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영화> 성서를 파 헤쳐라 2 고고학적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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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영화> 성서를 파 헤쳐라 2 고고학적 증언,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1.26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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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Solomon 혹은 Shlomo, 히브리어: שְׁלֹמֹה 쉴로모),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971년부터 기원전 931년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민족을 다스린 것으로 여겨진다. 솔로몬 혹은 샬로모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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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의 아들로 이집트 왕녀와 결혼하여 동맹을 맺고, 국내 건설과 국경 방위에 힘썼다. 예루살렘 신전을 비롯한 장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외국과의 통상을 맺어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루어 '솔로몬의 영화'라고 칭송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에 대한 과중한 세금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원인을 가져왔다. 그는 지혜가 뛰어났으며, 문학에도 뛰어나 이스라엘 문학의 시조라 일컬어진다. 많은 작품 중 <잠언>이 남아 있다.[2]

생애, 즉위, 솔로몬은 다윗 왕(영어: David, 히브리어: דָּוִד, 아랍어: داود)과 밧세바(Bathsheba) 사이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로서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네 아들 중 하나이다(대상 3:5). 첫 번째 아들은 예언자 나단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예언한 대로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었다.

다윗 왕의 죽음이 가까워오는 것을 아는 밧세바는 왕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단 예언자에게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와 나단 예언자, 사제 차독(사독), 브나야 등 지지 세력과 함께 이스라엘의 왕에 오른다. 모반을 꾀하던 이복형제인 아도니야와 그를 지지하던 요압, 에브야타르, 시므이 등의 반대파는 숙청을 당한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곧 일천 마리의 제물을 바치는 성대한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 꼬 너는 구하라"고 말하였다(왕상3:4-5, 대하1:7).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다. 그리고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왕상3:10, 대하1:11-12). 이에 하나님은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왕상3:13). 이후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알려졌으며 남쪽 시바 여왕과도 교분을 가졌다.

솔로몬의 과오, 사회적 양극화

솔로몬은 하나님이 준 지혜로써 무역을 하여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했으나, 빈부의 격차가 극심했다.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오경준 목사(서울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를 연구함)는 《우리가 아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홍성사)에서 솔로몬의 시대를 양극화 시대라고 말했다. 솔로몬의 왕실에서는 호화로운 밥상을 누렸지만, 대다수의 민중들은 빈곤으로 고통 받았다.

사회권 사상이 주장되던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민중들이 가난으로써 겪는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다. 또한 민중들을 무거운 세금과 국가 노역에 허덕이게 하였다. 솔로몬의 사후 집권한 아들 르호보암에게 민중들의 대표들이 "노역을 줄여 달라! "고 요청할 정도였는데, 솔로몬과 달리 무능한 정치가인 르호보함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말았다. 당연히 민심은 르호보함을 떠났다.

우상숭배, 말년에는 하나님을 예전처럼 잘 섬기지 않고 왕비로 맞은 이방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 우상 숭배를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그것을 바로 시행하였다. 먼저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였고(왕상11:14-22), 또 다메섹(수리아)의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였다(왕상11:23-25). 나아가서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서 솔로몬의 신복인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열 지파를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르호보암, 솔로몬 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하나님의 선언은 성취되었다. 열두 지파의 연합체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에서 열 지파가 독립하고 두 지파만 남은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 무거운 세금과 국가 노역에 피로해진 백성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왕상12:4).

솔로몬 시대에 국정에 참여했던 노인(장로)들은 정치 경험이 많았으므로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의 노역을 가볍게 해주어야 한다고 교도(敎導)하였지만,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아 백성을 강압적으로 다스렸다(왕상12:6-15).

이에 불만을 품고 열 지파(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에브라임, 므낫세)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독립하여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왕국은 단 두 지파(유다,베냐민)만이 남아 남 유다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그 입지가 줄어들게 되었다. 르호보암의 강압 통치가 이스라엘 국가 분열의 역사적 원인이지만, 그 이면에는 솔로몬 왕의 범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기인한다.

업적, 솔로몬은 나라를 매우 견고하게 다스림. 아도니야를 죽임(왕상2:13-21,25). 제사장 아비아달을 추방함(왕상2:26-27) 요압과 시므이를 죽임(왕상2:28, 왕상2:39-46). 솔로몬은 나라를 지혜로 다스려 최강국으로 만듦.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대하9:26, 왕상4:21). 최대의 부를 누렸다(왕상4:22-23, 왕상10:14). 최대의 안정(평강)을 누렸다(대상22:9, 왕상4:25). 많은 나라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몰려왔다(왕상4:34, 10:3,6-7,23-25).

솔로몬은 최초로 성전을 건축함.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에 기초하였다(대상22,28,29장).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대하3:1). 성전의 식양(설계도)은 하나님이 친히 알려준 것이다(대상28:11-19). 성전을 건축할 때 동원된 인력은 총 183,850명이다(왕상5,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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