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 '후추'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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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 '후추'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 박동현
  • 승인 2021.04.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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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후추를 정복하기 위해 치열한 패권다툼을 했다. 두 나라간 분쟁과 반목이 심화되자 가톨릭 교황이 중재에 나섰다. 교황은 대서양의 서경 46도 37분을 경계선으로 하여 동쪽에서 새로 탐험한 땅은 포르투갈령으로, 서쪽은 스페인령으로 삼기로 했다.
후추열매
후추열매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인 국밥 한 그릇에 송송 썰어넣은 파와 김치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한가지 더 있다. 국밥에 돼지고기 냄새를 없애주고 특유의 향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후추가 그것이다. 징비록(懲毖錄)』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후추를 선호했고 귀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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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때 조선에 온 일본사신은 후추를 이용하여 그들의 침략야욕을 시험했다. 사신을 맞이 한 조선은 주연을 베풀었다. 술잔이 돌고 흥취가 무르익자 갑자기 일본사신은 통후추를 꺼내어 술좌석에 마구 뿌려댔다. 그러자 자리를 같이한 조선의 벼슬아치, 거문고를 타던 악공, 춤추고 노래하던 기생 할 것 없이 서로 다투어 통후추를 줍기 시작하였다.

이를 본 일본 사신은 관리들의 규율이 이렇듯 문란하니 이 땅을 침략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라 생각하고 침략의 야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런데 후추가 귀한 향신료인 것은 알지만,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럽대륙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 덕에 주로 볏과식물이 자라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볏과 식물의 줄기와 잎은 인간의 식량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단지 초식동물의 먹이로만 적합하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소, 돼지, 양 등의 초식동물을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초식동물을 가축으로 기르게 되는 축산업이 유럽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추운겨울에는 가축을 먹일 먹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위가 닥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가축을 도살해 고기로 만들었다. 냉장기술이 없기 때문에 고기는 부패하기 쉽다. 어쩔 수 없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금세 노린내가 나고 부패될 수밖에 없었다. 

강한 향과 독특한 매운맛을 가진 후추가 고기의 노린내를 없애주고 풍부한 고기맛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유럽인들은 후추에 열광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기후 여건 때문에 후추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후추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했고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비싼 가격으로 수입한 후추는 귀족들의 차지가 되었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 교수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그러던 중 이슬람에게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자 후추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통후추 한 알의 가격이 같은 무게의 금 가격과 같아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럽인들은 직접 후추의 원산지인 인도에서 향신료를 가져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여왕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것도 후추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시기였으므로 선박들이 유럽의 해안가에서 서쪽으로 항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마르코폴로가 200년전 육로로 여행한 길을 해로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를 목표로 항해를 시작한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막상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후추를 찾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이에 질새라 포르투갈도 지중해 바깥의 넓은 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에 도달했고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뱃길을 열게 되었다.

1498년 포르투갈 선단이 인도의 고아(도시이름)에 입항하는데 성공했고, 향신료를 잔뜩 싣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향신료무역은 포르투갈이 독점하게 되었고 '후추를 얻는 자 세계를 얻는다' 라고 할 정도로 후추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후추를 정복하기 위해 치열한 패권다툼을 했다. 두 나라간 분쟁과 반목이 심화되자 가톨릭 교황이 중재에 나섰다. 교황은 대서양의 서경 46도 37분을 경계선으로 하여 동쪽에서 새로 탐험한 땅은 포르투갈령으로, 서쪽은 스페인령으로 삼기로 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손에 넣게 되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후추의 천국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제치고 향료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후추라는 향신료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이 재편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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