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선교회 고향방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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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선교회 고향방문기 1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8.06.25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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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식사 자리에서 인사 하는 호산나선교회 회장 소강석 목사

호산나선교회(회장:소강석 목사) 회원 80 여 명은 근대사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는 지리산과 그 자락의 남원과 구례 등을 6월21일 22일 탐방했다.  21일 오전 7시30분 버스 두 대가 사당역 공영주차장을 출발하여 오전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 후 집행부가 허락한 자유시간에 느림의 여유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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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는 전주한옥마을에는 한복임대 가게가 눈에 띄게 늘어나 보였다. 한옥과 돌담장 등 옛날로 돌아 간듯한 구조물 환경에서 의상도 한복차림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추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될 수 있어 보였다.

한옥마을 탐방을 마치고  식당을 향했다. 점심식사는 80 여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준비되었다. 회장 소강석 목사는 6.25 한국전쟁 참전 흥남철수작전 생존 미군과 캐나다인과 그 직계 후손 수 십 명을 한국으로 초청하였다 벌써 열두번 째이다

17일 주일저녁 새에덴 교회(소강석 목사 시무)서 환영만찬 및 예배를 드렸으며, 전쟁의 폐허를 기적처럼 현대화로 발전시킨 현장들을 안내하는 일정 중에 있음에도 서울에서 전주의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어 내려 왔다.

소목사는 함께 식사를 한 후 자신이 처한 형편을 이해 부탁하고 집행부에 고향의 형님과 누나 같은 어른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편히 주무시게 숙소도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고 정중하게 인사 하고 귀경했다.

호산나선교회 회원들이 소목사에는 광역(廣域)적인 고향의 선배들이 많았다. 소강석 목사는 남원에서 출생하여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전남광주에서 광신대를 나와 소설 같은 목회스토리를 진행 중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소강석 목사가 결혼을 잘했다는 평가는 부인이 키도 크고 미인이라는 조건 이상으로 전도사 시절 현재의 장모 정금성 권사를 광주 무등산에서 기도하다 만나 현재까지도 영적인 멘토로써 기도로 조용하게 목양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수많은 목사들이 북한에 갔지만, 주변의 강권에도 소강석 목사가 북한에 안 간 것은, 깊게 기도하는 장모 정금성 권사가 “아직 때가 아니다” 자제를 권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남원이 배출한 걸출한 소설가 최명희 문학관 뜰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21일 오후는 남원이 배출한 고 최명희를 기념하는 최명희문학관을 탐방했다 대하소설 "혼불"은 그녀가 남긴 유작이다.

소설가 최명희는 섬세한 언어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풍습을 치밀하고 폭넓게 복원해낸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명희는 1972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81년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한 최명희는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인 〈혼불〉 제1부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후 1988∼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완간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宗家)의 종부(宗婦) 3대가 겪는 삶의 역정을 그려낸 〈혼불〉은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여느 대하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무속신앙·관혼상제·관제·직제·신분제도·의상·가구·침선·음식·풍수 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 듯 비디오 같이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방대한 고증과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 구성, 생기 넘치는 인물 묘사로 우리 민족혼의 원형을 빚어냈다'고 극찬했다.

▲ 최명희의 대작 혼불

최명희가 무려 17년 동안 오롯이 이 한 작품에 기울인 공은 각별했다. 〈혼불〉의 주요 무대가 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瀋陽], 무단 강[牧丹江]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한 1994년 64일간의 장정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암에 걸려 몇 차례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원고지 1만 2,000매 분량에 이르는 이 작품의 집필과 수정·보완 작업을 매듭지었으며, 작품 완간 1개월 뒤 기어코 쓰러져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가정신은 3차례의 수술과 2년여 투병 생활 중에도 제6∼7부의 집필 계획에 골몰할 만큼 강인한 것이었다.

최명희는 1994년 초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초청강연을 시작으로 시카고대학교 `한국을 사랑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과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한국학회의 초청강연(1994, 1995), 시카고 노스팍 칼리지 한국학연구소 초청강연, 아이오와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초청강연(1995) 등 한국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외 강연에 나섰다. 특히 스토니브룩 한국학회에서 행한 강연문 〈나의 혼, 나의 문학〉은 현지에서 한국학과 고급한국어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단재상(1997)·세종문화상(1997)·전북애향대상(1997)·여성동아대상(1998) 및 호암상 예술부문상(1998)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혼불〉 외에 〈몌별 袂別〉·〈만종 晩鐘〉·〈정옥이〉·〈주소〉·〈제망매가〉 등의 단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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