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욥 선교사 “‘살아달라’는 붙드심 때문에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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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욥 선교사 “‘살아달라’는 붙드심 때문에 살았습니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5.05.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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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도 ‘욥’이 살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살아내지도 못할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고백을 쏟아내는 사람. 고관절을 절단하고 인공관절과 금속줄로 뼈를 감아싸고 힘겹게 몸을 지탱하는 다리를 이끌고 동북아지역 선교지로 부르심을 받은 권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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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욥 선교사에겐 고난의 깊이만큼 통찰과 지혜가 있었지만 삶의 그늘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교사(가명, 45)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어다오”

 
그는 뼈가 휘어지는 희귀병을 앓으며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15번의 수술과 투병생활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죽기로 결심한 적도 있었다. 1994년, 24살 때 종로 한 복판에서 다리뼈가 으스러져 주저 앉았을 때였다. 어머니가 평생 간병하다 암으로 돌아가신지 1년 후, 자신마저 앉은뱅이가 되자 살 소망이 끊어졌다.
 
주님은 그런 그를 말렸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어다오!’(겔16:6) 애절한 그 말씀을 거스를 수 없어 ‘나같은 존재가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에 가득찬 그대로 ‘그냥’ 살았다. 고통을 몸에 지닌채로.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하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갔다. 주저앉은 지 반 년 만에 목발을 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눈길을 헤치며 교회에 도착했다. 기도를 하면서 아픔과 고통이 터져나왔다.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저 이 세상 떠납니다’ 인사하러 갔는데, 그 길이 인생의 새 날이 됐다. 성령님이 위로해 주시고, 예수님이 부활의 생명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평안을 얻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하나님에 왜 살아만 있으라고 했는지 당시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10년도 훨씬 지난 후에 알게 됐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15시간이 이상씩 걸리는 3번의 대수술을 받고 그는 사도행전의 앉은뱅이 사건처럼 목발없이 서서 걸을 수 있게 됐다.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선교사로 헌신을 준비하던 중 걸은 지 한달만에 기적같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는 남들에게 아내를 '천사'라고 소개한다. 장애없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고, 두 아들을 얻고, 선교지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병든 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제 인생을 고통스럽게 갉아먹고 진짜 지긋지긋한 이 질병이 하나님을 위한 병이 될 줄 몰랐지요. 육체의 병이나 가난, 이혼과 같은 실패를 경험한 성도들에게 똑같이 얘기할 수 있지요. 간증책이 출간되고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고 있어요. 우울증으로 자살하려던 사람들이나 방황하다가 상처입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알게 되고 '저도 드립니다'라는 고백을 해 오더군요. 그럴 때 제 아픔과 고난이 기쁨이 되어 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으로 구두 닦는 사람은 구두 닦는 것으로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겁니다. 성공하고 잘해야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병도 고통도 아픔도 선으로 바꿔서 쓰십니다. 특별한 걸 뽑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그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선교지로”

 

은혜를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응답으로 받았다. 신학교학부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2006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는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교에서 의료보장구학과를 다녔다. 선교 목적으로 의수족 공부를 하면서 권 선교사는 ‘남은 인생을 이 보조기처럼 다른 사람을 보조해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2008년 대지진이 일어난 그곳으로 아내와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기를 데리고 선교사역을 떠났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은혜가 너무 커서 선교지로 나간 거예요. 하나님은 지난 40여년 동안 제 삶을 은혜로 온 몸의 뼈 마디마디 각을 뜨셨지요. 그만큼 견디기 힘든 극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 한분만 뼈속까지 인치셨어요. 오직 은혜만을 몸 속 깊이 흔적 남기시고  앉은뱅이를 목사 만들어서 선교지로 보내신 거예요. 선교지에 살면서 고난이 오고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은혜를 계속 부어주시는 걸 경험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절대 등을 돌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삽니다. 그렇게 힘든 여정을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함께 해 주셨는데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지요”
 
그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다. 고통을 견뎌낸 사람 안에서 나오는 삶의 진액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여전히 몸은 불완전하지만, 그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다. 더 이상 고통이 고통이지 않은 사람. 이런 그의 이야기가 알음알음 출판사에까지 알려져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규장에서 ‘나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의 드라마와도 같은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자신은 고통이 익숙한 몸이지만, 지난해 6월 입국한 지 얼마안 돼서 건강검진 중 발견한 아내의 유방암은 고난에 익숙한 그에게도 버겁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겪는 고난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소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저는 삶이 고난이고 병이 삶이 된 사람이라 고통에 인이 배겨서 괜찮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아프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건강한 아내가 나와 결혼해서 선교지에서 고생하고 아파하는 걸 보니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기도를 하면서 70세에 죽나 80세에 죽나 다 죽는 것이고, 사명을 다하고 세례요한처럼 사는게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와 저의 아내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하나님 한 분을 알릴 수 있고, 위로와 용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권욥 선교사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의 이유는 찾지 못했다. 선하신 하나님이 왜 인생에 이런 고통을 주는지 그도 의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을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 사명을 알았기에 온 힘 다해 그 길에만 매진할 뿐이다. 아픔과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것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만들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하는 은혜의 선물인 것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저 자신조차 늘 은혜를 받아야만 살 수가 있어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어떤 고통과 아픔, 좌절도 막을 수 없어요. 하나님 앞에 제 자신을 마음껏 내드리려고 저도 매일 치열한 전쟁을 합니다. 제가 앉은뱅이에서 일어난 건 이벤트일 뿐이지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한분만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것이나 욕심이 없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십자가와 부활을 같이 지니고 사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는 병든 몸이지만, 이것이라도 주님께 드릴 것이 있어 감사합니다”   (간증 goodheave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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