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반> 중에, 서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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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 중에, 서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04.30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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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보가 되면, 약삭빠른 친구는 다 떠난다. 도움받을 가치가 없다고.. 내가 바보가 되면, 정말 바보는 다 떠나고 진정한 친구만 남는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내가 바보가 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지보다 못한 놈이라고 뽐내면서 말이다. 내가 바보가 되면, 마음씨 착한 친구가 모인다. 불쌍한 친구를 돕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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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보가 되면, 약삭빠른 친구는 다 떠난다. 도움받을 가치가 없다고.. 내가 바보가 되면, 정말 바보는 다 떠나고 진정한 친구만 남는다.

내가 바보가 되면, 세상이 천국으로 보인다.그냥 이대로가 좋으니까..

원작 <바보 이반> 중에서 (소스제공 RCK(알씨케이) 박수진 대표)

바보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수로 유람선에서 만난 러시아 청소년들. 남자 이름이 '이반' 이라고 소개 하여 '바보 이반?' 했더니 '바보가 아니고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했고 둘러싼 여자 청소년년들은 '아니라'고 웃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1828년 제정 러시아의 시대 남러시아 툴라 근방의 톨스토이 가문 영지인 야스나야폴랴나에서 태어났다. 그가 2세 때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을 낳고 사망하여 '숙모'라고 부른 먼 친척 아주머니 밑에서 자랐다.

숙모라 불린 친척 에르골스카야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다름없어 톨스토이의 훗날 성장과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실 '숙모'는 아버지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으나, 톨스토이의 조부가 집안을 말아먹고 빚을 남겨서 부유한 여성을 만나기 바라는 대인배 마음으로 청혼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아는 톨스토이의 생모와 관계가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생모가 사망하자 톨스토이의 아버지가 다시 청혼하지만, 아이들과의 사이가 어색해질까봐 다시 거절하고 대신 평생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가정사는 1836년경 아버지의 유품인 편지를 정리하다 톨스토이가 발견했다고 한다. 참고로 톨스토이의 막내 여동생은 '숙모'라 불린 에르골스카야 아주머니의 조카 톨스토이 공작과 결혼한다.

아버지는 카자 주지사를 거치는 등 관직을 역임했지만 9세 때 급사하여 큰 고모가 후견인이 되었다가 14세 때 큰고모도 사망하여 작은 고모가 후견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톨스토이 가문 형제들은 부모없이 서로 의지하는 사이였고 형제들과의 사이는 전부 좋았다고 한다. 특히 맏형인 니콜라이를 좋아했는데 맏형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1844년에 외교관이 되려고 카잔대학 동양어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농민을 위해 일하려고 법학부로 전과. 하지만 학업에 열의는 없고 자기 관심분야의 책만 보던 터라 수업태도 불량으로 유급됐고 결국 자퇴한다.

▲ 남러시아 톨스토이 고향 툴라역, 기자 뒤로 은색의 톨스토이 흉상이 보인다.

1847년에 고향 야스나야폴랴나로 돌아온 톨스토이는 위의 형 셋과 달리 당시 귀족들의 진로인 문관이 되거나 군인이 되거나 그 중에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영지에 틀어박힌다.

이때 잠시 농촌생활에 열의를 가지고 농노들에게 교육이라든가 의료를 제공하고 온정적인 지주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농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불신으로 실망하고 다시 도시로 나오게 된다.

이후 젊은 톨스토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학사 검정고시로 학사 학위는 따지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어머니가 2살 때 세상을 떠나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진 톨스토이는 성장하면서 여자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거액의 도박 빚을 지는 등, 계속 무분별하게 살아가던 톨스토이는 도스토모씨와는 달리 도박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여 맏형 니콜라이가 군복무하던 캅카스 전선으로 여행을 간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농노 제도 없이 사는 카자크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풍속에 깊은 감명을 받는데, 여기서 쓴 글을 잡지에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는 캅카스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그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톨스토이는 호전적인 소수민족인 체첸인을 상대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입대하여 당시 귀족들처럼 유년 군사학교나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포병 하사관부터 시작하여 공을 세워 현지 임관한다.

복무 중 틈틈이 그의 성장기가 반영된 반자전적인 소설을 썼는데 <유년 시대>(1852), <소년 시대>(1854), <청년 시대>(1857)가 그것이다. 이 때쯤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고 전역 신청을 했는데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역이 거부당하고 크림 전쟁에도 참전한 톨스토이는 세바스토폴 전투에 공을 세웠다. 

공을 인정받아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고, 중위로도 진급한다. 이때부터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1855년에는 세바스토폴 전투에 관한 짧은 글들을 잡지에 실었다. 이것이 <세바스토폴 이야기>이다. 이런 군 경험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잔혹한 체험 때문에 톨스토이는 평화주의로 기울게 된다.

톨스토이는 1856년 군에서 제대하고 1857년부터 1861년까지 서유럽을 두 차례 여행했다. 그곳에서 교육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톨스토이는 영지로 돌아와 농민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열고 신문 <야스나야폴랴나>를 발간해서 자신의 교육관을 설명했다. 

▲ 톨스토이 매장지. 유언에 따라 묘를 만들지 않고 객사한사람 묘처럼 보인다. 영지에서 이곳까지 오솔길이 있다. 중-고등 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노년에 출판수입문제로 가족간의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뚤라역 역사에서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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