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content)가 왕 이라면 문맥(context)은 신이다. 신성욱 교수
상태바
콘텐츠(content)가 왕 이라면 문맥(context)은 신이다.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22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문맥 고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본문의 의미를 취급하는 일에서 황금률, 하나의 절대적인 요청이 있는데, 그것은 정직이다. 우리는 우리가 택한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본문을 언제나 문맥 가운데서 다루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법칙이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 사망. 에디슨은 백열전구·축음기·영사기·믹서 외에도 미국 내에서만 1093건의 특허를 보유했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다. 1892년 설립한 GE의 공동설립자다.
필자 신성욱 교수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 사망. 에디슨은 백열전구·축음기·영사기·믹서 외에도 미국 내에서만 1093건의 특허를 보유했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다. 1892년 설립한 GE의 공동설립자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 사망. 에디슨은 백열전구·축음기·영사기·믹서 외에도 미국 내에서만 1093건의 특허를 보유했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다. 1892년 설립한 GE의 공동설립자다.

책을 읽을 때 문맥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작업이다. 문장의 전후 문맥을 전혀 알지 못하고 글을 읽으면 백이면 백 각기 다른 뜻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Like Us on Facebook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나는 ‘말’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하자. 이게 우리가 타는 ‘말’(horse)을 좋아한다는 뜻인지, 입으로 하는 ‘말’(language)을 좋아한다는 뜻인지, 초(初, 처음)가 아닌 ‘말’(末, ‘마지막’)을 좋아한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어학연수차 미국에 도착한 첫 날, 한국인 여학생에게 미국인 선생이 이렇게 물었다. “Do you miss Korea?” 그러자 그녀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No, I am not Miss Korea.”(아녜요, 전 Miss Korea가 아닌 걸요). 그녀는 “한국이 그립지?”라는 영어문장을 “너 미스코리아니?”로 착각한 것이다.

문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Are’가 아닌 ‘Do’가 사용된 것도 그렇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스 코리아’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다. 단어는 문장 속에서, 문장은 단락 속에서 의미가 결정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보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언 중 대부분이 잘못 알고 있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발명왕 에디슨이 한 말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란 말이다. 대부분은 에디슨이 영감보다는 노력에 더 강조점을 두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영감도 필요하겠지만 노력이 그 이상으로 중요함을 그가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뜻은 정반대이다. 한 잡지사 기자가 “지금까지 발명 중 가장 영감 있었던 발명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자, 에디슨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음.. 아마도 신생아의 두뇌에서 천재성을 발견했다는 것이지요. 갓 태어난 만큼 천재성이 머물기 좋은 자리는 없어요.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1% 영감과 99% 노력만 있다면 가능할지 모르겠소!”

에디슨의 의미는 “99% 노력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노력해요. 하지만 난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1%의 영감이 있어요”란 것이다. 곧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천재가 되려면 노력도 필요하지만 1%의 영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앞뒤 맥락을 파악하지 않은 채 한 문장 그 자체에만 고정되어 해석한다면 저자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할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러면 성경 속에서 그런 대표적인 구절을 찾아보자. 수 1:7절의 말씀이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1:7)

여기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구절을 ‘정치적으로 우파나 좌파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후 문맥을 참조해서 살펴보면 그와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7절 다음에 나오는 8절까지 포함해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이것을 문맥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그것으로부터 우측으로나 좌측으로나 돌아서지 말라’(do not turn from it to the right or to the left)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신 교수 수정역)

필자 신성욱 교수
필자 신성욱 교수

본문의 정확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책)으로부터 돌아서서 조금이라도 곁길로 가지 말고 언제나 그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다.

7절만 보면 거기서 말하는 ‘우나 좌’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나, 바로 다음 절인 8절을 참조해보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율법책’을 기준으로 봤을 때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말고 정로를 추구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문맥을 고려한다는 것은 이만큼 중요한 일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의미를 잡아내기 위해선 반드시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함이 필수적이다.

하나만 더 살펴보자. 행 19:3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이 말씀을 근거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극장이나 연극장에 가면 안 된다고 설교하는 목회자가 있다고 들었다. 바울이 이 설교를 들었다면 얼마나 쓴 웃음을 지었을까?

이 본문은 영화나 연극을 금하기 위해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당시 바울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에게 거기 들어가지 말 것을 권고하기 위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문맥 고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본문의 의미를 취급하는 일에서 황금률, 하나의 절대적인 요청이 있는데, 그것은 정직이다. 우리는 우리가 택한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본문을 언제나 문맥 가운데서 다루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법칙이다.”

본문에 정직하다는 것은 전후 문맥의 흐름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땐 문맥의 중요성을 꼭 기억하고 시작하자.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