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조선이 갖춰야 할 정부 형태와 조세제도는 물론 법률제도의 바탕을 만들었으며,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확립했다. 또한 수도(개경)를 한양(서울)으로 결정하고 이전 사업도 단행하였다.
개혁 정치를 주도했고, 임금 한 사람보다는 재상 중심의 협업 통치를 꿈꾸었다. 한양(수도)을 위해 궁과 성벽의 배치를 설계부터 완공까지 건설 사업을 주도했으며 경복궁의 전각이나 문(門) 등의 이름도 거의 다 정도전이 정했다.
한양(수도)에 4대 문의 이름도 유교의 5상(五常)이며 인성의 근본인 仁, 義, 禮, 智, 信으로 정했다. ①동대문(仁: 興仁門, 측은지심) ②서대문(義: 敦義門, 수오지심) ③남대문(禮: 崇禮門, 사양지심) ④북대문(智: 弘智門, 시비지심) ⑤궁궐 중앙(信: 普信閣, 光明之心)으로 나누어 표시하였다.
여기서 義로움(正義, 公義)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표시했는데, 자신의 바르지 못함을 부끄럽게 느끼며 다른 사람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맹자>의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언급된 사단(四端)의 하나로써 인간의 염치를 가리키는 덕목이다.
대한민국 22대 총선에 각 당의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이 염치 없는 후보들을 적지 않게 보아 왔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잘 하려다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마음에는 주저함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응당한 것이다(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낸다’는 식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보일 때 절망하게 된다. 무법천지요,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거나 ‘가랑잎이 솔잎 보고 시끄럽다’고 하는 소위 적반하장(賊反荷杖) 현상을 보게 되니, 정치 불신에 스스로 창피한 자괴감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합당한 사람은 내치고 흠결 있고 범죄 이력도 있으며 염치도 없는 사람을 내세우는 편법, 사천이 많았다.
이런 사례가 구약 <사사기>에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산 속에서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안수하여) 자기들의 왕을 세우기로 하였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들을 다스려 다오.’ 그러자 올리브 나무가 말했다. ‘내가 어찌 신(神)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 이 기름 짜는 귀한 일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
그러자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에게 ‘네가 와서 우리들을 다스려 다오’라고 청했다. 그러자 무화과 나무가 말했다. ‘내가 어찌 군침 도는 단맛의 과일 내는 귀한 일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
그러자 나무들은 포도 나무에게 ‘네가 와서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청했다. 포도나무는 ‘내가 어찌 신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 만드는 귀한 일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며 사양했다.
그러자 나무들은 풀덤불에게 갔다. ‘네가 와서 우리를 다스려 다오.’ 그러자 풀덤불이 나무들에게 말했다. ‘진정으로 나를 너희 왕으로 삼고자 한다면, 모두 와서 내 그늘 아래로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풀덤불에서 불을 뿜어내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모두 불살라버리겠다.’”(사사기 9:7-15)
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들 중 전과자가 상당수 있는데, 그들이 이 똑똑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지도하며 국가 경영을 하겠단다. 코미디 같은 현상을 겪어야 되는 국민들은 괴롭고, 슬프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무법천지, 무도한 나라, 잘못한 사람이 큰소리치고 활보하는 나라가 되었는가.
국회의원이라고 꼭 성직자다울 필요까진 없겠으나, 자기의 전과 기록을 무슨 훈장처럼 자랑하는 것은 좀 불편하다. 징역 언도를 받은 자가 실형 대신 정당을 만들어 전국을 누비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사회는 살고 싶지 않다.
역사 왜곡에 궤변을 주장하는 자가 사회 지도층에 들어갈 수 있는 나라는 분명 정상적인 나라는 아닌 것이다. 원칙이 통하지 않으면 변칙이 성행하게 돼 있다. 생명이 질식되면 죽음이 넘실거린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학교 14-15대 전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