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충격보도> ‘87세 탈북 국군포로 K 씨 탈북했다 ’ 또다시 강제로 북한에 끌려간 내막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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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충격보도> ‘87세 탈북 국군포로 K 씨 탈북했다 ’ 또다시 강제로 북한에 끌려간 내막 전모.
  • 선데이저널USA, 성 진 기자)
  • 승인 2017.02.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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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기다려라’는 공관 말 믿다가 어이없이 참변,지난해에 탈북 국군포로 4명이 사망해 현재 35명이 생존하고 있다
▲ 6,25 한국 전쟁당시 국군포로

우리 세대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6.25전쟁 국군포로 한 명이 북한 정권에 포로가 된 지 67년 만에 지난 1월 둘째 주에 극적으로 탈북해 중국에 체류 중 한국 정부의 미지근한 조치로 대한민국 땅을 밟기 전에 지난 2월 4일 북한 보위부 특수반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 북송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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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87세로 국방부에는 1950년도에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국군포로 K 씨는 천신만고 끝에 탈북했으나, 현지 한국 공관에서 ‘한 달 후에 영사관에 들어오라’는 말만 믿고 있다가 정보를 탐지한 북한 측이 전격 탐색 행동을 벌여 강제 북송되는 참극을 당했다.

이 같은 소식은 중국 심양에서 탈북자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모 교회 전도사 A 씨가 LA 소재 미주국군포로송환 위원회(이하 ‘국군포로위원회’, 회장 정용봉)에 알려왔다. 이 A 전도사는 국군포로위원회의 지원으로 지난 수년 동안 중국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구출활동을 벌여 왔다.

이번 사건은 12년 전인 2005년 1월 당시 중국까지 탈북해 나왔던 국군포로 한만택 씨 (당시 73세, 별첨 기사 참조)가 한국 영사관에 들어가기 전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된 사건의 재판(再版)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크다.

[국군포로] A전도사가 전해온 충격적 이야기는 지난 1월 29일 중국 현지에 있는 한인 브로커 B 씨가 국군포로 K 씨를 탈북시켜 온 중국 브로커에게 약속된 나머지 돈을 건네기 위해 연길에서 삼합으로 가는 길에 신원미상의 괴한에 의해 피습을 받아 머리를 흉기로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나중 눈을 떠 보니 중국 병원이었으며, 돈은 이미 없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브로커 B 씨는 지난 1월 29일 구조 요청을 위해 중국 친지에게 연락을 취했고, 지난 2월 2일 퇴원 후 안가로 가보니 ‘국군포로 K 씨가 행방불명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후 B 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국군포로 K 씨를 찾을 수는 없었고, 지난 4일 또 다른 조력자 로부터 ‘북한 보위부원들이 와서 데려갔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국군포로 K 씨는 원래 건강해 탈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우선 현지 한인과 중국인 브로커들이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바람에 그동안 심양 총영사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국군포로 가 탈북 귀환하게 되면 그동안 수십 년 동안 받지 못한 군인봉급 등을 환산해 보통 3억-5억 원 (미화 약 30-50만 달러)를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브로커들은 탈북자보다도 국군포로 탈북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현지 공관의 안이한 대처로 강제북송

특히 국군포로가 탈북할 경우, 막대한 브로커 비용을 위해 편법으로 한국 정부가 국내에 있는 가족에게 일부를 보조해주는데, 이 돈을 가족들이 브로커에게 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중 국군포로가 정식으로 입국하면 보상금과 정착금에서 선불한 금액을 청산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국군포로 K 씨의 강제북송 과정에서의 더 큰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정부와 공관에서 무슨 이유인지 국군포로 K 씨를 우선 안전한 곳에 보호하지 않고, 심지어 면담조차 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서 ‘한 달 후에나 영사관에 들어오라’고 했다는 점이다.

국군포로 K 씨의 한국 내 가족들과 현지 한인 관계자들이 ‘탈북한 국군포로 K 씨를 왜 바로 안전한 장소에 보호하지 않고, 더구나 한 달 후에 공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의에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 한-중관계가 정치·경제적으로 상황이 나빠 다른 방법을 강구 중이다.’고만 답했다는 것. 이 같은 안일한 자세가 일을 그르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국군포로 탈북 사실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중국 정부나 북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데도, 현지 공관이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언론에 알리지 말라. 언론에 공개되면 한국으로 입국할 수 없게 된다’고 사정조로 말하지만 거의 강압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중국 정부는 국군포로의 탈북 경우에는 일반 탈북자보다 특별한 예외를 두어 통상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치해 주어 왔다.

문제는 한국 정부는 예전(2005년 국군포로 한만택 강제북송 사건)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스러운 것은 국군포로 K 씨가 지난 1월 7일 탈북한 이후 우리 한국의 공관이나 국방부 측에서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국군포로 K 씨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국군포로가 탈북했다’라는 사실을 관계 기관에 통보했음에도 말이다.

‘언론에 알리지 말라’ 반협박까지

한편 이번 국군포로 K 씨의 강제북송은 지난달에 북한 국가안전보위상(국가정보원장 격)에서 전격 해임된 김원홍(72)과 그 일파들에게 피바람이 불면서 충성경쟁이 붙어 야기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장성택 처형을 주도하는 등 김정은의 오른팔로 알려진 김원홍이 해임되고 직속 부하들 다수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다른 보위부 간부들이 충성경쟁의 일환으로 국군포로 K 씨의 탈북을 탐지해 일을 벌인 것으로 중국 현지에서 탈북 브로커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탈북을 주선하는 중국인 브로커들은 북한 현지에서 보위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주어 도움을 받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다.

실제로 이번에 국군포로 K 씨를 탈북시키는데도 현지의 당 소속원들의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당 소속원들은 눈 감아주는 대가나 또는 직접 안내하는 경우도 있어 비용도 중국 위안화가 아닌 미국 달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군포로 북한 탈출의 브로커비는 통상 6만 달러 정도이다.

이번 국군포로 K 씨의 강제북송은 한국 정부가 국군포로에 관한 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려고 쉬쉬하며 제대로 대응을 못하다가 이번과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가 국군포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의 정용봉 회장은 “국가가 국군포로를 구출해 오진 못 할 망정, 제 발로 걸어나온 국군포로 조차 보호를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가 제정신인지, 정말 어이 가 없다”라고 분노감과 자괴감을 나타냈다.

또 그는 “나라를 구하라고 국가의 부름에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우리 국군을 국가나 국민들이 모른 채 하는 현실을 개탄한다”면서 “앞으로 한국의 역대 정권의 국군포로 송환의 직무 유기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모든 미귀환 국군포로는 전사자로 처리되었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귀환자는 1994년 고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계속하여 탈북하여 왔는데, 2014년 12월 기준으로 귀환 국군포로는 80명이며, 포로 가족은 400여 명에 이른다.

귀환 국군포로의 출신지는 함경북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국군포로 대부분이 함경북도 지역의 탄광에 배치되어 노역에 종사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2011년 이후에는 귀환한 국군포로가 없다. 그 이유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이 국경 지역 에서의 탈북 경계를 강화하였고, 국군포로들이 연로해지면서 자력으로는 국경을 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탈북 국군포로 4명이 사망해 현재 35명이 생존하고 있다.

본사협약 선데이저널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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