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부모의 두 세상’ 송수진(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상태바
‘일하는 부모의 두 세상’ 송수진(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7.27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많이 아프셨나요. 맘도 상했나요. 내가 호 불어 줄께요.” 하는 유난히 맘에 와 닿는 동요를 쑥스러운 듯 눈을 피하며 두 손 잡고 노래하는 아들을 대하자니 ‘그래. 일 년에 단 한 번 기껏 몇 번 아이가 평소 생활하는 시간에 유치원에도 못 가게 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일터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 짧은 십년 새에 생각의 변화를 느낀다. 큰 애가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다닐 때 내내 생각했다. ‘왜 학부모 참관 수업은, 학부모 회의는 오전 10시일까?’ ‘왜 학급 발표회나 방과 후 학교 발표회는 항상 평일 오전에 열릴까?’

Like Us on Facebook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들은 다 집에 있다고 가정하는 걸까? 일하는 엄마 아빠가 기본이고 전업 주부가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하고 일정을 세울 수는 없는 걸까?

큰 애가 어릴 때 잠시 미국에서 키운 적이 있었다. 미국은 회사의 출근 시간도 7시-8시정도로 빠르고 퇴근시간도 빠르면 3시 30분부터 5시 사이에 이루어지곤 했다. 아이를 데려 오기 위해 어린이집에 허겁지겁 가보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하교하고 큰 애 혼자만 남아 있을 때가 많았다. 고작 5시 45분 정도쯤 되었던 시간이었는데도.

미국에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부모들이 모두 와서 아이가 공부하는 교실도 살펴보고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학부모들끼리 인사하는 시간이 종종 생겼다. 아이들이 노래며 공연을 발표하는 학예회 같은 행사도, 신기하게 그런 일정들은 모두 저녁 7시경 혹은 토요일에 열렸다.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나오거나, 늦게까지 학교 돌봄 교실 등에 남아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그 시간에 참석하는 부모와 만나곤 했다.

나느 한국에서 초중고를 모두 보내면서 단 한 번도 밤에 학부모를 초청한 행사를 했던 기억이 없었기에 무척 신선하게 여겨졌다. 저녁 7시경에 열리는 학급 발표회며 학부모-교사 미팅 행사에는 엄마며 아빠, 조부모나 이모 삼촌들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오전 10시, 혹은 오후 1시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학부모 참관수업, 학부모-교사회의, 학예회, 발표회 등을 거치며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일정이니 빠질 수는 없고, 나 또한 빠지고 싶지는 않은데,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부모 역할은 아빠보다는 엄마가 하는 주 업무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워킹맘 이라고 워킹대디 혹은 싱글들과 비교해 직장 내 저조한 참여를 보인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미국처럼 저녁 7시 혹은 토요일에 학급 발표회나 학부모-교사 미팅을 하도록 배려해주면 안될까. 그런 불만, 불편, 학교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다.

십년 정도가 지나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한단다. 둘째는 아빠가, 셋째는 엄마가 참여하는 것으로 우리끼리는 말을 맞춰 놓았다. 그런데 둘째는 여러 날 걸려 연습한 모든 노래, 편지, 만들기, 팬 케익 굽기, 마당 줄넘기, 공룡 화석 찾기, 보물찾기, 사진 찍기 등 이 많은 즐거운 행사들을, 다른 친구들과 달리 혼자만 엄마 없이 한다는 게 무척 싫었던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몇 주에 걸쳐 준비한 그런 행사인데 말이다. 연년생 동생 덕에 평소 늘 의젓한 형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인데, 울고불고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세미나 일정, 회의 일정, 심사 일정을 조정하고 학부모 참관 수업을 갔다.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누구누구입니다.” 라고 발표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아 내가 이 장면을 못 보면 어쩔 뻔 했던가. 결국 이런 것 보자고 일하는 것 아닌가. 기껏 이 아이 평생에 두어 번 있는 기회인데, 나 또한 몇 번이나 볼 수 있을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인데.’

“많이 아프셨나요. 맘도 상했나요. 내가 호 불어 줄께요.” 하는 유난히 맘에 와 닿는 동요를 쑥스러운 듯 눈을 피하며 두 손 잡고 노래하는 아들을 대하자니 ‘그래. 일 년에 단 한 번 기껏 몇 번 아이가 평소 생활하는 시간에 유치원에도 못 가게 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일터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부모를 배려하는 학교의 일정이 필요한 게 아닌, 자녀가 무엇 하며 사는지 둘러볼 수 있게 반차내고 휴가내고 잠깐 다녀오도록 허용하는 세상이 오히려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진화한 생각 말이다. 정상적인 속도라면 전업 주부의 시대에서, 워킹맘, 워킹대디를 배려하는 시대를 거쳐, 개개인 모두를 존중하는 시대로 넘어가야 할 테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그 스타일을 살려, 일하는 엄마를 위해 학교가 일정을 조정하는 과도기를 건너뛰고, 애초에 회사가 일하는 부모가 학교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하는 시대로 돌입하는 건 어떨까.

지금 우리는 짤 수 있는 만큼 짜내어, 비용 대비 효율, 경쟁자 대비 성과를 내는 방법을 추구하고 모색한다. 공적 영역에서는 100프로 직장인으로 살길 원하고, 사적 영역에서는 100프로 부모 인 듯이 취급한다. 사실 그 둘은 동일한 ‘한 사람’인데..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뤄가는 성취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힌다. 삶을 위한 적정 행복 수준이 있다면, 그 최소 수준을 경험하기도 어렵다.“일하는” 부모라는 생각도 필요하고, 일하는 “부모”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아이의 학교는 그가 “일 할 수 있는” 엄마며 아빠인 것을 기억하고, 부모의 일터는 그가 일하고 있는 “엄마며 아빠.”인 것을 배려하는 세상을 고대한다. CMR

필자 송수진 교수는 고려대 정치외교학 학사,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제정책석사, 미국 Simmons College에서 MBA, 미국 University of Rhode Island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고,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글로벌경영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Procter & Gamble에서 부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하였고, 한국 마케팅 과학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소비문화 학회, 마케팅 과학회, 한국광고학회 이사, 한국리더십학교 운영위원, Women In Calling 초대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출처 : 기독경영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