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성서와 여성. 배현주 교수(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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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서와 여성. 배현주 교수(부산장신대)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7.12.16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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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현주 교수

성서는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가장 고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성서의 본문이 인종차별, 계급차별, 성차별, 장애인차별 등의 억압적인 사회구조, 비인간적인 문화, 전쟁과 폭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경우에 바로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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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무수히 발생해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고 ‘온고지신’적인 성찰을 전개하는 이데올로기 비평이 해방신학적 열정과 함께 예리하게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이다. 구약학의 필리스 트리블과 신약학의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가 이 분야에서 선구적 공헌을 하였다. 최근에는 성서학자들이 함께 집필한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이 출판되었다.

올해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는 선동적인 제목의 책이 번역되었다. 이 책은 “미리 본 결론”으로 시작한다. 저자인 레너드 스위들러는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첫째, 예수는 페미니스트였고, 제자들 또한 그의 뜻을 따랐을 것이다.

둘째, 전통적 해석과는 달리, 예수는 이혼과 재혼을 금기시하지 않았다. 셋째, 누가복음의 원형판은 루카(Luka)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성에 의해서, 요한복음의 종전판(penultimate version)은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여성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수하였다. 여성의 역할과 기여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수 세기 간 존속하고는 사라지는 컬트적 종교 공동체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초기 기독교의 전파와 성장에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사회적 공신력이 없는 여성들을 기독교의 핵심 케리그마인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제시한 복음서 전승들은 역사적 사실의 무게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가정교회의 공간을 마련하고 교회 운동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 역사적 바울의 서신과 ‘바울과 테클라 행전’ 등을 통해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 여성 리더십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발견한다.

▲ 여성신학자들

여성들은 사도, 예언자, 교사·신학자, 가정교회의 책임자와 기독교 운동의 후원자, 가정 사역자, 금욕주의적 독신 수행자, 순교자 등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교회의 설립과 성장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이 단행본을 출판한 ‘신앙과 지성사’의 요청에 따라 필자가 쓴 서평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레너드 스위들러는 교회가 지난 이천 년 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외면하여온 예수의 두드러진 면모를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예수는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요, 독자적 인식과 실천 능력이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대하였다.

여성은 예수운동과 초대교회운동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저자는 가부장주의 전통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았던 예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 예수는 ‘위험한 기억’이자 ‘불편한 기억’이다. 새 하늘, 새 땅, 새로운 인간을 향한 한국교회의 거듭남은 이 위험하고 불편한 기억을 겸허하게 회복하는 데서 시작한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고 선언하였다.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성차별은 가장 큰 장벽일지도 모른다. 한국교회는 아직 광야에 머물러 있다. 가야할 길이 멀다. 페미니스트 예수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오래된 미래’는 광야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될 것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자신은 65년 이상 교회에서 성서를 가르친 사람으로서, 성서가 여성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여성해방적인 본문들과 여성억압적인 본문들을 함께 담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려는 이기적 목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시키는 성서해석을 해왔다는 것이 카터의 주장이다. “내가 속한 남침례교회 지도자들은 최근에 여성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집사, 목사, 군종관, 또는 남자의 교사로서 일할 수 없다고 제정하였다.

성 바울[서신]과 창세기에서 주도면밀하게 선정한 몇 개의 인용문들로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하면서 이브는 아담을 보조하도록 창조되었고 원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나의 믿음과 갈등을 일으킨다.

▲ 배현주 교수, WCC 한국대회로 회의에 참석

”카터는 “모든 사람에게는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입장이나 여타의 견해, 국적이나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이나 여타의 신분과 같은 모든 유형의 차별로부터 벗어나서,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선언한 세계 인권 선언 제2조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성서의 말씀은 서로 일맥상통함을 강조한다.

신약학자는 가부장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교회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헬라어가 남성형으로써 남녀 모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대에 유의미한 번역을 하려는 번역자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바울이 “형제들아(adelphoi)”라는 남성 복수형으로 교인들을 부를 때, 실제로는 교회의 모든 남녀 신도들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성서학자는 본문비평, 번역, 해석학 등 성서학의 제반 분야들과 씨름하면서 교회 개혁의 동력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로마서 16장 7절에 언급되는 유니아를 사도로 복권시킨 신약학계의 최신 연구가 한 예이다. 중세 서기관들은 사본을 옮기면서 여성이 활발한 선교사역을 벌인 사도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느끼고 남성형으로 수정하여 기록하였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성서 번역 역시 로마서 16장 7절의 인물을 ‘유니아스’라는 남성으로 표기하였다.

루터는 자신의 저서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스가 유명한 사도들”이었고 둘 다 “사도들 가운데 명성이 높은 자들”이었다고 설명하였는데, 이 이론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2003년 미국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회장을 역임하였던 남성 신약학자 엘든 엡은 『유니아: 최초의 여성사도』라는 저서에서, 기존에 제기되었던 남성형 선호 이론들을 본문비평학적으로 자세히 검토한 후 여성형 유니아로 판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임을 입증하였다.

성서번역자가 자신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선입견을 비판적으로 자각하지 않고 번역에 임하면, 본의는 아니라고 하여도 수구적인 기능을 하는 전문가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공동번역은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의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남자에게”를 첨언하여서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번역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4절의 중성명사 “skeuos”를 한글 번역본들은 대부분 “(자기) 아내” 혹은 “(자기) 아내의 몸”으로 번역하는데 반하여, NRSV는 “(자기) 몸”으로 번역한다. 즉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신의 몸을 조절하는 법을 알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4장 4절의 복수 호격 “moichalides”를 개역과 개역개정은 “간음하는 여자들”, “간음한 여인들”로 번역하는데 반하여,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은 “절조 없는 사람들”, “간음하는 사람들”로 번역한다(Adulterers!: NRSV).

이러한 번역의 차이는 객관적 학문성에 충실하려는 공통분모를 넘어서서 번역자들이 지닌 여성과 초대교회 운동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가리킨다. 주기도문의 원문에 없는 “아버지”를 굳이 여러 번 포함시켜서 번역한 한국 교회의 최신 주기도문 번역은 소중한 공동체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주의 문화를 극복하려는 교회개혁의 방향과는 어긋나는 시도라 하겠다. 언어는 세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만들고 세계관을 주조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오한 신비를 가리키기 위해서 성서가 사용하는 풍성한 이미지들을 예배와 기도 등 신앙생활에서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는 ‘편식’의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샐리 맥페이그에 의하면, 성서에 하나님에 대한 풍부한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특정한 이미지와 전통을 절대화하는 우상화 경향을 근절하고 신적 풍요로움에 대한 상상력을 흘러넘치게 하려는 성서의 의도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우상타파주의, 둘째,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은유의 강조, 이 두 가지가 하나님에 관한 성서 언어의 특징을 이룬다. 하나님을 군주적, 남성적, 성인중심주의적, 초월적 모델로만 이해하는 전통적 관점을 넘어서서 관계적, 삼위일체적, 여성적,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모델로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우리 시대의 위기와 도전에 응답하고자 하는 신학적 노력인데, 성서에는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는 풍부한 자원이 담겨져 있다.

한 예를 들자면, 맥페이그는 핵시대의 신학적 재구성을 위하여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맥페이그는 인간에게 이제 자신과 다른 생명체들과 전 지구를 파괴할 힘이 있다는 지식,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책임을 수용하는 새로운 감수성의 필요를 역설한다. 그녀는 군국주의와 도피주의를 강화하는 가부장적이고 군주적인 하나님 모델을 벗어나서, 성서에 전거를 두고 있는 어머니 하나님, 연인 하나님, 친구 하나님의 모델을 생태학적 핵 시대의 관계지향적인 하나님 모델로 제시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구하는 남녀 모두의 ‘살아있는 신앙’에 심오한 도움을 주며 교회의 상상력을 재교육하기 위한 성서해석이 요청된다. 1970년대에 일찌감치 『예언자적 상상력』을 집필한 월터 브루거만이 이 책을 여성에게 헌정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식의 힘과 경탄의 은사에 관해서 매일 나에게 가르쳐 주는 사역자 여성들에게”라고 되어 있는 헌정사는 첫 한글 번역본에서는 생략되었다.  배현주교수 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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