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준비한 사형틀에 하만 자신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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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준비한 사형틀에 하만 자신이 처형되었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12.11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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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르보나라는 내시가 황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황제의 살해 음모를 고발한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하만이 자기 집 뜰에 약 23미터 높이의 교수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하만을 그 교수대에 매달아 처형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 교수대에 하만을 매달자 그제 서야 황제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국약성경 에스더의 주인공 에스더 황후(영화 Queen Esthe 캡처) 

페르시아 제국은 오늘날 이란의 영토에 근거한 여러 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를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넓은 의미로는 1979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개의 제국들을 모두 페르시아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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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본래 이란의 남부의 한 주(州)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그 곳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왕조를 그 지역 이름으로 불렀으며, 오늘날의 유럽 언어도 그것을 따랐다. 그래서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어(語)에서는 이 나라를 페르시아라 통칭했다.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스(히브리어: אֲחַשְׁוֵרוֹשׁ)는 다리우스 1세와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486년 10월 다리우스 1세가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한 그는 곧바로 이집트에서 2년간 끌어오던 반란의 진압에 나섰다.

영화 Queen Esthe

무자비하게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고, 자신의 동생을 이집트 총독에 임명하고 혹독하게 다스렸다. 선왕의 다리우스의 유화책에 비해 그는 훨씬 더 강경한 정책으로 제국을 다스렸는데 특히 바빌로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 할 때는 신전을 파괴하고 바빌로니아 왕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황금 신상인 마르둑을 파괴했다.

이것은 그가 바빌로니아의 왕의 지위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칭호를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왕"으로만 표현하고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왕을 빼기도 했다.

영토내의 반란을 진압하고 평정을 되찾자 그는 선왕이 끝내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정벌을 준비한다. 그는 다리우스가 생전에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게 패한 것을 복수하기 위한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기원전 484년부터 481년까지 그는 3년에 걸쳐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는데 제국의 모든 영토로부터 병력을 징발하고, 해군 수송선단을 만들었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때의 전쟁준비를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것이었다고 하며, 헤로도토스는 이때 동원된 병력을 무려 500만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역사학자들은 이를 지나치게 과장된 숫자라고 주장하며, 당시 동원된 병력의 수를 그리스군보다 오히려 적은 15,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병력이 약 170만 명이라고 되어있지만, 현대의 연구자들은 약 30만 명 정도라고 본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 육군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 왕국을 지나 남하하기 시작했고,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최초로 그리스 병사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것이 스파르타의 정예병 300명·노예병사 7000명과의 테르모필레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크세르크세스는 아티카와 아테네까지 거침없이 정복했으나,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그리스 해군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했고,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의 수사(수산)까지 후퇴했다.

이듬해 플라타이아 전투에서도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하여 철수하게 되었고,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78년에 끝났다.

페르시아로 철수한 크세르크세스는 이후에는 페르세폴리스에 기거하면서 방대한 건축 사업을 벌였다. 선왕이 세운 궁전에 더하여 페르세폴리스에 자신의 궁전을 세우고 자신만의 보물 창고를 건설했다.

그의 말년에 대하여는 기록이 별로 없다. 기원전 465년 그의 아들과 아르타바누스 등의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처형하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를 제위에 앉혔다.

기원전 550년-330년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연두색) 인도에서 이집트까지,하늘색은 왕국초기
기원전 550년-330년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연두색) 인도에서 이집트까지,하늘색은 왕국초기

성경에 에스더에 언급된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스)

학자들은 구약성서의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스(히브리어: אֲחַשְׁוֵרוֹשׁ) 대왕이 바로 이 크세르크세스 1세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대인 학자들은 이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에스더 남편 아하수에로(왕명)의 본명은 아스티아게스로서, 페르시아가 아닌 메대왕귝 다리오(왕명)이며, 다니엘 9장에 언급된 자라는 것을 김명현 교수가 과학적 연대기법으로 연구하여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유대인 학자들의 의견이 올바르고, 크세르크세스는 한참 후 페르시아 왕 다리오1세의 아들로서, 에스더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모르드개(מָרדְּכַי 모르데카이)는 고아 조카 에스터의 영적이며 애국적인 양육자였다 

구약성경 에스더 현대인의 버전 발췌 편집

6장1절 ~ 그 날 밤 고대 페르시아제국 크셀크세스 황제(아하수에로)는 잠이 오지 않아 측근 신하들에게 궁중일기(宮中日記)를 가져와 읽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이 그것을 읽는 가운데, 궁궐 문을 지키던 두 명의 내시 빅다나와 헤레스가 황제를 살해하려고 모의하였으나 모르드개(מָרדְּכַי 모르데카이)가 그것을 알고 고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영화는 두 내시가 왕의 식사점검자로 묘사, 유대인 상인으로부터 독약구입)

듣고 있던 황제는 신하들에게 '이 일에 대하여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주었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신하들은 '아무 상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황제가 '뜰에 누가 있느냐?' 하고 묻자 마침 하만(2인자)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교수대에 모르드개를 처형시키려고 황제의 허락을 받고자 궁궐 바깥뜰에 들어섰다.

신하들은 ‘하만이 황제를 뵙기 위해 뜰에 서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황제는 그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하였다. 하만이 들어가자 황제는 '내가 영예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때 하만은 황제가 영예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영예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 황제의 예복과 황제의 말과 왕관을 가져오게 하여 황제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신하가 그 사람에게 황제의 예복을 입히고 그를 말에 태워 성안 거리로 다니게 하시며, 그 신하에게 '황제가 영예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그 사람 앞에서 외치게 하십시오.

말 고삐를 잡고 외치는 하만, 왕의 복장으로 왕의 말에 타고 권위를 알리는 모르드개

그러자 황제는 하만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는 급히 내 예복과 말을 가져다가 궁궐 문 앞에 앉아 있는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네가 말한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시행하라.

하만은 황제의 예복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입히고 그를 황제의 말에 태워 성 안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황제가 영예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외쳤다.

그런 다음 모르드개는 다시 궁궐 문으로 돌아가고, 하만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머리를 싸매고 급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다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내와 친구들 중 지혜로운 자들이 모르드개가 정말 유다사람이라면 하만이 굴욕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며, 그가 계속 모르드개를 대적한다면 결국 파멸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들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황제의 내시들이 와서 하만을 에스더에 잔치에 급히 데리고 갔다.

에스더 7장, 황제와 하만은 에스더의 잔치에 두 번째 참석하였다. 그들이 술을 마실 때 황제가 다시 물었다. '에스더황후,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내가 들어주겠소. 만일 당신이 나라의 절반을 요구한다고 하도 내가 그것을 허락하겠소.

그때 황후 에스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만일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면, 또 황제 폐하께서 기쁘게 여기신다면, 나와 내 민족의 생명을 구해 주소서. 이것이 내 소원이며 간청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손에 팔려 전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노예로 팔렸다면, 내가 이와 같이 황제 폐하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자 크셀크세스황제는 황후 에스더에게 '감히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가 누구요? 그놈이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에스더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악한 원수는 바로 이 하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새파랗게 질린 하만은 황제와 황후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황제가 격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궁전 정원으로 나가자 하만은 황제가 자기를 죽이기로 결심할 것을 알고 황후 에스더에게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황제가 정원에서 잔치 자리로 돌아와 보니 하만이 에스더가 기대고 있는 긴 의자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자 황제는 '저놈이 궁중에서 나와 함께 있는 황후까지 강간하려드는구나!' 하고 외쳤다.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시들이 달려와 하만의 얼굴을 보자기로 쌌다.

그때 하르보나라는 내시가 황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황제의 살해 음모를 고발한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하만이 자기 집 뜰에 약 23미터 높이의 교수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하만을 그 교수대에 매달아 처형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 교수대에 하만을 매달자 그제 서야 황제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준비한 교수형틀에 하만 자신이 처형되었다 

에스더 8장, 그 날 크셀크세스 황제는 유다 사람의 원수 하만의 재산을 몰수하여 황후 에스더에게 주었다. 에스더가 자신이 모르드개와 친척 관계를 황제에게 말하였으므로 그때부터 모르드개는 황제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황제는 하만에게 주었던 황제의 인장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으며, 에스더는 그에게 하만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에스더가 다시 황제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 사람을 죽이려고 꾸민 악한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자 황제는 에스더에게 금홀(접근허락 봉)을 내밀었다. 에스더는 일어나 황제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황제 폐하께서 좋게 여기시고 또 저를 사랑하신다면, 칙령을 내려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황제의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을 전멸시키려고 쓴 조서를 취소시켜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내 민족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며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크셀크세스 황제가 황후 에스더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말하였다. '이제 유다 사람을 죽이려던 하만은 교수대에서 처형되었고, 나는 그 재산을 황후에게 주었소. 하지만 황제의 이름을 쓰고 황제의 인장반지로 인을 친 조서는 취소할 수 없도록 법이 되어 있소.

그러므로 당신들은 황제의 이름으로 유다 사람들에게 당신들 마음대로 조서를 써서 황제의 인장반지로 인을 치시오.' 그래서 즉시 궁중 서기관들이 소집되었는데, 때는 3월 23일이었다. 그들은 인도에서부터 이디오피아이집트까지 127도(道)의 모든 유다 사람들과 총독들과 대신들과 관리들에게 보낼 조서를 모르드개가 불러 주는 대로 받아썼다.

페르시아 제국의 제 2인자로 신분이 바뀐 모르드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였다 

그것은 제국의 각 지방과 민족의 언어와 유다 사람의 말로 기록되었다. 그리고서 모르드개는 그 조서에 크셀크세스황제의 이름을 쓰고 황제의 인장 반지로 인(印)을 쳐서 황제를 위해 특별히 기른 준마 타는 자들을 시켜 전국(제국) 각처에 신속하게 전하도록 하였다.

그 조서에는 황제가 각 성에 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함께 단합하여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또 자기들을 치려고 하는 각 도의 대적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처자와 함께 모조리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할 권한을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조서는 유다 사람들을 죽이기로 되어 있는 12월 13일에 페르시아제국 전역에서 효력을 발생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또 그 조서 초본을 각 도의 법령으로 공포하여 제국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유다 사람들이 그 날을 대비하여 자기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하였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궁중 준마를 타는 자들이 그 조서를 급히 제국 각처에 전하자 그것은 수산성(제국의 수도)에도 공포되었다. 모르드개는 푸르고 흰 관복과 자색의 고운 모시옷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황제 앞에서 나왔다. 그러자 수산성 주민들은 크게 기뻐하며 환호를 보냈다.

유다 사람들에게는 기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날이기도 하였다. 황제의 조서가 전달되는 각 도와 성마다 유다 사람들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그 날을 경축일로 정하고 잔치를 베풀어 즐거워하자 그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유다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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