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대교의 유대인과 유대 기독교는 왜 멀어 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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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대교의 유대인과 유대 기독교는 왜 멀어 졌을까?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8.13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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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11-12c)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참여자에게 용서와 천국 보장을 약속하고, 성지의 무슬림을 몰아내고 성지를 구하자는 미명 하에 십자군을 모집하고 이스라엘로 처들어 갔다. 후에 십자군들은 회당을 불사르고 유대인들을 죽였고, 그 때에 찬송을 불렀고, 유대인들은 그 찬송을 부르는 기독교 십자군들 앞에서 죽어 갔다.
필자 이정권 목사 
필자 이정권 목사 

유대인과 유대교는 분리가 어렵다. 나면서부터 유대인이고 유대교인이 된다. 유대인 중에서 예수를 믿으면 유대 기독교인이 된다.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은 처음에 한 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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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 나사렛파라 칭함 받았고, 유대인 중에서 3천 명, 5천 명이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한 뿌리인데 왜 멀어졌을까?

유대인들은 초대 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완성하러 오셨다(마5:17). 예수님의 우선 선교 목표도 유대 민족이었다(마10:6, 15:24). 초대 교회도 유대인에게 복음 전도가 우선이었다(롬1:16, 행3:26)

사도 바울의 전하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신다(행26:22-23)는 것이다. 바울은 골육의 친척(유대인)을 위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롬9:1-3)고 하며,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 (롬10:1).

초대교회 시대 유대인들의 예수를 믿는 자는, 3천 명(행2:41), 5천 명(행4:4)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며 주일을 추가하였고, 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며 유대교 안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그런데, 유대인은 기독교인과 예수에게서 멀어졌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갈라졌다. 왜 일까 ?

유대의 로마에 대한 1차 봉기가 있을 때에 나사렛 기독교인들의 탈출(66-73년)이 있었다. 로마총독 플로루스(64-66)가 대제사장의 예복을 입고 음담패설을 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모독을 당하자 대규모 봉기에 나섰다. 그러자 예루살렘 성 함락을 위해 로마군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예루살렘 포위가 임박해지자 나사렛파 기독교인들은 주님 말씀(눅21:20-21,산으로 도망)을 따라 예루살렘 성을 탈출해 나간다.

2차 봉기와 예수교인들의 결별(132-135년)이 있었다.

AD 117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제우스 신전을 완공하고, 성전 자리에 주피터 신전을 세우려 하고, 유대인의 할례를 금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못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랍비 교육과 토라 공부를 금지했다. 참다못한 유대인들은 132년 바르 코크바 장군과 랍비 아키바의 합동작전으로 2차 봉기한다. 랍비 아키바는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지목하며 저항 정신을 고취시켰다. 이 때 나사렛 유대인들은 오직 예수만이 메시아라 하고 봉기에 불참을 선언하게 되고 갈라서게 된다. 결국 유대교는 랍비 유대교로 발전하고, 나사렛파는 기독교로 발전하게 된다.

갈라진 유대교와 기독교는 기독교의 반유대주의와 대체 신학으로 더 멀어졌다. 유대 민족을 향한 교회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유대인들을 향한 차별과 증오)와 반유대적 가르침이 있었다. AD400년 대 이후,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과 결혼을 금지시키고,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예수교회 리더들(저스틴 마터, 오리겐, 크리소스톰, 제롬) 등은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반유대주의적 설교를 했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대체신학(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였고, 모세의 언약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다)으로 자신들이 새 예루살렘이고 새 선민이라 칭하고, 경쟁관계인 유대교의 유대적인 것을 제거(유월절 금지, 탈무드 독서 불법, 유대적인 글 불태움) 했다. 그리하여 유대인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에서 멀어져 갔다.

십자군 전쟁(11-12c)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참여자에게 용서와 천국 보장을 약속하고, 성지의 무슬림을 몰아내고 성지를 구하자는 미명 하에 십자군을 모집하고 이스라엘로 쳐들어 갔다. 후에 십자군들은 회당을 불사르고 유대인들을 죽였고, 그 때에 찬송을 불렀고, 유대인들은 그 찬송을 부르는 기독교 십자군들 앞에서 죽어 갔다.

중세 카톨릭 시대에는, 유대인들에게 땅 소유를 금지하고, 다른 직업은 갖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주니, 유대인은 세금 징수원, 환전업 등의 천한 직업을 가졌고, 탐욕적 민족의 이미지로 새겨졌다. 또한 유대인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유대인들은 토라나 탈무드의 가르침대로 정결하게 살아가니 질병이 적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1348년에 흑사병이 발생했다고 하며, 리스본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1400년 스페인에서는 카톨릭으로 개종하든지 혹은 죽음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래서 현재도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에 스페인 종교 재판에 못 이겨 고백한 유대인들의 고백을 무효화해 달라는 탄원기도를 하고 있다.

개신교의 반유대주의는 루터(M. Luther)가 유명한데, 그는 말년에, 회당과 탈무드를 없애고, 교회는 유대인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반 유대인 폭동(포그롬, 1881-84,1903-05,1917)으로 많은 유대인들은 학살되고, 유대인들은 이때 주로 미국으로 피했다.

독일의 카톨릭, 루터교인의 글들은 나치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근거를 제공했다. 히틀러는 카톨릭 가정 출생이었고, 당원들은 교회 나갔다. 나면서부터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 되는 유대인들에게는 나면서부터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이 되는 줄 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치와 반유대주의와 기독교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그들의 가족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육적 박해보다 더 슬프고 괴롭다고 한다. 유대인에게 예수는 이방인의 신이거나 유대인을 박해하는 신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아픈 역사 속에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그들에게 회복할 수 있을까?

필자 : 이 정권 목사 (목민 교회 협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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