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름 모삼열 선교사 조선에서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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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름 모삼열 선교사 조선에서 삶과 죽음.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12.13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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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삼열 선교사는 당시 서민들이 많이 살던 한강주변에 복음을 전하려고 기쁜소식(The Glad Tiding) 이란 나룻배로 한강을 오르 내리면서 전도를하여 1900년부터 1906년 까지 25개처에 예수믿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백정 박성춘과 왕족 이재형이 곤당골 교회에서 나란히 장로되니 모삼열 선교사를 통한 주의 뜻이요 조선 역사의 새로운 장르였어라.
모삼열 선교사와 가족 

1982년 9월21일 32세에 미국북장로교회 파송으로 조선(한국)에 왔다. 모삼열 선교사는 당시 서민과 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뜻을 정하고, 그들의 인권을 찾아주려고 1986년 고종황제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고종은 백정의 신분제한 철페를 윤허 해주었다. 모 선교사의 큰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백정白丁
조선시대 도살업·유기제조업·육류판매업 등을 주로 하며 생활하던 천민층. [내용] 고려시대에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 농민층을 의미하던 고려의 백정은 고려 말과 조선 초를 거치면서 평민·양민(良民)·촌민(村民)·백성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대신에 백정이라는 용어는 주로 도살업·유기제조업·육류판매업 등에 종사하던 천민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백정을 고려시대의 백정과 구분하기 위해 ‘신백정(新白丁)’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모삼열 선교사는 당시 서민들이 많이 살던 한강주변에 복음을 전하려고 기쁜소식(The Glad Tiding) 이란 나룻배로 한강을 오르 내리면서 전도를하여 1900년부터 1906년 까지 25개처에 예수믿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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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곳 서대문밖 경기도 고양군 연회면 대현리 망건당골의 서민을 위해 1906년에 대현교회(서울 서대문구 연세로2 다길 8/예장통합/서울서노회)를 설립했다. 모삼열 선교사는 1906년 12월22일 46세 젊은 나이에 소천했다. 

대현교회 입구에 세워진 설립자 모삼열 선교사 기념비 
대현교회 입구에 세워진 설립자 모삼열 선교사 기념비 

백정들의 아버지   모삼열 선교사

일렁이는 파도 넘어 이역만리 낯선 나라 사람들, 말도 통하지 않아 스스로 바보되는 춥고 배고프고 어두운 조선땅 신분제 남존여비 샤머니즘 역병에 떨어지는 목숨들 찾아 미북부 일리노이즈 그랜드 릿지 풍요로운 삶을 주님께 맡겼노라.

 

무디 목사의 가르침 입어 죄에서 살리신 주의 은혜 따라 구겨진 여성들의 삶을 곧게 펴고 백정들의 아버지가 되었노라. 백정 박성춘과 왕족 이재형이 곤당골 교회에서 나란히 장로되니 모삼열 선교사를 통한 주의 뜻이요 조선 역사의 새로운 장르였어라.

나의 달려갈 길 오직 예수 사람 위에 사람 없는 주의 은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 조선의 백정을 해방시셨도다 詩 원 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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