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왕이 여호와께 구한 한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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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왕이 여호와께 구한 한 가지는?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6.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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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요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흡족케 했다. 자기를 위해 장수도 부도 원수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을 위해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솔로몬의 아기엄마 찾아주기 재판 이미지 

‘지혜’라 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역사상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솔로몬이다. 그는 ‘지혜의 왕’으로 유명하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마리의 번제를 드리고 난 후 거기서 잠을 자던 중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소원 한 가지를 얘기하라고 말씀하신다(왕상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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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무엇을 구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꿈같은 일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잘 활용한 첫 번째 케이스가 왕상 3:16~28절에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의 판결’로 널리 알려진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다윗을 이어 임금이 된 솔로몬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다.

그들은 둘 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각자 아이를 해산했는데, 사흘 만에 그 중 한 여인이 아이 위에 누워 자느라 아이가 질식되어 죽고 말았다.

아이를 잃은 여인이 밤중에 일어나 다른 여인이 잠든 틈을 타서 죽은 자기 아이와 살아 있는 다른 여인의 아이를 바꿔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 살아있는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싸우다가 해결이 되질 않아서 솔로몬 왕에게 와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한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서로 자기 아이라 우기니 난제 중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나타난 솔로몬 판결의 방식과 결론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바이다. 이 판결 이후에 솔로몬은 오고 오는 세대를 거쳐 ‘지혜의 왕’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앞의 내용인 왕상 3:4~5절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기브온에 가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거기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 밤에 여호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소원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셨다. 솔로몬이 어떤 것을 구했을까? ‘지혜’라고 대답할 이들이 많을 게다. 하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다.

솔로몬이 여호와께 구한 내용이 9절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뭘 구했다고 했나? ‘듣는 마음’(leb shimea, a listening mind)이다.

여기서 ‘듣는 마음’이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말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 새겨듣는 일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는 말처럼, 모든 일은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녀는 부모의 말을 경청해야 하며, 부모 또한 자녀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참 소통이 된다. 아내는 남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며, 남편 또한 아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온전한 부부가 된다.

특히 여기서 솔로몬과 같은 리더들은 그 무엇보다 ‘듣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나 오늘이나 지도자들은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고 지시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국가든 회사든 단체든 최고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듣는 마음이 부족하다.

오늘날도 이러하다면 당시의 왕은 더욱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직 명령할 뿐이요, 의견을 들을 때도 대부분 듣는 시늉만 낸다. 그런 자에게서 공정한 판결, 정의로운 정책이 나올 수 없다.

항상 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 살아온 다윗이 언제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도록 명령한지 아는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 듣기도 좋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시하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 그렇게 됐음을 놓치지 말라. 그의 아들 솔로몬은 어땠을까?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부도 장수도 군사도 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었다. 그가 듣는 마음을 요구한 이유가 뭘까? 그것은 재판 시에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9절을 다시 참조하자.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가 아니라 ‘듣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구체적으로 ‘지혜’를 달라고 하면 될 것이지 어째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지혜가 있어도 듣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다.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과 소원을 들으려 하는 마음이 있어야 재판할 마음을 품지 않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처럼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서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리더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백성들을 위해 ‘듣는 마음’을 요구한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10~12절에 나와 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요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흡족케 했다. 자기를 위해 장수도 부도 원수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을 위해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송사를 듣고 판결을 잘 내릴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그에게 선물로 주셨다. 웬만한 왕 같으면 자기를 위해 부나 장수나 군사를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혜와 총명을 원했을 것이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마음 없이 지혜와 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 백성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유익을 위해서 그것을 추구할 수도 있는 일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듣는 마음’을 요구한 것이다.

여기서 ‘백성을 위하여’란 말은 곧 ‘하나님을 위하여’란 말과 같다. 그 백성이 누구의 백성이던가? 하나님의 백성 아니던가?

그러니 결과적으로 볼 때,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해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요청한 셈이란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의 차별화 된 위대함이다.

오늘 나는 내 양들을 위해 듣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의 고난과 아픔을 들으려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 또는 그런 마음을 달라는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보자.

독일의 시인이요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는 희곡작품이 있다. 그는 작품에서 위에 소개한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를 새로 해석해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닐곱 살 되는 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 주장하는 두 어머니가 있다. 재판장은 고민하면서 이 여인들과 논쟁한다.

그러다가 재판장은 이렇게 판결한다. 흰 백묵으로 원을 그리고 아이를 그 안에 둔 다음, 양쪽에서 두 어머니가 서서 아이의 한 팔씩 잡아 당겨 서로 아이를 자기 쪽으로 당겨가게 한다.

사랑의 힘이 센 진짜 어머니가 아이를 더 세게 잡아당겨 이기게 될 것이라며.... 그런데 아이가 다칠까봐 염려한 한 어머니가 차마 팔을 세게 당기지 못하여 계속 경기에 지게 되는데, 결국 재판장은 그 경기에 진 그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 판결한다.

여기까지 보면 솔로몬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경기에서 진 어머니, 그래서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찾게 된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실상은 이러하다. 6~7년 전 그 아이가 갓난아기였던 시절, 그 아이는 총독의 아이였다. 그런데 당시 반란이 일어나 총독은 살해당하고,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고 황급히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 총독의 하녀였던 한 처녀가 얼떨결에 그 아이와 엮이게 되고, 아이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계속되는 위험에서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다.

그러는 중 그 아이와 처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되었다. 원래 그 처녀에게는 전쟁에 나간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그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마을의 다른 어떤 남자와 위장결혼까지 하게 된다.

아이를 위해 남자와의 사랑도 포기한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 전쟁이 끝나고 총독의 아내도 돌아오고 전쟁에 나갔던 애인도 돌아왔다. 총독의 아내는 자신의 아이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그 총독의 아내는 아이보다 총독의 재산을 탐했기 때문에 아이를 요구했던 것이다. 처녀는 더 이상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 주장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사랑하는 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 주장한다. 사랑하는 남자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한다.

사랑 없는 총독 부인에게 아이를 보낼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산 하나만 보고 자신의 아이라며 무자비하게 끌어당기는 총독의 아내와 달리, 처녀는 아이가 다칠까봐 더 이상 끌어당길 수 없어 그 경기에서 진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재판장은 누가 그 아이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그 경기를 통해 그 아이의 어머니가 다름 아닌 그 처녀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 브레히트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누구인가? 그것은 아이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다. 곧 ‘어머니’란 혈육관계가 아니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어머니다.” 바로 이 사실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 못지않게 감동적으로 와 닿는 기막힌 스토리이다.

신 29:2~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leb ladaat, mind to know)과 보는 눈과 ‘듣는 귀’(beaznaim leshemoa, ears to hear)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렇다. 듣고 깨닫는 마음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신다면 말이다.

솔로몬의 명판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명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무엇이 솔로몬의 판결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 것일까? 왕상 3:28절에 해답이 들어 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솔로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발휘된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이 원치 않는 어리석은 행동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지혜보다 나은 보배가 또 있을까? 없다. 그런데 그 지혜는 다름 아닌 ‘듣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주신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주변 이웃들을 위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들으려는 자만이 지혜란 보배를 소유할 수 있다.

오늘 하나님이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시면 뭘 구할 수 있을까? 최상의 답은 ‘듣는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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