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항소심 형량 늘어…징역 16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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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항소심 형량 늘어…징역 16년(종합)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05.1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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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이 목사의 형량이 가중된 이유와 관련해 "항소심에서 준강간 피해자가 1명 더 늘어났고,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2심은 유죄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22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상습준강간 등 혐의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11.2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여성신도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76)에게 항소심에서 형이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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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성지용)는 17일 상습준강간등 혐의로 기소된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아울러 이 목사에게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 동안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판부는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며 종교적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추종하고 자신의 어떠한 요구에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나이 어린 20대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추행 및 간음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아직도 피해자들이 돈을 목적으로 자신을 무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은 교회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고 있다"며 "여러가지를 고려하면 피고인에 대해 장기간의 실형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이 목사가 고령이고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며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이 목사 측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피해자들은 모두 고등학교·대학교 등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마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강요에 의한 성폭행이 불가능하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 이재록 목사는 이렇게 화려했다. 자칭 목자로 창했다.(목자는 예수뿐이다) 

또한 당시 이 목사의 건강 이상으로 성관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피해 여성들이 이 목사를 허위사실로 무고했다고도 주장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목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목사의 형량이 가중된 이유와 관련해 "항소심에서 준강간 피해자가 1명 더 늘어났고,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2심은 유죄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1심에서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2013년 특정 날짜의 '오후경' 이 목사의 강제추행 부분과 관련, '오전경'에 범행이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해당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항소심에 이르러 공소사실에 기재된 시간대를 '오후경'이 아닌 날짜로 특정해 변경했고, 재판부도 피해자 진술 등을 근거로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됐던 이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 목사는 수년에 걸쳐 자신의 지위와 권력, 신앙심을 이용해 여성신도 10여명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고 성폭행한 혐의으로 구속기소됐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 목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진술한 신도는 10여명으로, 이 중 6명이 이 목사를 고소했다. 피해자들은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성폭행이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 파악된 피해자는 총 9명이다.

1심은 "종교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처지를 악용하여, 장기간 상습적으로 추행·간음했다"며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 동안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의 취업제한 명령했다.

▲ 이재록 목사는 만민중앙교회서 신 같은 존제 였다. 이적을 목격한 신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5월17일 상습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6년을 받은 이재록은 누구인가 ? 

1943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장성군에서 자랐다. 결혼 후 7년간의 질병을 앓다가 누이의 권유로 현신애 권사(신유능력 알려짐) 재단의 부흥성회에 참석한 이후에 목회자(전도사)가 되었다.

1982년 7월 25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만민교회를 설립하였다. 1983년에는 만민기도원을 설립했고, 1984년 3월 만민선교원을 열었으며, 1984년 12월 31일 동작구 대방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86년 5월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87년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89년 12월 18일 이재록 목사의 활동과 관련하여 만민교회소속 예수교대한성결교회총회는 만민중앙교회 측에 9가지 금지를 요구 했다.

지방에 교회를 세울 때 만민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 것, 간증책자인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의 판매를 금지할 것, 설교테이프의 판매를 금지할 것, 찬양율동단의 활동을 중지할 것 등 이다.

이에 만민중앙교회는 공동으로 상소문을 총회재판국에 올렸으나 몇 달 후 '이유 없음'으로 기각됐다. 1990년 5월1일에 열린 교단 총회에서 이재록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교단에서 목사제명되었다.

이에 대해 이재록 목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총회 심리부의 목사들이 자신이 말 한 적이 없는 내용들을 말한 것처럼 매도하여 이단으로 정죄하였다.'고 밝히고, '5월 1일 있었던 총회 장소에 300여 명의 대의원(총대) 중 90여 명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지방회(노회)에 속해 있는 대의원들 30명이 이재록 목사 파직 가결에 손을 들었으며, 자신의 좌석을 배치하지 않아 억울함을 소명할 기회 자체를 박탈했다.'라고 주장했다.

1991년 7월 1일 이재록은 예수교연합성결회총회를 창립,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 서울시 구로동의 네 번째 교회 건물로 이전한다. 1996년 美킹스웨이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명예)를 수여받았다.

해외선교 활동도 활방했다.

탄자니아, 아르헨티나,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5], 이스라엘 등 해외연합대성회를 인도해 왔다. 저서로는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를 비롯하여 《십자가의 도》《천국》 《지옥》 등 10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7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현재 종교계 연합체인 기독교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로도 재직 중이다.

이재록의 성폭행 의혹

이재록이 여성 신도들을 1990년대 후반부터 2015년까지 성폭행을 하거나 성추행을 했다는 복수의 고소가 제기되었다. 피해자들은 이재록이 성관계를 신의 지시나 신의 요구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들은 이재록이 성폭행을 한 후 피해자에게 매번 상당한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재록은 이러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이러한 내용의 방송을 MBC PD 수첩이 금지하는 가처분 소송을 진행했지만 기각되었다. 경찰은 이재록에 대해 '상습 준강간'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이재록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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