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2-3장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이겨야 한다!’고 권면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cf. 2:11)
[서머나], 2:17[버가모], 2:26[두아디라], 3:5[사데], 3:12[빌라델비아], 3:21[라오디게아]). 여기서 ‘이긴다’(νικάω)라고 하는 의미는 계12:11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 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처럼 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이 감내해야 했던 박해와 순교를 전제한다. 그들은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 할 큰 도전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공할만한 도전이란 과연 무엇일까? 앞으로 세 차례의 글을 통 해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계시록의 상황(context) : 종교혼합주의의 도전 (1)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록의 메시지 가운데 두드러지는 경고가 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여기서 말하는 ‘니골라 당’(黨)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정이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견해가 ‘니골라당'은 행6:5에 나오는 니골라 집사와 영지주의자들과 관련된 것’이라는 교부(敎父) 이레니우스의 주장이다(Irenaeus, Against Heresies 1.26.3).
그러나 계시록의 내적 증거는 이 견해와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인다. 버가모 교회를 향한 말씀과 비교해 보면 니골라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2:14-15)
계2:14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의 특징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자들’로 소개한다. 다시 말해서 발람의 무리들은 교회 안에서 우상숭배와 영적 타락을 부추기 던 자들이었다. 바로 다음 절인 계2:15은 그들이 바로 ‘니골라 당’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결국 니골라당과 발람의 무리는 교회 안에 존재하던 우상숭배자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세력은 두아디라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계2:20).
결국 니골라당,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이세벨의 무리들은 모두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겨도 괜찮다’고 선동하던 타협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종교혼합주의의 도전에 맞서 계시록은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죽기까지 싸워 이기라 고 권면한다.
주지하다시피 소아시아는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믿는 다신교 사회였다.
대표적 으로 행19:21-4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에베소는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행19:35).
에베소의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위용을 자랑했었다(Antipater of Sidon, Greek Anthology-2-9.58). 에베소 아데미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의 소아시아 도시들은 종교사업으로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있었다.
데메드리오 같은 은장색들의 선동에 에베소의 거대한 극장이 삽시간에 인파로 가득 찰 정도로, 당시 그리스 종교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베소를 비롯한 당시의 도시들은 축제 때마다 도시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기독교인 들은 이러한 제사에 불참하곤 했다.
그래서 지진, 가뭄,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사 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우리 수호신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러한 재앙이 일어났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당시 이교도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인들은 도시의 안녕을 저해하는 불순한 세력들이 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니골라 당, 발람의 교훈, 이세벨의 무리들처럼 종교적 타협을 종용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지탄에 더하여, 경제적 고립과 정치적 위협이 소아시아 기독교인들을 도전해 오고 있었다는 점이다(다음 (3)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