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활용한 성경 구절이 가져다 준 딜레마' 신성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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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활용한 성경 구절이 가져다 준 딜레마'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1.13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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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성경 구절 잘못 적용했다가 되레 된통 맞은 케이스가 돼버린 것이다. 큰 아들이 존재하는 이상 막내아들 눈썹에 문신일랑 아예 꿈도 못 꾸게 된 것이다. 지금도 아쉽고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다시 시도해보지만 큰 아들이 레 19:28절을 갖다 대면 난 이내 기가 팍 죽고 만다. 그 덕에 뼈아프긴 하지만 소중한 교훈은 하나 얻게 됐다.
등에 용문신 스케치 이미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아버지가 어린아들이 손에다 유성 싸인펜으로 낙서를 했기에, 「손에다 그림을 그리면 안 돼! 그림은 종이에 그리는 거야!」라고 혼을 냈다. 며칠 후, 온천에서 아들과 함께 씻고 있던 도중 아들이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걸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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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뒤따라 가보니 어린아들이 도착한 곳은 등에 커다란 용문신이 그려진, 아무리 보아도 야쿠자처럼 보이는 무섭게 생긴 청년이었다. 아, 그런데 사리 분간이 안 되는 그의 철없는 아들이 그의 어깨를 톡톡 치더니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몸에다 그림을 그리면 안 돼. 그림은 종이에다 그리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아, 아들아 아들아! 너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렸구나」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의 아이인 척 할까」 하고 생각한 순간, 그 험상궂은 청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터져 나왔다. 「그렇구나. 깨끗하게 씻어서 지울게. 고마워」하고 야쿠자는 웃으며 말해주었다. 얼른 아들을 부른 후 그는 그 사람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온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정말 구사일생이었다. 성격이 좋은 야쿠자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철없는 아이의 행동에 아버지가 얼마나 두려워 떨었을지 생각하면 글을 읽는 나마저도 떨린다.

문신 얘기가 나온 김에 수년 전 우리 가정에 일어났던 일을 소개해보자. 미국에서 공부하는 대학교 2학년 큰 아들이 카톡으로 여자 친구와 함께 팔에 작은 문신을 하러 갔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너무 원해서 같이 간 거라 했다. 화가 난 나는 절대 안 되니 빨리 돌아가라고 했다. 아들은 뭐가 문제냐며 여자 친구가 원해서 왔는데 하고 싶다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나는 목사 아들이 문신이 웬 말이냐며 빨리 돌아가라고 했다.

아들은 목사 아들은 왜 안 되냐며 버텼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문신했다간 너랑 나랑 끝이다!’라는 극단의 문자까지 보내버렸다. 부자간의 관계를 끊자고 한 문자를 받곤 아들이 심각해졌다. 문신을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위만 할 거라고 허락해달라고 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겠다 싶어 급히 성경 구절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구절이 레위기 19장 28절 말씀이었다.

필자 신상욱 교수 
필자 신상욱 교수 

급한 불을 끄기엔 딱 적격인 내용이었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앞에 나오는 “죽은 자 때문에”는 생략해버린 채 다음 내용을 보냈다.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내용까지 있으니 정말 최고였다. 역시 하나님 말씀은 능력과 효과가 있었다. 아들은 속이 상하지만 돌아가겠다고 해서 결국은 문신을 하지 않게 됐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 1년 뒤쯤 네 명의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아 한 달간 한국을 방문했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였으니 그동안 못다한 정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서 먹여주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의 오른쪽 윗눈썹 중간에 두드러질 정도로 눈썹이 자라지 않아 비어있는 부분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릴 때 시카고의 지인 목사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 회상되었다.

지인 목사님의 장난꾸러기 아들이 내 막내아들을 갑자기 미는 바람에 날카로운 쇠에 눈썹 그 부분이 찍혀서 피가 나고 살점이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의사에게 데려갔으나 꿰매면 흉터가 더 커질 것 같으니 약을 바르고 아물기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볼 때마다 텅 비어 있는 눈썹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한국에 온 김에 내가 아는 원장 닥터에게 눈썹 문신을 부탁을 했더니 데려 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손님을 많이 보내주기 때문에 무료로 시술을 해주겠다고 해서 막내한테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정색을 하면서 말도 안 된다며 거세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건 ‘unfair’(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뭐가 불공평한 것이냐 했더니, 「아빠가 1년 전 나한테는 성경구절 보내주면서 문신 못하게 해놓고선 지금 동생한테는 왜 문신하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건 경우가 다르다고 답했다.

「너는 재미 삼아 하려던 것이지만 동생은 사고를 당해 원래 있어야 할 눈썹이 나질 않아서 보기 흉하니까 원래대로 카버(cover)해주려는 거야!」 했더니, 아들은 그때 내가 보낸 성경 구절을 들이댔다. 「문신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금지하시는 거라며?」

결국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 성경 구절의 능력 때문에 말이다. 너무 너무 속이 상했다. 보기 흉한 막내아들의 눈썹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성경 구절 잘못 적용했다가 되레 된통 맞은 케이스가 돼버린 것이다. 큰 아들이 존재하는 이상 막내아들 눈썹에 문신일랑 아예 꿈도 못 꾸게 된 것이다. 지금도 아쉽고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다시 시도해보지만 큰 아들이 레 19:28절을 갖다 대면 난 이내 기가 팍 죽고 만다. 그 덕에 뼈아프긴 하지만 소중한 교훈은 하나 얻게 됐다.

‘성경을 함부로 사용하다간 큰 코 다친다!’ 아멘!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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