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하운드와 하운드(犬)의 차이. 신성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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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하운드와 하운드(犬)의 차이.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14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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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냥감인 가나안을 이미 먹이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사냥감으로 주신 먹이인 가나안 족속의 냄새를 맡고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가서 싸우자!”(민 13:16-33)며 담대한 믿음의 보고를 올린 것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그레이 하운드
(犬) 달리기를 잘하는 그레이하운드

개를 좋아하는 이들이 늘어감을 본다. 세상에 수많은 개의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대조가 되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개가 있다. 하나는 그레이하운드(greyhound)이고 다른 하나는 하운드(hound)이다. 그레이하운드는 몸이 길고 날쌘 사냥개이다. 미국 최대의 장거리 버스 회사 이름도 그레이하운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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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운드(hound)는 그레이하운드처럼 날쌔지도 못하고 몸이 길지도 못한, 그저 그런 평범한 사냥개이다.

그레이하운드는 사냥감을 보고 사냥하기 때문에 사냥감이 눈앞에 안 보이면 사냥을 포기하곤 한다. 반면, 하운드는 냄새를 맡고 사냥하기 때문에 사냥감이 안 보여도 산골짜기와 도랑 구석구석을 뒤지며 종일 사냥을 한다. 하운드야 말로 사냥개다운 사냥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레이하운드와 하운드의 사냥방식은 사냥개의 사냥방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보이는 현실만 따라가는 그레이하운드형 인생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따라가는 하운드형 인생도 있다. 하운드형의 인생은 어찌 보면, 바보 같다고 여길 수 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 같은 인생을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이고 힘을 빼는 행동이라 간주될 수 있다.

먹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사방팔방을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 그것은 하운드형의 인생을 비꼬는 말이 될 것이다.

(犬) 시냥을 잘하는 하운드
(犬) 시냥을 잘하는 하운드

민수기 13장에도 이와 흡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나안을 탐지했던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와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그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의 내용은 부정적인 내용과 긍정적인 내용, 둘로 나뉘었다.

먼저 부정적인 보고를 올린 열 명은 그레이하운드와 하운드 중 어느 유형에 속하는 리더였을까?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를 했던 열 명은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좋긴 하지만 그 족속들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정복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어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은 하운드와 같은 리더였다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가나안 땅이 그들의 밥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어째서? 벌써 사냥감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냥감인 가나안을 이미 먹이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사냥감으로 주신 먹이인 가나안 족속의 냄새를 맡고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가서 싸우자!”(민 13:16-33)며 담대한 믿음의 보고를 올린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스타일의 리더가 되어야 할까? 그레이하운드형인가, 아니면 하운드형인가? 최근 원치 않는 어떤 부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짐을 경험하고 있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는 이들로부터 문의들이 온다. 이럴 때 영적 리더로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레이하운드형 리더인가 하운드형 리더인가를 스스로 테스트하는 기회로 다가온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부정적이고 암담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긍정적이고 소망적으로 선포할 근거가 생겨났다.

지난 과거에 이보다 훨씬 더 힘겹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선한 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날 우리를 향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생각해볼 때 결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없음을 본다.

필자 신성욱 교수

그렇다. 사람들은 지난 과거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정작 기억해서 활용해야 할 지난날의 긍정적인 내용들은 잊어버린 채, 기억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내용들만 죄다 기억하고 사는 인생들이 너무도 많다.

홍해도하의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도 별 것 아닌 마라의 쓴 물로 인해 불평을 토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라.

성경을 읽노라면 밥 먹듯이 불평하고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본다.

오늘부터 눈앞에 보이는 암담하고 부정적인 현실만 보고 살아가는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의 냄새만 추구하며 언제나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가는 하운드와 같은 리더로 살았으면 좋겠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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