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위한 요한계시록(7) 장신대 김태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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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요한계시록(7) 장신대 김태섭 목사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4.08.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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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보는 방식대로 신약성경의 장과 절이 나뉜 것은 프랑스의 궁정 인쇄업자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가 출간한 1551년 판(版) 헬라어 신약성경에서부터이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계시록을 해석하는 관점들(views)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구체적으로 계시록의 주요 본문들을 해석하기에 앞서, 이번 호에서는 계시록의 구조(structure)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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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의 구조적 기준: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와 숫자 ‘7’

계시록은 ‘난해한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계시록의 구조 역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란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계시록을 설명하는 기준에 따라서 복잡하거나 산만하게 그 구조를 전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시록은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와 숫자 ‘7’만 기억하면, 의외로 그 구조가 명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는 계시록에 총 4번 등장하는 표현이다(계1:10; 4:2; 17:3; 21:10).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이 표현은 ‘성령 안에’(in the spirit)란 의미이다. 우리말로는 ‘성령에’와 ‘성령으로’로 각각 달리 번역되었으나, 원어로는 차이가 없는 동일한 표현이다.

1:9 ‘성령에 감동되어’: 서론이 시작, 4:1 ‘성령에 감동되어’: 본론이 시작, 17:1 ‘성령으로’: 첫째 결론이 시작,21:1 ‘성령으로’: 둘째 결론이 시작, 위와 같이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가 나오는 근처에서 서론, 본론, (이중)결론이 나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왜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가 나오는 위치(계1:10; 4:2; 17:3; 21:10)와 계시록의 구조가 나뉘는 지점들(1:9; 4:1; 17:1; 21:1)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성경은 원래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방식대로 신약성경의 장과 절이 나뉜 것은 프랑스의 궁정 인쇄업자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가 출간한 1551년 판(版) 헬라어 신약성경에서부터이다.

이처럼 장과 절의 구분이 본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ἐν πνεύματι[엔 프뉴마티]가 나온 지점이 아닌 그 ‘근처’에서 계시록의 구조가 나뉜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계시록의 구조를 조금 더 세분하면 다음과 같이 전개할 수 있다.

서두인사 (1:1-1:8) · 서론 : 부활하신 예수님(1:9-1:20) 일곱교회에 대한 권면(2-3장) · 본론 : 하늘보좌의 환상(4-5장) 일곱 인(6:1-8:1) 일곱 나팔(8:2-11장) 두 세계의 전쟁(12-14장) 일곱 대접(15-16장) · 결론: 이중결론. 바벨론의 멸망(17:1-19장) 사탄의 멸망과 최후 심판(20장) 새 하늘과 새 땅(21:1-22:5) 맺는 말 (22:6-22장 끝)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시록은 구조적으로 숫자 ‘7’이 중요하다. 서론의 숫자 ‘7’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2-3장)를 가리킨다. 그리고 본론의 숫자 ‘7’은 세 개의 일곱 시리즈, 곧 일곱 인(印),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론의 숫자 ‘7’로 묶이는 세 개의 일곱 시리즈는 계시록 6장부터 16장까지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시록 전체 22장의 중간 줄기를 구성하는 핵심이 바로 본론의 일곱 인(印),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개의 일곱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계시록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의 안목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에는 ‘이항 대립(二項對立, binary opposition)’ 구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선(善)과 악(惡)처럼, 개념적으로 대립되는 두 개의 항목이 쌍을 이루는 구조를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물로 상징되는 ‘어린 양’(善)과 ‘666 짐승’(惡)의 대립구조이다.

이 둘 중에 ‘누구를 경배하고 따를 것인가?’에 따라서, 계시록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어린 양의 백성’(7:1-8)과 짐승의 표를 받은 ‘짐승의 백성’(13:16-18)으로 나눈다.

이 둘 가운데 계시록 본론의 일곱 인(印)은 ‘어린 양의 백성에 대한 메시지’를 다룬다(cf. 6:9-11). 2천 년 전 당시, 문서에 ‘인’(印)을 쳐서 봉함(seal)하는 것은 이 문서의 내용이 중간에 누출되지 않고 온전히 수신자에게 전달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더구나 1개가 아닌 7개로 인을 쳤다는 것은 그 내용이 매우 기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렇게 중요한 문서는 적국의 백성이 아닌 자국의 백성, 다시 말해 짐승의 백성이 아닌 어린 양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된다.

반면에 계시록 본론의 일곱 나팔은 ‘짐승의 백성에 대한 경고의 나팔’이다. 짐승의 백성은 거듭된 징조와 환란을 통한 경고에도 오히려 우상에게 절을 하고 회개하지 않는다(cf. 9:20-21).

그래서 결국 ‘짐승의 백성과 나라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본론의 일곱 대접, 곧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cf. 15:1)이다. 그 구체적인 심판의 내용을 다루는 것이 첫 번째 결론(17-20장) 곧 ‘악의 심판’(惡)이며, 이어지는 두 번째 결론은 ‘새 하늘과 새 땅’ 및 ‘의인의 구원’(善)을 노래하며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계시록의 큰 흐름을 염두에 두고, 다음 호부터는 계시록의 주요 본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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