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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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2.12.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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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을 항상 상기했다고 한다. 그는 기도하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기도문에 보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제가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주시고, 올바른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올바른 것을 행하도록 도와주소서...그리고 저를 모든 것에서 진실되고 정직하고 명예롭도록 만들어 주소서...’라고 했다. 
트루먼 대통령

한국은 미 트루먼 대통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준 최고의 은인, 트루먼의 결심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 소련의 스탈린, 중공의 모택동이 합작하여 남침하여 6·25전쟁을 겪었고, 그 전쟁의 잿더미로부터 벗어나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쟁에서 우리에게 가히 절대적인 은혜를 베푼 우방의 대통령을 잊지는 않았는가?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Harry S. Truman)이다. 그는 가정 형편으로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1월 20일 미국에서 루스벨트는 대통령에, 트루먼은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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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4월 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急逝)로 인하여 트루먼은 부통령이 된지 82일 만에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재임 당시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에, 신속하게 미군의 개입과 유엔 차원에서 한국을 돕도록 하는 일에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참전을 이끌어 낸 최고의 주역이다. 우리는 그의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그리 인기가 높은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의 재임시 인기가 올라갔던 때는 1948년 재선될 때와 1950년 한국에서의 6·25전쟁 발발 때 전 미국민의 단합된 의지로 참전 결정을 지원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퇴임이후,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시오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다음으로 대통령의 업무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을 항상 상기했다고 한다. 그는 기도하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기도문에 보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제가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주시고, 올바른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올바른 것을 행하도록 도와주소서...그리고 저를 모든 것에서 진실되고 정직하고 명예롭도록 만들어 주소서...’라고 했다. 

애치슨 국무장관

한국의 6·25 전쟁에서 공산화를 막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견인하여, 기억되는 세 분의 은인이 있다. 트루먼 대통령,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출신의 직업 정치인이었다. 애치슨 국무장관,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변호사이며 외교 관료였다. 또 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 그는 명문 집안의 최고의 출중한 직업 군인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용기, 인격,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신봉이 분명했고,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한국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막아주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트루먼 대통령에 대하여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 경기도 파주의 임진각에 세워진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올해로 트루먼 대통령이 서거한 지 50주년이 된다. 
     
그런데 이를 기억하고 28년 동안 트루먼 대통령의 서거일인 12월 27일(미국 시간) 임진각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 앞에서 모여 추모식을 하는 단체가 있다. 사단법인 한미친선연합회(대표회장 홍사광)에서는 해마다 이 행사를 진행해 왔다. 올해에도 27일 임진강의 매서운 추운 날씨 속에서도 트루먼 전 미 대통령 50주기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행사는 한미친선연합회 정책위원장 박정봉 박사의 사회로, 내빈 소개, 개회선언,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한미 양국 국기에 대한 경례, 양국 국가 제창에 이어서, 이억주 목사의 기도, 홍사광 대표회장의 인사말, 총재 반종수 박사의 추모사, 주한미국대사 필립 골드버거의 추모사, 기독교위원장 이억주 목사의 추도사가 있었다. 그리고 남북중앙교회 최문수 목사의 기도로 마쳤다. 

6.25 한국전쟁 현장 전략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박사 

 홍사광 대표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핵무기까지 등장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하소연하고 싶고, 평화를 이룩할 비책을 알려 달라’고 호소하였다. 
     
총재 반종수 박사는 ‘트루먼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하나님의 사랑을 한반도에서 실현하는데 모범을 보이셨고, 이 땅에서 전쟁을 중단하도록 했다’고 술회하였다. 

미국 골드버그 대사는 보내준 추모사에서 ‘자유를 향한 확고한 의지, 선구적인 리더십과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굳은 일념을 바탕으로, 트루먼 대통령은 민주적 원칙에 기반하여 국제 질서 수호를 다짐한 국가들을 결집시키며, 북한의 무자비한 침략에 강력한 대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 유산으로 대한민국이 번영을 누리고,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인 동맹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이억주 목사는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직후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의 파견을 결정했고, 기자들이 어떻게 중요하지 않아서 철군했던 나라에서 전쟁이 나자마자 즉각 군대를 파견하느냐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는데 그것은 하늘의 명령이라는 의미였으며, 그러므로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인간성 회복의 길, 평화의 길로 치닫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역설하였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런 우방국과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하늘의 뜻을 따라, 우리나라를 피로써 도와준 결과이다. 우리는 이런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켜나가는데 국민과 국가의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애굽기 4:12)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이억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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