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미래목회환경 4.0' 조성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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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미래목회환경 4.0' 조성돈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12.16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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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극도로 개인주주의화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발전시켰고 항시 ‘ONLINE’ 되어 있는 인간들은 여러 사이버공간의 공동체에 접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편리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곳에서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지만, 실제적인 대면관계에서는 철저한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결국 공동체를 염원하게 된다.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적 공간 및 IT 전자 생물공학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융합의 시대를 대비하라.  2019.12.16.일 총회창립 100주년 기념관 4층에서 제 2회 크로스로드 포럼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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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강사 조성돈 목사(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목회 사회적 이해'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1. '4차 산업혁명이 주는 함의' 소제목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면 이전의 3번의 산업혁명을 전제로 한다. 제1차는 1760년 중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기계의 등장과 함께한다, 제2차 산업혁명은 1860연부터 전기와 석유가 에너지로 나타나고 생산조립라인이 이용하면서 본격적인 대량생산이 가능해 지면서 이루어졌다.

특히 이후 산업이 발전하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잉여 생산이 가능해 졌다. 하지만, 이러한 대량생산은 가능성은 1-2차 세계 대전을 가져 오기도 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1960연대 이후 시작된 전자 정보기술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거대한 계산기에서 시작한 컴퓨터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개인의 책상에 까지 올라왔고, 노트북을 통해 휴대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자동 생산이 가능해 졌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연결되었다. 이제 우리는 제4차 산업 문 앞에 와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아주 정확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속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는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맞이 했었다. 채집과 수렵으로 살아가던 인류가 한자리에 모여 살수 있었던 것은 바로 농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후의 인류는 1만 년 동안 이 농사에 근거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인류가 기계를 방명해 냄으로써 첫 산업 혁명이라 부르는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다. 이후 인류의 산업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만년 만에 맞이한 산업혁명을 겨우 1백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일백년이 지나서 전자 정보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제 50년이 지나고 4차 산업혁명이 일어고 있다고 인류는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1만년을 1백년으로 압축하고 이제 다시 그 백년을 50년으로 압축해 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조성돈 교수,윤혜식 대표, 황인권 대표
조성돈 교수(중앙),윤혜식 대표, 황인권 대표

결론, 기술의 진보는 사회를 변화 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 속도가 가속화 되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 넘고 있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딥러닝 등으로 상징되고 있는 제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 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속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과 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기계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부분 사람의 수고를 이 기계들이 덜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편리함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계 내지는 기술들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여 이제 인간들을 대체해내고 있다. 이제 기술은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는 장기들을 만들어 내고 인간의 마음까지 저장해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들은 인류의 꿈인 불멸을 이렇게 이루어 기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배경에서 결국 공동체의 질문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극도로 개인주주의화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발전시켰고 항시 ‘ONLINE’ 되어 있는 인간들은 여러 사이버공간의 공동체에 접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편리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곳에서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지만, 실제적인 대면관계에서는 철저한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결국 공동체를 염원하게 된다.

진화중인 사슴로봇
진화중인 사슴로봇

그런데 이들이 원하는 공동체는 개인주의화 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그래서 공동채의 로망만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수준이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신앙공동체로서 교회와는 좀 거리가 있다. 이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과 신앙,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이들의 관점을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벼워진 그러나 깊은 고민에서 나온 무게를 짊어진 미래세대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불안하지만, 아직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람들에게 다시 진지하게 '인간과 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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