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명 성매매 리스트…"내 이름도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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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명 성매매 리스트…"내 이름도 있니?"
  • 전병남 기자
  • 승인 2016.02.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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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판 소동과 고모라 성적타락 한국 민낮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만 명이라니요. 강남에 본거지를 둔 조건 만남식 성매매 조직이 작성한 리스트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신빙성이 높을 것이란 판단을 했습니다. 실제 성매매와 성관계가 없었다면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6만 명 성매매 리스트의 실체 6만 명 성매매 리스트는 액셀 형태의 컴퓨터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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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6385명의 성매수 남성들의 채팅 ID, 차량, 직업, 연락처, 신체 특징, 성매매 여성들의 가명, 성매매 성사 여부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dkXXXX(남성 ID) / 진아(성매매 여성) / 010-XXXX-XXXX(남성 휴대전화 번호) / 에쿠스 검정 XXXX(남성 차량번호) / D사 근무 / 매너 좋은 훈남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일부 남성들의 경우 더 자세한 신상이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조건만남 과정에서 노출된 전화번호를 성매매 조직이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입력한 뒤 검색된 개인 정보를 빼냈던 겁니다.

이런 식으로 수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것이 세간을 떠들석하게 한 ‘6만 명 성매매 리스트’의 실체입니다. 리스트는 2011년부터 작성됐는데, 조건만남 성매매 업계의 거물이라고 불린 37살 김 모 씨가 주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리스트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리스트를 최초로 입수한 SBS 취재진은 신상정보가 노출된 남성들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6만여 명과 일일이 통화할 수는 없었지만, 취재에 응한 남성들 대부분의 신상이 리스트에 적힌 정보와 상당 부분 일치했습니다. 애초 이 리스트는 성매매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리스트를 보면 군데군데 ‘블랙’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블랙리스트의 약어입니다. 남성이 제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성매매 여성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갑니다. 이후 이 남성의 전화는 걸러집니다. 리스트가 보도된 뒤 관심은 ‘과연 수사로 이어질 수 있을까’로 쏠렸습니다.

애초 경찰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수사 착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에 ‘경찰’이란 단어가 수십 차례 등장한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확인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수사를 맡았는데 경찰 내부에선 “‘경찰’이란 단어가 안 나왔다면 지능범죄수사대가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말도 나왔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도 추가로 나왔습니다.

조직원이 사용한 대포폰이 대표적입니다. 대포폰엔 "남성을 만나 성매매를 끝냈다" "성관계 후 돈을 받았다" "SNS를 뒤져 남성의 신상을 파악했다" 같은 문자가 담겨 있습니다. 성매매 여성들과 조직원이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물증이죠. 성매매 여성들과 핵심 조직원들의 전화번호도 다수 저장돼 있었습니다. 성매수 남성들의 번호도 나왔는데, 성매매 리스트에 적힌 번호와 일치했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며 자신의 사진을 '인증샷'으로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부랴부랴 중간 수사 결과 발표한 경찰 그런데 경찰은 지난 3일, 돌연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사건의 소강국면에 이뤄집니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사건을 송치하거나 기소하면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경찰은 핵심 용의자 김 모 씨의 신병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내용은 ① '경찰관들의 성매매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② '실제 성매매 알선은 5천 건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김 씨를 검거하고 성매매 조직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보다 경찰 연루 여부를 확인하는 게 수사의 우선순위였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경찰의 성매매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성매매 리스트엔 경찰이라고 적힌 전화번호가 45번 등장합니다. 경찰은 이 중 35개는 일반인의 번호로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나머지 10개는 경찰 번호가 맞지만,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경찰 휴대전화 10개 중 4개는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관의 업무용 전화고, 5개는 경찰 공용 휴대전화라서 누가 썼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수사 결과입니다. 마지막 1개는 성매매 단속과 관련이 없는 경찰관의 전화로 확인됐습니다. 이 휴대전화를 사용한 경찰관은 "왜 내 번호가 명단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합니다. 결국 경찰은 주범 김 모 씨를 잡고 나서 다시 따져보겠다며 판단을 '유보' 했습니다.

일찌감치 "연루 경찰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단정은 이릅니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부 조직원들은 ‘관처리’라는 은어로 불리는 경찰 접대 조직원이 따로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리스트에 ‘경찰’이라고 쓰인 건 성매매를 했다기보단 단속을 피하기 위해 썼을 개연성이 더 큽니다. 실제 유착이 있어도 리스트에 '경찰'이라고 쓰는 식으로 표시하지는 않았겠죠. 김 씨가 잡히면 경찰과의 유착 관계도 재수사가 불가피합니다. ② 실제 성매매 알선은 5천 건이다 경찰은 성매매 리스트 보다는 조직원 A씨가 직접 작성한 8권짜리 성매매 장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했다며, "실제 성매매 알선은 5천 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한번 보시죠. 경찰이 특정한 기간은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입니다. 2011년부터 쓰여진 성매매리스트의 약 1/5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장부를 기준으로 해도 8권 중 2권에 대한 성매매 내용은 누락되어 있습니다. 범행 기간을 뚝 잘라버린 이유에 대해 경찰은 "김 씨가 이미 4건의 성매매 알선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진 적이 있어 해당 기간은 제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경찰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현행법상 성매매 알선 행위는 '영업범'으로 처벌받습니다. 영업범이란 범죄 구성요건의 성질상 동종행위를 반복하리란 예상이 되는 범죄를 말합니다. 판례에 따르면 일정한 기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된 여러 개의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포괄적으로 동일 범죄로 봐야 합니다. 복잡하게 썼지만, 어차피 죄를 물을 수 없으니 2014년부터 2015년 3월까지의 성매매 알선 혐의 5천 건만 보겠다는 게 경찰 주장의 핵심인 셈입니다.

하지만 벌금을 냈다고 해서 김 씨가 2014년 이전에도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매매 사건을 오래 다룬 수도권 지역 모 부장 검사는 "배제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 가중 처벌을 위해 더 면밀히 수사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매매 알선은 5천 건 뿐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이번 사건 규모를 축소 시킨 것 같아 아쉽습니다. 물론 5천 건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말야, 혹시 내 이름은 없니" 결국 김 씨를 잡지 않고선 이번 수사는 확대해 나가기 어렵습니다.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은 한 차례 기각됐습니다. 김 씨와 사이가 나쁜 참고인의 진술 위주로 영장이 꾸며졌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보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국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출국 기록이 없고, 밀항을 할 만큼의 돈도 없어 일단 해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경찰은 늦어도 이번 달 안엔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중간 수사 결과'까지 발표한 이번 수사는,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겠죠. '6만명 성매매 리스트' 보도 이후 농반진반으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내 이름도 있느냐"였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성매매가 만연해있다는 방증이겠죠.  실제 성매매 리스트엔 잘 나간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제법 있었고, 일반인도 많았습니다. 신원이 특정된 성매수 남성들에 대해선 조사하겠다는 게 경찰의 원론적인 입장입니다. 갓 벗겨지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치부가 얼마나 더 드러날 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414255&oaid=N1003411498&plink=POP&cooper=SBSNEWSEND&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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