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 관, 치열했던 '8개 격전지' 흙으로 덮였다
상태바
백선엽 장군 관, 치열했던 '8개 격전지' 흙으로 덮였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7.15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곱 번째 전장터의 흙은 '지리산 남원초등학교'의 흙이다. 1951년 12월 지리산 일대 후방지역의 적 게릴라를 소탕하라는 밴 플리트 미8군사련관 지시에 따라 성공적인 공비토벌작전으로 백 장군님께서 군·관·경 부대를 통합지위했던 '백야전전투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이다. 미8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는 정성화 일병이 이 흙을 더했다.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의 안장식이 엄수된 15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가족과 국가유공자가 허토를 하고 있다. 2020.7.15/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배상은 기자 = 국군 최초 4성 장군인 고(故) 백선엽 장군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이날 열린 영결식 허토(봉분에 앞서 흙을 관에 뿌리는 의식)에서는 백 장군의 주요 8대 전장터에서 퍼 온 흙이 펼쳐졌다.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펼쳐진 흙 한줌 한줌에는 전장터 속 백 장군의 치열한 삶이 깃들어 있었다.

첫 번째 뿌려진 흙은 '문산 파평산'의 흙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시 아군 1사단이 임진강을 방어선으로 파평산 일대에서 적의 공세를 저지한 요충지다. 그때 구축한 진지를 지금도 현 작전책임지역인 육군 25사단에서 보강해 중요한 방어진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첫 흙은 박형수 다부동전우회장이 뿌렸다.

두 번째로는 '파주 봉일천'의 흙이 뿌려졌다. 이 장소는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공세로 3일을 지탱하던 1사단이 서울이 이미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백 장군이 연대장들을 봉일천 뚝방에 불러 마지막 작전회의를 통해 각자 도생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라고 구두명령을 한 곳이다.

이때 백 장군은 "1차 집결지는 시흥이며, 거기도 적에게 넘어갔다면 그 다음 집결지는 지리산이다. 거기서 우리 모두 최후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자"며 전투의지를 보였다. 이 흙은 김주찬 다부동전우회 부회장이 더했다.

세 번째 전장터의 흙은 '한강 나루터'의 것이다. 1사단은 1950년 6월 28일 밤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밀려 연대별로 한강을 넘어야 했다. 백 장군을 포함한 사단사령부 요원은 행주나루터로 가서 15연대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도강했다.

당시 3일간 먹지 못한 백 장군에게 누군가 식사를 준비해주자 그는 "지금 부하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먹을 수 있는가"하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강 나루터의 흙은 이경수 다부동전우회 지회장이 흩어 뿌렸다.

김임선 다부동전우회 미망인의 손으로 뿌려진 네 번째 전장토의 흙은 '다부동 볼링앨리'의 흙이다. 1950년 8월 중순 낙동강방어전투 시 북한군 4개 사단의 집중 공세로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이 돌파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백 장군의 1사단은 미국 제27연대와 미국 제 23연대의 지원을 받아 최초의 한미합동작전으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승리했다. 다섯 번째 뿌려진 흙은 '안성 입장초등학교'의 흙이다. 안성 입장초는 1951년 1월 초 1사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주고 안성까지 내려와 입장초에서 사단지휘소를 설치했다.

백 장군은 입장초에서 반격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장병들의 전투훈련과 정신교육으로 중공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단이 되도록 교육 훈련에 매진했다. 그렇게 다시 반격작전으로 그해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할 수 있었다. 이 흙은 심동호 육군상병이 뿌렸다.

박희성 육군상병이 뿌린 여섯 번째 흙은 '주문진 백사장'의 흙이다. 이 곳은 1951년 4월 말 백선엽 장군은 동해안의 1군단장으로 부임해 군단사령부를 옮긴 곳이다. 군단장으로 부임시 사령부가 강릉 시내에 주둔해 있는 것을 보고 '병이 도시 안에 있으면 썩는다'면서 백 장군은 시내에 벗어난 주문진 백사장 바닷가로 지휘소를 이동시켰다.

일곱 번째 전장터의 흙은 '지리산 남원초등학교'의 흙이다. 1951년 12월 지리산 일대 후방지역의 적 게릴라를 소탕하라는 밴 플리트 미8군사련관 지시에 따라 성공적인 공비토벌작전으로 백 장군님께서 군·관·경 부대를 통합지위했던 '백야전전투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이다. 미8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는 정성화 일병이 이 흙을 더했다.

'화천 소토고미' 전장터의 흙이 마지막 여덟 번째로 뿌려졌다. 이 곳은 1952년 4월 5일 백 장군이 2군단을 재창설한 곳이다. 개전초기 북진작전시 덕천·영원에서 중공군에게 괴멸돼 해체됐던 2군단은 근대적인 군단의 위용을 갖춘 국군의 상징부대로 거듭났다. 존 윌리엄스 주한미군 주임원사가 이곳의 흙을 뿌렸다.

Like Us on Facebook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