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라”고 배웠다.
상태바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라”고 배웠다.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12.30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음만난 명기(名器) 과르네리
▲ 바이올리스트 박지혜

나는 어리 때부터 기도는 섬세하게 하라고 배웠다. 그래서 내가 갖고 싶은 악기를 세부적인 부분까지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곤 했다. 악기의 음색(音色) 형태(形態) 빛깔 (色) 무게까지, 과르네리(1700년대 이태리 악기제조 장인(匠人) 는 무수히 상상하고 기도 했던 이상형의 모습 그대로였다.

Like Us on Facebook

바이올린 외부 색체는 전체적으로 거뭇하면서 붉은 빛깔이었고 악기의 목 부위는 좁고 가늘었다. 손가락이 짧고 손이 작은 나는 바이올린이 무겁거나 목이 두꺼우면 아무리 좋은 악기라도 오래 연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이 과르네리는 좋은 악기 일 뿐 아니라 나를 위해 디자인한 듯한 맞춤 악기였다.

그러나 나는 과르네리를 받아 갈 수가 없었다. 바이올린을 받기 위해서는 바이올린 임대계약서와 악기보험 계약서를 써야 했다. 나는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은 열일곱 살 미성년자로 계약서를 작성 활 권한이 없었다.

주최 측과 의논 끝에 계약서를 한국에 보내 엄마가 사인을 하여 보내주면 그 이후에 내가 과르네리를 가져가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당시 내가 느낀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바덴바텐(독일)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데뷔공연, 크고 작은 연주회, 국제콩코르 등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마인즈에서 왕복 1600Km 떨어진 함부르크에 다시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무대들에서 과르네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도 속상했다.

엄마만 있었다면, 혼자 유럽 여러 곳의 콩쿠르를 참가했지만 이 때만큼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입상자들이 임대 계약을 마쳤다 이윽고 수상자들의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유난하게 치열했던 2003년 콩코르에서 상위 입상자들이, 그것도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뽑은 몇 명만이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 할 수 있었다. 악기를 제공한 악기소유자 부유층과 장관급 인사들이 관객으로 자리 잡은 VIP 공연이었다.

공연실황은 “도이칠란트라디오” 방송으로 전역에 송출되고 다큐용 텔레비전 녹화제작도 한다고 했다. 박지혜 에세이 p103-104- 105 중략.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