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는 항상 청중들이 빽빽하게 모여서 환호를 지른다. 그 장면을 본 미국의 여류 정치학자가 처칠에게 "총리님은 청중들이 저렇게 많이 모이는 것이 기쁘시겠습니다" "기쁘지요. 그러나 내가 교수형을 당한다면 두 배는 더 많은 청중들이 모여들 거라는 생각으로 정치를 합니다"
항상 늦잠을 잔다는 처칠에게 노동당 상대 후보가 선거연설을 하면서 "늦잠꾸러기에게 나라를 맡길겁니까 유권자 여러분" 처칠은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면서 "저는 새벽 4시에 못 일어납니다 예쁜 마누라와 살다보니 늦잠을 잡니다. 저도 못생긴 마누라와 결혼 했다면, 4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처칠은 유머로 자기 약점을 방어하고 상대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의회 출석이 있는 날에 늘 지각을 하는 처칠에게 야당의원들이 질책을 하자 ‘의원 여러분도 예쁜 마누라와 같은 침대에서 자 보십시요. 저를 이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의회출석 전날은 각방을 쓰겠습니다’ 야당의원들은 웃느라 2차 공격을 하지 안했다.
처칠은 조심성이 부족해서 잘 넘어졌다고 한다. 연설을 하려고 연단에 올라가다가 넘어지자 청중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처칠은 일어나 곧바로 연단에서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 하신다면 또 한번 넘어져 드리겠습니다" 장내는 조용해 졌다.
처칠이 나이 80세가 넘어서 은퇴를 한 후, 한 여자가 젊었을 때의 처칠의 유우머를 상기하며, "처칠경 바지(지퍼) 단추가 풀어졌습니다" "네 부인 안심 하십시요. 죽은 새는 새장이 열렸어도 도망가지 못 합니다"(80세 노인들은 이해가 되어도 젊은이들은 글쎄 할 수 있는 비유다)
처칠이 "대기업 국유화"를 주장하던 노동당과 싸우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처칠이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라이벌인 노동당 당수 '애틀리' 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빈자리는 그의 옆 자리 뿐이었다. 하지만 처칠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른 자리가 나자 비로소 볼일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애틀리가 물었다. "내 옆자리가 비었는데 왜 거긴 안 쓰는 거요? 나에게 불쾌한 감정이라도 있습니까?" 처칠이 대답했다. "천만에요. 단지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를 하려 드는데, 내 것이 국유화 되면 큰일이지 않소?" '애틀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이후 노동당은 국유화 주장을 철회했다.
처칠이 총리가 되고 첫 연설을 하고 난 1940년 어느 날, 연설을 마친 처칠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만세를 하는 것처럼 손을 벽에 붙이고 볼일을 보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처칠이 말하길, "글쎄, 의사가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라고 해서 말이오."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가 있던 때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 그가 묵던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처칠은 알몸으로 허리에 수건만을 두른 채였다. 그런데 루즈벨트가 들어올 때 그만 그 수건이 풀려 스르르 내려가 버렸다.
루즈벨트는 매우 난감해 하며. "이거 미안하게 됐소." 라고 말했다. 그런데 처칠은 루즈벨트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 대영제국은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게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소이다." 라고 말했다.
대 정치가 처칠은 '상황적긍'에 탁월했다. 원고에 없어도, 어떤 난감한 상황이 순간적으로 주어져도 기회로 망들어 생산적인 정치에 적용했다. 그의 순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능력은 교육의 결과로 보지않고, 타고 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평가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출처 : 토스 받은 글에 사진 찾아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