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1) 이정권 (전 총회세계선교부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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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1) 이정권 (전 총회세계선교부 총무)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10.29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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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대를잇는 고난을 통하여 오늘의 영향력 있는 민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상위 6대 은행 중, 체이스 맨하탄,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유대인 자본이며, 월가의 주요 투자 은행인 메릴린치,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 퍼스트 보스턴 등도 유대인 자본이며, 자본가 그룹 중 상위의 록펠러, 모건, 듀퐁, 멜론, 시티코프도 유대인 자본이다.
필자 이정곤 목사 
필자 이정곤 목사 

유대인(이스라엘)들을 이해하고 전도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는 기독교인이 친숙한 이웃이 아니며,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범위에서, 간략하게 유대인의 최소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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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대를잇는 고난을 통하여 오늘의 영향력 있는 민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상위 6대 은행 중, 체이스 맨하탄,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유대인 자본이며, 월가의 주요 투자 은행인 메릴린치,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 퍼스트 보스턴 등도 유대인 자본이며, 자본가 그룹 중 상위의 록펠러, 모건, 듀퐁, 멜론, 시티코프도 유대인 자본이다.

미국 언론의 머독, 워싱턴포스트, 타임지도 유대인이 운영하며, 문화 영화계의 파라마운트, MGM, 워너, 폭스, 유니버설, 콜롬비아도 유태인계가 소유자이다. 노벨 수상자 20%가 유대인들이다. 이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순종과 역사 속에서 고난과 응전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담이 BC3761년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력은 양력에 3761년을 더한다(우리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2333년을 더하여 쓴다. 민족의 기원력을 쓰는 민족은 한민족과 유대민족 뿐이라 한다).

아담의 10대 후손이 노아이며 노아의 아들 셈의 10대 후손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 이거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 이거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이다. (마1:17)

아브라함 그리고 사울 왕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유대민족의 시작, 그리고 사울 왕부터 여호야긴 왕까지, BC1075-BC597)의 역사. 유대민족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삭, 야곱, 이집트 노예 생활, 모세의 해방, 여호수아 약속의 땅, 토라에 순종할 것을 약속했으나 유혹을 못 이겨 주변 민족들과 섞이며 문화를 받아 들여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왕 제도가 발생했다.

사울, 다윗, 솔로몬 그리고 분열왕국시대를 맞는다. 이 때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다시 정렬시키고, 다가올 메시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BC721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포로가 되고, BC586년 남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며, 유대민족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다.

다니엘의 희망 메시지와 다윗의 메시아 예언(시2, 22, 110편)도 있으나 다윗은 선지자라기보다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바벨론 포로부터 디아스포라까지(스룹바벨 왕부터 예루살렘의 함락까지, BC537-AD70)의 역사. 서기관(소페림)은 왕의 시대에는 높은 관직을 차지했지만, 이후에는 모세 율법이나 유대 문헌을 연구하며, 선지자 역할을 대신하게 되며, 이들 영향력은 탈무드, 구전법을 연구하는 랍비의 권위와 함께 상승한다.

에스라(오늘날 교육부 장관 위치)는 제2성전 건축을 이끌었고, 유대인들은 돌아오거나 포로 로 잡힌 지역에 남기도 했다. 구전법을 이해하는 것은 신약을 이해하고 또한 유대인과 예수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와 셀레우코스 왕조 시대에 이방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BC 171년에 안티오쿠스 4세는 할례와 토라 연구를 금지하고 자기를 신이라 부르며 절하라 했으나 유대인들은 거절했다.

또한 성전 제단에 돼지를 바치고 자신의 신인 주피터에게 봉헌하자 유대인들은 폭발한다. 이때 제사장 맛다디아, 그 아들 유다는 혁명을 일으키고, 3년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성전 청결과 하나님께 봉헌하는 하누카(봉헌, 요10:22 예수님도 지킴)를 기념한다. 이후에, 바리새인, 사두개인의 두 정치 종교적 세력이 등장하고 로마의 통치가 이어지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1C 상황은 로마가 유대를 지배했고 유대인들은 군사적 영웅인 유다같은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런 기대와 갈망은 예수(예슈아)가 메시아라는 것을 놓쳤다. 1C 경 회당(친교, 교육)이 급증하고, 예배 중심은 성전이었으나 70년 성전파괴 후, 회당이 예배의 장소가 된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예수가 희생제사의 완전한 성취라고 믿어, 랍비가 이끄는 종교에 합류할 수 없었고, 또한 예수께서 성전과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피하라(마24:16)하셨기에, 그들은 떠나서 유대 공동체에서 분리가 시작된다.

또한 AD132, 랍비 아키바가 군사지도자인 바르 코크바(그는 58만 명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를 메시아라고 선포하니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어 간극은 더 벌어졌다.

AD135년 바르 코크바의 반란의 실패로 로마는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추방시켜 스페인, 아프리카, 소아시아, 유럽 등지로 흩어 버렸고, 이 디아스포라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끝이 난다.

하지만 갈릴리 주변에 머무른 유대인들도 있었고 포로 시절부터 바벨론(오늘의 이란)에 머무른 유대인들도 있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될 때 피한 것과 바르 코크바 혁명에 동참하지 않은 것과 랍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으로 유대인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게 된다.

그리고 AD325 니케아 평의회 이후에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 이방인 공동체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는 유대인들이 왜 예수를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들어 유대인 내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메시아닉 공동체들이 부상하며 유대인들이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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