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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런 노회 끝에 디트리히 본훼퍼를 생각하다.서울동남노회는 권력이나 금권력에 굴하지 않는 보배로운 목사들이 많음을 오늘 확인하게 되었다. 박동현 기자l승인2018.10.3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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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 속에 기적이 ..1년 지각 노회장 김수원 목사, 명성은 2017년 10월24일 김수원 목사 발목을 부당하게 잡고 위헌 세습을 강행했다. 명성의 주장은 100% 총회 재판이나 9월 총회에서 부결되었다. 

예장통합 산하 서울동남노회 제75회기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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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장 김수원 목사, 부노회장 김동흠 목사, 어기식 장로, 임시서기 이용혁 목사, 부서기 이재로 목사, 회록서기 김성환 목사, 부회록서기 안장익 목사,(회계 부회계 임시노회에서 선정예정)

명성교회는 노회임원선출을 투표로 예측해서 해외파송 선교사 30여 명을 선교대회 명분으로 불러 드리고, 오늘 노회에 참석시켰다. 브라질 강명관 선교사, 세네갈 최재운 선교사, 폴란드 심상칠 선교사, 우크라이나 김대로 선교사, 에티오피아 송의광 선교사, 맥시코 장덕인 선교사 이집트 공일주 선교사, 파라과이 임성익 선교사, 프랑스 안태영 선교사, 등 30 명이 호명에 대답했다. 

서울동남노회는 사전 조율도 협의도 안 되어 파행을 예고했었다. 개회예배와 설교와 거룩한 성찬은 위선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교회나 노회의 분쟁 특징은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자기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 면서 지칠 때 까지 싸우는 사례기록으로 넘쳐 난다.

차라리 예배나 성찬을 빼고 곧바로 논쟁을 시작하면 '예수를 널 모욕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전 노회장 고대근 목사가 개회예배를 인도하고 전 노회장 심재선 목사가 교훈적인 설교를 했지만 노회원들에게 들렸는지 알 수 없다.

성찬은 예전대로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성찬 후 참석회원 호명을 하고 합계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자 전 노회장 김삼환 목사는 '그대로 발표 하고 늦게 오는 회원은 추가 해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목사총대 재적 311명 중 207명 출석하고 장로총대 재적 128명 중 101명 출석하여 합계 308명이 출석하였고 정족수를 충족 시켰다.

▲ 엄대용 목사 발언. 그리고 임시 선관위장 격으로 사회를 맡았다.

총회결의를 존중하는 회원 남고, 노회산회에 동의하는 사람 나가 주세요.

회의 사회권자 문제로 발언권을 주면서 의견을 들었지만, 전부 자기 소견이었고 명성교회 장로와 목사 명성지지자 남상욱 목사가 발언전체의 80% 정도로 차지하고 비대위 측에서도 몇 사람이 발언했다.

양측은 정반대의 의견의 법리 발언을 했다. 발언권 후반에 이대희 목사가 사회권이 아니라 노회분립 동의를 들고 나왔다. 누군가 재청도 했다. 사회를 보던 고대근 전노회장은 가부를 묻지도 않고 산회선포를 하고 사회봉을 두들기며 하단 해 나가 버렸다.

이때 비대위 측이 강대상을 점유하고, 임시 사회자로 엄대용 목사를 박수로 받고 노회장에 김수원 목사 부노회장에 지난 해 선출된 김동흠 목사 어기식 장로를 박수로 받았다.

기타 임원은 임원회에 위임했다. 한편 명성회원들은 멀티로 강대상을 오르면서 방해 했지만, 출두한 경찰 도움 등으로 마이크를 뺐지 못했다. 실내를 소등했지만 소란 속에 몸이 다치는 사람 없이 임원 선출은 끝났다. 회원들은 2층 식당으로 이동했고 명성과 같은 시찰인 우리당회원은 명성장로들과 이웃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 최규희 목사 나약한 여자가 아니다. 법논리가 차분하고 설득력이 있다.

혼란스런 노회 끝에 '디트리히 본훼퍼'를 생각하다.서울동남노회에는 권력이나 금권력에 굴하지 않는 보배로운 목사들이 많음을 오늘 확인하게 되었다.

1933년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서 독일교회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 주셨듯이 현재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행동하는 목사 디트리히 본훼퍼

그러나 이것은 히틀러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이었고, 단지 히틀러를 우상으로 치부하여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히틀러는 독일국민들을 히틀러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한다고 경고하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었고, 결국 방송은 중단 당하고 말았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교회가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발표한 원고를 신문에 넣었다. 이때부터 본회퍼는 나치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독일교회에서는 본회퍼처럼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나치에 반대하는 신학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고백교회를 결성하여 그들의 양심을 실천했다. 하지만 나치의 탄압으로 고백교회 참여자들은 박해받았는데, 본회퍼의 경우 1943년 4월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를 전전했다. 이때 그가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후 《옥중서간》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본회퍼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하였다는 증거가 확보되면서, 1945년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수용소(Flossenbürg concentration camp)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였으며, 그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은 "디트리히 본회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 혼란. 아침을 맞기 위해 캄캄한 밤 중처럼 ..(회의장을 소등하여 카메라 후레쉬 사용)

고난을 함께 하는 신학

디트리히 본회퍼 신학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삶의 실천이다. 디트리히 본회퍼에 대한 나치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다. 개신교 신학자이자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일하던 라인홀트 니부어가 신학교 교수 자리를 마련한 뒤,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 국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본회퍼는 덴마크의 기독교 사상가 키르케고르의 영향으로, 《나를 따르라》(1937년 출간)에서 독일교회가 값싼 은혜를 나누고 있다고 비평했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 (세례의 의미를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설명하는)예식을 무시한 세례, 회개가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성례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름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동현 기자  p7650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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