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성, 미국서 시작된 번영의 복음, 非복음적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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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성, 미국서 시작된 번영의 복음, 非복음적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
  • 박진일
  • 승인 2015.06.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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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번영신학 시작 원인과 정착화 요인 분석
▲ 非복음적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 세미나

미국 교회에서 복음주의 신앙을 지키고, 성경적인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새롭게 결성된 목회자,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들의 연합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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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이다. TGC는 6월 한달 동안 쟁점이 되고 있는 “번영신학(the Prosperity Gospel)”의 성경적 왜곡을 주제로, 관련 목회자나 학자들의 의견을 다루기로 했다. 특히 성경적인 복음이 아닌 번영신학의 물결은 이제는 단지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구 소련권 지역인 동유럽까지 영향을 주고 있을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신학교(Ukrain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우드브리지(Russell S. Woodbridge) 교수는 먼저 어떻게 해서 미국에서 번영신학이 시작됐는지를 확실하게 짚어준다(Prosperity Gospel Born in the USA).]

번영신학 또는 번영의 복음의 시작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준기독교 이단인 “신사고(New Thought)”에서 부터다. ‘신사고’는 건강이나 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해야 하고, 비전을 갖고 정확한 언어로 말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철학이다. 노만 빈센트 목사(Marble Collegiate Church in New York)는 “적극적인 사고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란 책을 통해, 신사고의 개념과 원리들을 보편화시켰다. 즉 정확한 언어로 추구하는 것을 말하고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번영신학운동의 토대를 만든 것은 바로 E. W. 캔원(Kenyon)이다. 전도자요 목회자이며 베델성경학교의 창시자인 그의 신학 접근 방법이 바로 신사고적 개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면 실제로 가질 수 있고, 생각하는 것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캔원의 접근 방법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에게 영향을 준다. 치유와 재정적 축복을 받는 것이 그가 펼치는 사역의 핵심으로, 1980년대에는 로버츠 목사의 TV쇼가 미국인들이 즐겨보는 종교 프로그램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하긴(K. E. Hargin)이야말로 번영의 복음을 활짝 개화시켰다. 그는 번영의 복음을 선포하는 주 강사였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말씀 운동(the Word of Faith Movement)”의 아버지로, 20세기 후반까지 미 전역에 번영의 신학을 확산시켰다. 번영의 신학은 이제 미디어를 통해 국제적으로 확산된다. 바로 1973년 개국된 TBN은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건강과 부를 선포하는 강사들(Rod Parsley, Creflo Dollar, Paula White 등등)의 가르침을 전하는 매체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번영신학은 또 다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바로 Joel Osteen, T.D. Jakes, Joyce Meyer와 같은 목회자들의 사역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오스틴 목사는 2007년 자신의 책(Become a Better You)을 통해, “당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또 “성경은 ‘우리의 믿음은 우리 안에 모든 선한 것들이 있다고 인정할 때, 영향력을 준다’라고 말한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 나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하나님이 예뻐하신다”고 선포해야만 건강과 물질의 축복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가르침은 신사고에서 이미 말한 긍정적인 사고의 힘과 바라는 것을 말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원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미디어는 아무런 여과과정 없이 전 세계로 이처럼 잘못된 가르침을 송출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번영신학의 시작이 미국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반론이 없다. 그렇다면 왜 미국 사회에서 이처럼 왜곡된 복음이 시작됐고, 자라나게 됐는가? 미국 사회에서 번영의 신학이 성공을 거두게 단 하나의 요인은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 인간 본성상 자연스럽게 성공이나 건강 그리고 재정적으로 안정을 원하는 보편적 심리와 부합 이러한 욕구들은 원래부터 죄악시되지는 않지만, 만약 하나님 대신 이것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면 죄악이 된다. 문제는 건강이나 부 자체가 아닌 바로 인간의 마음에 있다. 우리의 안정이나 신뢰 기반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둔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따라서 건강과 물질적 축복으로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되면,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온전한 풍족함을 맛보기가 힘들어진다.

▪ 미국인들에게 호응을 받는 것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꿈에 그리던 집을 장만하고, 2대의 차를 구입하며, 재정적으로 탄탄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보통 미국인들의 꿈이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을 지나치게 북돋우는 소비 문화에서는 자꾸만 무엇인가를 구입하게 만든다. 따라서 명품 브랜드나 최상의 휴가를 소지하거나 가게 되는 것이 마치 행복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미국 문화의 독특한 특색인 ‘개인적 성취’라는 강조점과 번영의 신학이 마주치는 교차점이 있다. 번영의 신학은 “당신은 해낼 수 있다”라고 성취를 고양한다. 즉 긍정적인 고백과 신앙의 언어를 통해 개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궁극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것은 성공의 신호이지, 하나님께 신실한 것은 아니다. 번영의 복음은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준비와 일어나게 될 물질적 축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미국 문화, 낙관주의와 개인주의와도 부합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낙관주의와 개인의 일은 개인이 처리해야 한다는 개인주의는 미국사회에 만연하다. 물론 이 같은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들이기는 하지만 너무 강조되다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해 고상한 시각을 가지게 된다. 번영의 복음은 ‘당신은 선하며 주어진 상황을 당신의 의지에 따라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당신의 사고와 말들을 바꾸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 성공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의 체계와 탄탄한 근로윤리 안에서는 부를 만들고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미국이 부강한 국가로 자리잡기까지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에 선이 되는 정직한 근로정신을 통한 부의 창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번영의 신학은 언제든지 수직적 신분상승이 가능하며, 미국 경제는 언제나 호황이며, 하나님도 당신 옆에 있으며 미국의 번성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보너스라고 말한다. 결국 내가 할 일은 그러한 보너스를 주시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고 그 분께서 주시는 축복의 여정만을 따라가기만 한다. 즉 왕의 자녀로서 권리와 특혜만을 누리라고 말한다.

▪ 많은 교회들이 성경보다는 문화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 크리스천들까지도 종종 행복, 기쁨 그리고 성공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기준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많이 성공을 성결이나 신실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복종보다는 위치, 부, 신분으로 말한다. 불행하게도 번영의 복음은 지구촌,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나라들에까지 확장돼 베스트셀러들, 컨퍼런스, SNS 그리고 TV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에서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주제는 바로 번영의 복음이다.  ny@ch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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