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흙수저 인생인가? 신성욱 교수
상태바
누가 흙수저 인생인가?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10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도현 시인이 쓴 바로 이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다. 그땐 조금만 키가 더 크고 얼굴도 지금보다 좀 더 잘생겼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열등감이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 장애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학력 콤플렉스를 가진 이도 적지 않다.
안도현 시인이 쓴 바로 이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2011년 4월 19일, 22살 꽃다운 나이의 모델 김유리가 음독자살로 생의 종지부를 찍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는 죽기 3일 전인 16일 오전 2시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 번을 생각해도 세상엔 나 혼자 뿐이다.”  김유리 양이 직접 남긴 내용이다.

Like Us on Facebook

나는 이 내용을 몇 십 분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며 많은 아쉬움과 비탄에 잠긴 적이 있다. ‘저 글을 쓸 때에 누군가가 절망에 빠진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외롭고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으면 저런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까? 혹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그런 분이 없는지 모르겠다. “세상엔 나 혼자 뿐이라고...”

그 몇 년 후 새벽 1시쯤 전화가 걸려왔다. 김포에 사는 나랑 동갑인 00신대원 제자 전도사였다. 이 늦은 시각에 웬일이냐 했더니,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다가 교수님이 생각이 나서 목소리라도 한 번 듣고 가려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 했더니, “도무지 세상 살 맛이 안 나고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도 자기 같이 떨어지는 사람을 누가 쓰겠냐고, 하나님도 자기 같이 무능한 사람은 못 쓰실 거라며” 막 울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 모두를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꼭 목회를 해야만 하나님이 쓰시는 건 아니라고, 다른 걸로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고’ 간곡히 권면을 했다. 김포까지 그 시각에 너무 먼 거리라 그 전도사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전도사 몇 명에게 새벽에 전화를 했더니 그중 한 사람이 받았다. 사정을 말하고 얼른 택시 타고 그 집에 가서 자살 못하게 권면하라고 해서 불행한 일을 막은 적이 있다.

그날 새벽 그 전도사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지금은 신대원을 졸업하고 와이프랑 ‘본죽’이라는 가게를 경영하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잘하고 있다. “나는 못난 사람이야, 재주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고 나 같은 사람 누가 써주겠어? 하나님도 나 같은 사람 사용하지 않으실 거야!”

필자 신성욱 교수
필자 신성욱 교수

우리 중에는 그런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분이 없는지?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좋아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있는데, 그들 중 패배주의와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이들은 더욱 심각했다. “나는 실패자야” “나는 할 수 없어!” “나 같이 돈도 빽도 없고, 스펙도 부족한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어.” “하나님도 나 같이 허물 많은 사람은 사용하기 힘드실 거야!”

이런 부정적인 사고와 절망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 중에도 그런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한 번쯤은 다 나보다 더 좋은 배경에 태어나,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여 좌절과 절망과 무력감에 사로잡힌 때가 있었다.

이런 이들에게 확실하고도 분명한 답을 제시해주는 본문이 하나 있다. 디모데후서 2장이다.

이 본문은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병사라고 3-4절에서 말씀한다. 둘째는 농부라고 6절에서 말씀하고 있고, 셋째는 일꾼이라고 15절에서 말씀하고, 그리고 넷째는 그릇이라고 20절에서 말씀한다. 2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여기서 ‘큰 집’은 교회를 말한다. 교회 안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 그릇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금 그릇과 은 그릇은 귀하게 쓰이는 것이고 나무 그릇과 질 그릇은 천하게 쓰이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천한 그릇이라고 해서 쓰이지 않는 건 아니란 사실이다. 우리 하나님은 천한 그릇이라도 사용하신단 말이다.

금 그릇과 은 그릇은 나무 그릇과 질그릇에 비해 값이 나가는 귀한 그릇들이다. 그래서 잔치나 연회 같은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그릇들이다. 반면 나무 그릇과 질그릇은 평범한 그릇들이기 때문에 아주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된다.

오늘 나 자신은 어떤 그릇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금 그릇이나 은 그릇보다는 흙 그릇이나 질 그릇에 속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집안 환경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른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역시도 어릴 때 그랬다. 키는 작은데 얼굴이 검다고 친구들이 연탄이라고 놀려댔다. 그래서 나는 연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는 않았다. 그걸 차면 마치 내 얼굴을 차는 것 같아서, 친구들은 공처럼 잘도 찼지만 나는 차질 못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다. 안도현 시인이 쓴 바로 이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다. 그땐 조금만 키가 더 크고 얼굴도 지금보다 좀 더 잘생겼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열등감이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 장애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학력 콤플렉스를 가진 이도 적지 않다.

가수 박진영이 지은 이런 노래가 있다. 놀 만큼 놀아 봤어. 가사는 이렇다.

 “나 놀 만큼 놀아 봤어 나 놀 만큼 놀아 봤어 왠지 몰랐어 뭐 때문에 열심히 살지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 먹고 먹어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안정이 되면 다시 불안해지고 싶고 불안해지면 다시 안정이 되고 싶어 생각해 봤어 정말 갖고 싶은 게 뭔지 근데 가져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난 놀 만큼 놀아 봤어 또 벌 만큼 벌어 봤어.

결국엔 또 허전했어 언제나 그때뿐이었어 아침에 술 깨 겨우 일어날 때 그 기분이 싫어졌어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 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 불려줘 Please save me 눈감을 때 두렵지 않기를 눈감을 때 웃을 수 있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로.”

마치 박진영의 전도서 버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로...” 그런데 아쉽게도 박진영은 그 길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노래 속에는 해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오늘 우리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을 향해 가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힘찬 발걸음이 아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상태로 기진맥진해서 억지로 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도대체 이유가 뭘까? 잘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지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코 쓰임 받지 못할 거야!”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나님도 나같이 죄 많고 못난 사람은 절대 사용하지 않으실 거야!”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 다양한 그릇들이 있음을 소개한다. 귀한 그릇도 있고 천한 그릇도 있다. 귀한 그릇은 귀하게 쓰임 받는데, 천한 그릇은 쓰임 받을 수 없다고 했나? 아니다. “천한 그릇이라도 쓰임 받는다”고 되어 있다. 금 그릇과 은 그릇이 아니라고 쓰임 못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 금수저가 아니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흙수저라도 쓰임 받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딤후 2:21절에 그 해답이 나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렇다. 비결은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라 하더라도 더러운 그릇은 음식을 담을 수 없고 활용될 수도 없다. 볼품없는 그릇이라 하더라도 깨끗한 그릇이면 음식을 담아 손님들에게 내어놓는다.

그렇다. 깨끗한 그릇이면 된다. 우리 하나님은 학력이나 경력이나 외모나 스펙을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속마음이 정결하고 거룩한 그릇이라면 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흙수저 인생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절망과 패배주의에 빠져있진 않는가? 세상과는 구별된 정결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기드온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소중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으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