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귀순 북한 병사, 지금은 신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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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귀순 북한 병사, 지금은 신학생이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6.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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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있다. 이름 하여 ‘노크귀순용사’다. 수없는 철책 선을 뚫고 10센티마다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북방한계선 2킬로미터와 남방한계선 2킬로미터의 기나긴 구간을 단 한 개의 지뢰도 밟지 않고 우리 쪽 철색 선을 넘어 귀순한 장본인이다.
노크귀순 북한병사 사진 오른쪽
노크귀순 북한병사 사진 오른쪽

신뢰가 주는 선물,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결코 낙심과 절망에 빠지지 말고 새로운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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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라는 옛 격언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기회가 우리를 찾아오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기회를 찾아가야 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런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뜻하는 일을 이루고 성공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올인(ALL IN)』의 저자 마크 배터슨(Mark Batterson)의 친구 밥 고프(Bop Gop)란 사람이 그런 방법으로 로스쿨(law school)에 입학한 특별한 케이스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개인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페퍼다인(Peperdine) 대학 법대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만하면 명함을 내밀 만하지 않겠나. 하지만 처음 로스쿨에 지원서를 냈을 때의 모습은 낙심천만이었다.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매일, 하루 온종일 대학원 학장실 앞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학장이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장님께서 저를 입학시킬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학장이 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고 가서 교재를 사게!” ‘불합격자를 합격시켜주면 불법 아니냐!’고 따질 이가 있다면 오산이다.

대학원 학장 정도 되면 그런 권한이 충분히 있다. 합격은 시험성적과 전공분야의 실력만으로 고려되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관이나 담당 교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근데 밥 고프는 학장에게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학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 할 줄 아는 이였다. 학장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 그걸로 합격이다. 종종 이런 감동적인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런 이들의 얘기를 듣곤 한다.

2012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있다. 이름 하여 ‘노크귀순용사’다. 수없는 철책 선을 뚫고 10센티마다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북방한계선 2킬로미터와 남방한계선 2킬로미터의 기나긴 구간을 단 한 개의 지뢰도 밟지 않고 우리 쪽 철색 선을 넘어 귀순한 장본인이다.

남쪽 초소에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어서 다음 초소에 문을 두드렸는데 한참 후에 우리 쪽 병사가 나와서 그를 발견하게 되면서 경계에 실패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남한에 와서 2년 만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가 신학생이 되어 우리 학교(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 입학해서 4년간 내 지도와 가르침을 받으며 졸업했다. 그 후 지금은 총신신대원에서 공부를 하며 교회에서 사역 중인데, 모든 게 기적 중 기적이다.

그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에서 군대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 왜소한 체격(아래 사진 맨 오른쪽이 노크귀순용사임) 탓에 여러 번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입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관사 앞에 몇 날 밤을 지새우며 군대 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마침내 이 친구의 집념과 정성에 감동받은 그 사람이 입대를 허락해서 군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합격 불합격의 결정권을 그 사람이 갖고 있었기에 그에게 합격 인정을 받으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 결정권자의 권한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만일 그가 입대를 포기하고 말았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해봤다. 그가 군에 가지 않았으면 탈북 할 사건이 생겨나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남한에 올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가진 그 신앙도 갖지 못했을 게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가 포기하지 않고 입대 결정권자를 물고 늘어진 게 얼마나 소중한 결단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 인내와 끈질김이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영원한 운명까지 바꿔놓을 선택이었음을 그가 알기나 했을까?

누가복음 18장1~8절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 말이다. 여기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계속 찾아가서 괴롭히면 귀찮아서라도 부탁을 들어주는 법인데,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어찌 들어주지 않으시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은 강청기도가 아니라 인내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찍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또 좋은 것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끈기를 갖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글을 주신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

어느 집에 어린 아들이 일을 하고 있는 아빠에게 가서 무언가를 요청한다. 아빠는 귀찮게 자기 일을 방해하니 나가라고 화를 낸다. 아들이 계속 와서 요구한다.

참다못한 아빠가 화를 벌컥 내며 쫓아내려 했다. 그때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그것도 못해? 못하니까 그런 거지?” 그 말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아버지는 마침내 아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이처럼 인간 아빠에겐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고, 자식의 요구가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자존심 상해하지도 않으시고, 우리의 요구에도 귀찮아하지 않으신다.

그분에겐 불가능이 없다. 못할 일 전혀 없으시다. 그런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겐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무엇을 포기한 적이 있는가?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뜻으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도 기도하며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을 열어주시고, 인내하며 간구하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언제까지? 열어주시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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