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아펜젤러 130주년, “초교파적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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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아펜젤러 130주년, “초교파적 연합"
  • 한연희
  • 승인 2015.06.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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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 한국선교 13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에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사진은 지난 31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폐회식 장면)
 

언더우드·아펜젤러 130주년, “초교파적 연합 배워, 분파주의 담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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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션 한연희기자 (redbean3@naver.com)

언더우드·아펜젤러는 각각 다른 교단 소속으로 파송됐지만 같은 배에 올라 함께 조선 땅을 밟았으며, 선교사역에서도 적극 협력해 개신교 선교의 초석을 다졌다. 올해 아펜젤러 언더우드 방한 130주년을 맞아 이들이 졸업한 미국 신학대와 한국에 세운 교회들이 연합해 심포지엄을 열고, 발자취를 평가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등 ‘아펜젤러 언더우드 심포지엄’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 한국선교 13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드류대학교 뉴브런스윅신학교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들 4개 학교와 교회들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 땅을 함께 밟은 역사적 인연이 있기에, 심포지엄으로 연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드류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동제일교회를 세웠으며,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뉴브런스윅신학교를 졸업하고 새문안교회를 세웠다.

이날 심포지엄은 <두 선교사, 하나의 꿈, 그리고 우리>란 큰 주제 아래, 언더우드· 아펜젤러의 선교정신을 기리는 한편 현재 한국교회의 발전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존 코클리 교수(뉴브런스윅신학교)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신학생 시절 모습을 연구해 발표했다. 코클리 교수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미국 개신교는 해외선교에 위기를 느끼고 박차를 가한 결과 성장할 수 있었다. 아펜젤러가 신학교에 들어간 시기는 이와 맞물려 있었기에 그는 세계복음화에 대한 이러한 절박감의 정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펜젤러는 독일개혁교회보다는 부흥과 개인복음 전도를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감리교회에 더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1879년에 21세의 대학생으로서 원래 교단을 떠나 랭카스트 제일감리교회에 출석했다. 그 후 감리교 목회를 준비하기 위해 당시 드류신학교에 등록해 복음 전도를 배웠다"고 설명했다.

또한 코클리 교수는 "언더우드 또한 복음의 열정은 아펜젤러와 같았다. 다만 아펜젤러와 같이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장과정이 달랐다“며 ”언더우드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여의고 가톨릭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13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들과 합류해 화란개혁교회 계통인 그로브교회에 다녔다“고 밝혔다.

이어 “언더우드는 화란개혁신학교에 입학해 신학교육을 받고, 선교를 위한 의료수업도 받았다. 불과 네 살 때부터 선교사의 꿈을 지녔으며, 신학교와 연계성이 적은 구세군에도 참여해 봉사활동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란환경은 달랐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 같았던 두 사람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같은 배를 타고 조선 땅에 도착했다.

자란 환경 다르지만, 복음 열정 같았던 두 사람

이어진 세션에서 김진홍 교수(뉴브런스윅신학교)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교차로에 선 한국 개신교 미래의 해답'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한국교회가 두 선교사의 연합 선교 정신을 이어받아 개교회 주의 담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진홍 교수는 "기독교는 이미 유교, 불교와 함께 외래종교로서 한국인의 심성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그 이미 놓여진 초석 위에 어떠한 집을 지어갈 것이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기 때문에 성경 해석의 차이에 따라 자꾸 분파가 만들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면서 ”그보다 나누인 다음에 서로의 벽을 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를 잘 실천한 선교사들이 바로 언더우드·아펜젤러다. 이들은 장기적인 비전으로 언어, 문화, 음악, 여성, 어린이, 청년, 저소득 계층 등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렸다. 초교파적 연합정신이라는 점을 깊이 인지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는 유례없는 다 교파적 진출로 시작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더우드·아펜젤러가 있었다. 그들이 생존하고 활동하는 동안은 미국 호주 캐나다의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은 상호 협조하여 균형 있는 선교를 이루어 냈다. 두 사람이 한 배를 탔고 함께 도착했기 때문에 조선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조선 선교에 뜻을 같이 했을 것으로 보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밖에도 이후정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가 '한국 교회의 영적 갱신과 역사적 사명', 레오나드 스위트 교수(드류대 신학대학원)가 '21세기 복음 전도, 그 변화의 흐름'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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