한 고백을 했다. 아래는 그녀와의 일문일답.
-공백 기간에 심리학 공부를 하셨는데, 공부하신 것이 아깝지는 않으세요?
“제가 학위를 따거나 전문 직업을 가지려던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거여서요. 원래는 석사 과정도 하려고 했는데 영어로 공부를 하니 힘든 것도 있고, 한 템포를 쉬자고 한 것이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예요. 최근엔 기독교 인문 과정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듣고 있는데, 만약 석사를 하게 된다면 심리학을 할지 신학을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설령 대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공부는 꾸준히 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구약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둘 다 하기엔 힘들 것 같고 더 기도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어떻게 준비하게 되셨나요?
“2017년 ‘라벤더커피’로 활동을 하면서 곡을 계속 써 왔어요. 제 안에 떠오른 생각들을 시처럼 가사로 쓰고 선율이 떠오르면 곡을 입히면서 그게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11곡이 되어서 앨범을 내게 됐어요. 사색에 잠기다 쓰고, 묵상하다 쓰기도 하고, 잠을 자다가 생각이 나서 쓰기도 하고 다양한 계기로 곡을 썼는데요. 싱글 앨범을 낼까도 생각했는데 5집이 나온 지 벌써 15년이 지나 정규 앨범으로 준비하게 됐어요. 원래 봄에 내고 싶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늦어져서 이번에 나오게 됐네요.”
-앨범이 다양한 분위기와 템포로 구성된 것 같은데요.
“음반 배열에 대해서 고민하긴 했지만 참 신기하죠. '빠른 곡 몇 곡 쓰고 느린 곡을 몇 곡 써야지' 생각한 게 아니거든요.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곡을 쓴 걸 모아봤더니 적절하게 빠른 곡이 있고 느린 곡이 있고 미디엄 템포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예전부터 그랬지만, 가끔 ‘이걸 제가 쓴 게 맞나?’ ‘이걸 다시 쓰라고 하면 다시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정말 영감을 주시고 제게 곡을 쓸 능력을 주시는 건 하나님인 것 같다고밖에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달란트’라고 얘기를 하나봐요.”
▲김수지의 6집 타이틀 ‘나뭇가지’ 뮤지빅디오 스틸컷. |
-타이틀 곡이 ‘나뭇가지’인데요. 어떤 곡인가요?
“예전에 사역할 때도, 집회할 때 가끔 나누곤 했던 이야기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바탕이 됐어요. 마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사건을 경험해요. 모세가 나뭇가지를 들어서 쓴 물에 던졌더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한 이야기처럼 제 쓴 물과 같은 인생이 하나님으로 인해 단물로 변했잖아요. 누군가 제 삶의 나뭇가지가 되어 던져진 거였어요.
제가 이 나뭇가지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나뭇가지는 희귀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뭇가지였던 거잖아요? 나뭇가지를 하나님께서 계획을 갖고 사용하시니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신다고. 제가 능력이 있고 계획을 잘 세우고 대단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장소에 평범한 나뭇가지와 같은 저를 던지시면, 하나님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어요.“
-‘목마름에 울부짖는 수많은 사람들’ 등 여러 가사가 참 인상적입니다.
“SNS에 비치는 모습들을 보면 요즘 사람들은 이미지 메이킹을 잘해요.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죠. 젊고 어린 친구들은 컴퓨터 안에서 주고받는 게 훨씬 더 쉬운 세대이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 안에 수많은 고민과 좌절감 자격지심이 얼마나 많겠어요? 찰리 채플린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잖아요. 모든 사람이 같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늘 하나님 앞에 고민하는 것이 많아요. 그런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곡을 쏟아냈어요.
또 ‘3일의 약속’이라는 곡에 대해 말하자면, 잘 아는 분은 아닌데,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서 너무 힘든 일이 있다고 글을 계속 올리셨어요.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우리가 누구나 다 인생에서 힘든 경험을 하잖아요. 그래서 ‘힘을 내시라’고 댓글을 남겼어요.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터널의 끝이 분명 보일' 거라고… 그리고 나서 이 곡을 쓰게 된 거죠. 저도 이런 경험이 있고… 깜깜한 밤 가운데 혼자 있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우리의 삶이 칠흑 같은 어둠일지라도 그 속에 분명 끈이 있고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고백하는 곡이예요.”
-타이틀 곡 외에 애착이 가는 곡과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시다면.
“이게 정말 어려운 질문이예요. 제가 쓴 곡이니 다 사랑스럽고 소중하죠. 그러나 꼭 몇 곡만 얘기해야 한다면, ‘내 아버지’라는 곡이 있어요. 이 곡은 형식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요. 찬송가처럼 A-B 형식으로 구성된 곡이예요. 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고백하는 곡인데, 전 이 곡을 참 좋아해요. 모든 곡이 나누고 싶은 고백을 담고 있지만, 이 곡을 부르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이 우주의 주인,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 나를 언제나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에 대한 고백을 나눌 수 있어서 이 곡을 참 좋아해요.
▲김수지의 앨범자켓 일부. |
그리고 ‘동행’이라는 곡이 있는데, 고등학교 때 제게 큰 영향을 준 책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고 있어요. 수도사의 고백을 정리해서 쓴 옛날 책인데, 그 책을 읽으면서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고 교제하고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사모하고 소망하게 되었어요. 또 초등학교 때 집들이 선물로 받은 판넬이 있는데 ‘나의 말과 모든 행동이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꿈꾸겠죠.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곡이예요.”
-아버지의 신앙을 유산처럼 이어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신앙 전승에 대한 문제가 한국교회 안의 큰 이슈인데, 어떻게 신앙이 잘 전승될 수 있을까요?
“사역을 시작하고 다음세대나 CCM이 걱정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물론 신앙이 더욱 성숙하고 하나님과 더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모습도 있겠죠. 그러나 희망이 없다거나 절망적이라는 이야기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미래는 어둡지 않아요. 기성세대가 노력해서 서포트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또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걸 가르쳐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자랄 때는 전도만 가르쳤는데, 지금은 예배와 교육의 중요성이 조명을 받고 있어요.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열린 예배가 많이 생기고, 성경 공부와 제자훈련도 많이 하게 됐어요. 우리가 말씀을 적용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음을 던지고 성경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거 같아요. 물론 기도도 중요하고, 더불어 그 기도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두 가지가 다 병행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잖아요.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살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전승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결혼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는데요. 예배당 옆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선생님, 선생님을 닮아가는 어린이’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했는데, 감히 ‘나를 본받으라’고 할 자신이 없지만, 내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산다면, 누군가가 그런 모델이 되어주면, 다음세대들이 그 모습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모든 부모가 가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예수님과 늘 동행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우리가 말씀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매일 그걸 묵상하고 생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있는 내가 자꾸 튀어나와요. 혈기왕성한 인간이 하나님 말씀대로 어떻게 살겠어요?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바른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기준과 푯대가 되어주는 게 말씀이죠.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고 나를 정비하고 반성하는 거예요.”
-말씀을 깊이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만큼이 좋은 것 같아요. 아기한테 맛있다고 소갈비를 먹일 수는 없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루틴’이, 그러니까 규칙적인 삶이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삶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게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래도 곡을 쓰다 보니 생활이 규칙적이지 못하거든요. 자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새벽에도 곡을 쓰고 아침에 자기도 하고 그래요. 그게 건강에 좋지 않은 건 누구나 알지요. 매일 시간을 정하고 운동하고 밥을 먹는 것처럼 시간을 정하고 말씀을 보는 규칙적인 생활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것 같아요. 습관처럼 하는 것은 걱정되고 우려되지만, 매일 시간을 정하고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것은 참 귀한 삶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가깝게는 11월 2일 발표회를 해요. 아직 홍보도 많이 못 했는데, 함께 찬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백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틈틈이 교회에서 집회도 하고 있는데요. 장기적으로 몸과 마음 다 건강하게 하고, 6집 음반과 기존의 곡을 가지고 많은 분과 함께 예배하고 찾아뵙고 하는 것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고 또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앨범을 통해 소망하거나 바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저는 곡을 쓰는 사람이니까, 제가 쓴 곡들이 제 고백이지만,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들려졌을 때 그 사람의 곡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감정,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고… 그 무엇이 됐든 그분의 고백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뭇가지’처럼 이 곡들도 하나님의 나뭇가지가 되어 시기적절한 때에 누군가의 삶에 던져져서 위로와 힘과 고백과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