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가져온 일상의 교란과 기독교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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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가져온 일상의 교란과 기독교적 의미‘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6.29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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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더 조심해야 하며,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이웃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데서 이웃사랑이 시작한다.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과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물리적 거리두기의 수칙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지켜야 한다.
김경안 교수
김경안 교수

‘코로나19’(COVID-19) 사태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타격이란 말이 있다. 전염병으로 이토록 속수무책이 된 일은 100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염병의 역사를 아는 전문가들은 말한다. WHO의 통계를 따르면 현재(2020. 6.12)까지 750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42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 19’ 사태는 무엇보다 ‘일상의 교란’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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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가고 학교로 가던 일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무 걱정없이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면 같이 식사하고, 같이 차를 마시던 일도 이제는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게를 가더라도 물건에 혹시나 비말이 묻었을까봐 수건으로 닦는 일도 생겼다. 생각 없이, 당연한 듯 진행되던 일상의 삶이 모든 부분에서 멈칫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대신, 과거에는 별로 하지 않던 손 씻기를 틈날 때마다 열심히 해야 하고, 어디를 가든지 마스크를 쓰게 된다.

번역 투의 말로 들리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이제는 토속어처럼 익숙해졌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일상은 우리를 품어 안아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해 온 장소요 시간이었음을 이로 인해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일상뿐 아니라 세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인류의 소통과 교류는 눈부실 정도로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 느닷없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체제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세계가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깊이, 얼마나 폭넓게 얽혀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얼마나 서로 자국주의에 빠져 있는지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적 거리'(National Distancing)가 조장되고 있다. 이 땅에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가 겪는 사건이나 사고가,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허락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고 마치 모든 원인을 우리가 아는 척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일은 되돌아보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애통해 하고 연대를 표시할 수밖에 없다.

많은 재난과 재앙들이 인간의 탐욕이나 생활방식과 무관하지 않기기 때문이고, 고통을 당할 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은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모이는 사람들이 있는 한 바이러스는 생존 환경을 확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 조심해야 하며,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이웃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데서 이웃사랑이 시작한다.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과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물리적 거리두기의 수칙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지켜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자매와 함께 하고 서로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시적 예배 모임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몸은 서로 떨어져 있으나 마음으로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애쓰면 좋겠다. 이 가운데 특히 의료 현장에서 애쓰는 형제자매들을 더욱 격려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

전화나 카카오톡, 스카이프(Skype)나 줌(Zoom)을 통하여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더 커졌다. 이 경험은 형제자매가, 같은 공간 안에서, 몸으로 함께, 주 앞에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더욱더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가난과 저개발로 인해 의료장비와 약품이 없는 나라를 돕는 일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세계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온 세계가 서로 도와야 할 때이다.

강하고 잘 사는 나라는 인력도 장비도 약품도 없는 나라들을 지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지구상의 귀한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앞장 서야 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며 모두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생명, 약자의 복지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배우게 된다.

넷째, 일상의 교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의식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는 그 동안 생각 없이 보내던 일상의 삶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함께 지내는 가족과 동료, 함께 사는 이웃과 동포, 함께 이 땅을 걸어가는 세계 시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경험한다.

이번 바이러스는 숨이 목에 걸려 있는 인간의 약점을 공격한다. 숨이 끊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일시적이며 허망한지 더욱더 의식하게 된다. 주어진 일상의 삶에서 이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에게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삼위 한 분 하나님을 더욱 알고자 애쓰며 일상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 좋겠다.

글쓴이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에서 오랫동안 가르쳤으며, 현재는 같은 대학 명예교수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철학신학(Philosophical Theology)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대 졸업 후, 벨기에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나 루뱅 대학교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Ph.D)를 취듣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한국 칸트 철학회 회장, 한국 기독교철학회 회장, 고려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출처 : '신앙과 삶' 편집장의 동의를 받아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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