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국영 방송사 MRTV는 이날 오전 기술적 문제로 방송이 중단됐다고 발표했으며,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및 주요 도시에서는 데이터 연결 및 모바일 이동통신과 페이스 북 서비스가 일부 중단됐다.
BBC News 보도 원문 https://www.bbc.com/news/world-asia-55882489 정보는 영국거주 미얀마인인 기자의 친구인 David T Haokip 목사가 1일 오전 11시에 카카오톡으로 기자에게 보내왔다.
미얀마 군부가 2.1일 오전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자이자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주요 인사를 구금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얀마 총선 당시 군부가 부정 의혹을 제기한 이후 발생했다.
‘버마'라고도 흔히 알려진 미얀마는 2011년까지 군부의 통치를 받았다. 아웅산 수치는 군부 통치 시절 수년간의 가택 연금과 온갖 탄압을 이겨내고 미얀마 민주화 혁명을 이끌어낸 인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총선에서 군부 연계 정당을 누르고 승리한 NLD는 1일 처음 의회를 소집 할 예정이었다. 군 당국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이날 열릴 예정인 의회 소집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었다.
미얀마 국영 방송사 MRTV는 이날 오전 기술적 문제로 방송이 중단됐다고 발표했으며,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및 주요 도시에서는 데이터 연결 및 모바일 이동통신과 페이스 북 서비스가 일부 중단됐다.
BBC 동남아시아 특파원 조너선 헤드는 이번 사태가 완전한 쿠데타로 보이며, 군부가 지난달 10여 년 전 초안한 헌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너던 헤드는 군부가 헌법상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수치 여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를 구금하는 일은 도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이며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묘 뉜 NLD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통화에서 윈 민 미얀마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이날 새벽 군에 의해 구금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인도 구금될 예정이라면서 “국민이 성급하게 대응하지 않길 바라며, 법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금된 고위 인사들의 가족들은 군부가 장관들도 데려갔다고 말했다.
NLD는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전체 선출 의석의 약 83%를 차지하며 승리했다. 이는 2011년 군부 통치 이후 두 번째 선거였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패배 이후 선거가 부정하게 치러졌다며, 대통령과 선거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군부는 이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선거위원회는 부정 선거 혐의를 기각했다.
한편 기자(박동현)는 미얀마 출신으로 싱가폴, 영국 등에 나가 있는 지인 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며, BBC 뉴스 캡처를 카톡으로 받았다. 군부는 선거결과로 영향력을 잃게되자 불법 쿠테타를 이르킨 것으로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미얀마의 현재 소셜케무니케이션 발전과 변화가 과거 군부통제시절과 크게 발전했자는 점이다.
군부가 방송과 신문, 인터넷 서비스를 장악하고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이미 자유의 맛을 본 대중의 폭발력은 예측이 어려워 보인다. 다시 군부의 굴종으로 돌아가기에는 자유의 가치를 누린 민중이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웅산 수치는 누구?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이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 통치에서 독립하기 직전에 암살 당했다.(양곤시내에 아웅산 장군 동상이 있다. 기자 방문) 당시 수치는 두 살이었다. 수치 여사는 한때 미얀마를 통치해온 무자비한 군부를 상대로 시위하며 수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인권운동의 기수로 여겨졌다. 당시 외국인(기자)이 수치 여사 집근처를 가면, 청소년 정보원 등이 살폈고, 다음 미얀마 입국시 불허 될수 있다고 미얀마 현지 지인이 '그냥 지나가고 멈추면 감시원이 뒤를 따른다'고 주의를 준바있다.
그녀는 가택연금 생활을 이어가던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힘 없는 자의 힘을 보여준 뛰어난 예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15년 가까이 가택 연금됐다
2015년 11월 25년 만에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군부를 상대로 그녀가 이끄는 NLD당이 압승했다. 비록 군부가 예비차원에서 만든 미얀마 헌법이 외국인 자녀(수치자녀)가 있는 수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금지했지만, 올해 75세의 수치는 이후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다만 수치는 국가 고문이 된 이후 무슬림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학대로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2017년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라킨 주 경찰 초소 공격에서 촉발된 미얀마군의 무자비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방글라데시로 떠난 바 있다. (역사적인 이유가 복잡하게 엉켜있다)
국제 사회는 이 과정에서 수치가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여성에게 강간·살인·학살 가능성을 막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처음에는 일각에서 그가 복잡한 역사를 가진 다민족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실용적인 정책을 펼친 것뿐이라고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2019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청문회에 직접 참여해 군부에 행동을 변호하며, 남아있는 명성조차 흩어지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다만 수치 여사는 로힝야족을 적대시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불교 신자가 대부분인 미얀마 국민에게 여전히 인기가 높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한때 미얀마를 통치해온 무자비한 군부를 상대로 시위하며 수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인권 운동에 앞장 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