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땠니? 활짝 핀 얼굴로 엄지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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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땠니? 활짝 핀 얼굴로 엄지 척이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05.21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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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한국대사관주최로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극장을 빌려 목 금 토 일 4일 동안 시네마에서 무료 영화시사회를 한다고 초청이 왔다.
▲ 태어나서 처음 영화를 보는 엘살바도르 시골 청소년들.(황은숙 선교사 제공)

영화 어땠니? 활짝 핀 얼굴로 엄지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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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고맙다고 안아주고 뽀뽀해 줬다. 복음도 전하고, 문화체험도 하고, 기회가 되면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다.

태어나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적이 없는 산골마을 월드비전신학생들이다. 일생일대 이런 경험 처음이라며 수줍어하고 좋아하던 모습에 덩달아 나도 업 됐다.

파파존스피자와 팝콘세트에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한국대사관주최로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극장을 빌려 목 금 토 일 4일 동안 시네마에서 무료 영화시사회를 한다고 초청이 왔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이다. 약280년 전 우리나라 문화와 삶의 모습이 나오기에 조선 (한국)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었다.

기꺼이 15인승 밴을 빌려 사비를 털었다. 7시부터 영화상영인데 5시부터 표를 구입해야 한다하여 일찍 도착한 탓에 2시간은 쇼핑몰 안에 구경을 갔다.

에스컬레이터가 처음이라 무섭다고 한 걸음에 계단을 달려 올라가던 그녀들은 실제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나보다 빨리 도착했다. 튼튼한 다리와 근육이 부러웠다.

▲ 처음 메이크업 서비스 받는 엘살바도르 시골 소녀.(황은숙 선교사 제공)

마침 화장품 코너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메이크업을 해주며 세일하는 프로모션을 하고 있었다. 얼른 알리를 의자에 앉혔다. '얘도 예쁘게 화장해 주세요.' 알리를 모델로 해서 서비스를 받는 문화체험도 했다.

얼마나 까무러치게 좋아하든지. 덩달아 좋아서 파운데이션과 아이라인, 볼터치, 립스틱을 사주었다. 드디어 영화 상영시간, 이해 할까 염려하던 마음 한쪽이 싸악~사라졌다.

에스파냐(스페인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내내 박장대소. 많이 웃고 박수를 치는걸 보니 스토리를 이해 한 것 같다. 분주하고 피곤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 엘살바도르 시골 청소년들 피지도 처음 맛본다.(황은숙 선교사 제공)

 엘살바도르 황영진 황은숙 선교사가 사진과 기사를 제공 했음.

아래는 기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관계 자료를 첨가하였다. 

역사, 스페인 식민지와 독립.

마야 문명권에 속하였지만, 화산 분화 이후 기존의 주민이 피난하고, 남은 자들은 작은 부족 국가를 이루었으나, 1524년에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략으로 정복되었다. 엘살바도르라는 나라이름은 구세주라는 뜻으로 페드로 데 알바라도 장군이 산맥을 넘어 이 땅에 도달한 뒤 구세주께 감사하라고 하여 명명하였다.

스페인의 지배 이후 과테말라 총독의 관할 하에 놓였으나, 19세기 중·남미에 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독립운동의 기운이 높아졌다. 1821년에 과테말라가 독립하자, 엘살바도르 지역도 스페인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결성하였으나, 각자의 입장 차이와 이권 다툼으로 연방은 와해되고,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이후 내전과 군부가 국민들을 박해하는 군사 독재가 이어지면서 정국이 줄곧 혼미한 상태가 된다.

▲ 시골 청소년들 도시 나들이, 영화도 보고 피자도 먹고..(황은숙 선교사 제공)

군사독재정권

20세기에 들어서도 쿠데타가 빈번하여 세계 경제 대 공황기에 집권한 마르니테스 군사독재정권 기간에는 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국가폭력으로 학살당했다.

1944년 다시 쿠데타로 마르니테스 정권은 붕괴하였으나, 이후에도 쿠데타로 정권 교체가 계속되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많은 사람이 주변 각국 및 미국으로 경제 이민이 되어 떠나가 엘살바도르인의 해외 인구 비율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1969년에는 국경 분쟁 및 온두라스로 유입된 엘살바도르인 들의 지위 문제 등 알력이 있었던, 온두라스와 축구 시합을 계기로 축구 전쟁이 벌어졌다.

1980년대에는 좌파 계열의 인민 해방 전선과 소수의 군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폭력으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우파 군사 독재 정권 간에 내전이 발생한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미국은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하였는데, 전투 및 우파 정부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 설교로 기독교인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격려해 온 로메로 대주교도 군사 독재 정권의 폭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이 시기의 엘살바도르와 대주교 암살 사건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70년쯤에는 온두라스와 축구 전쟁이 벌어지고 이 전쟁에서 이긴 엘살바도르가 본선에 진출했다.

엘살바도르 정치적 안정

이후에도 휴전과 내전의 공방전이 계속되다가 1992년 유엔의 중재로 양측의 평화조약이 체결된다. 이후 한동안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었다. 그 후 군사 투쟁을 벌이던 인민전선도 정규 정당으로 편입되는 등, 1990년대 이후의 정치는 겨우 안정세로 돌아섰다.

▲ 극장에 입장하면서.(황은숙 선교사 제공)

엘살바도르 지리 조건

서쪽으로 과테말라, 북·동쪽으로 온두라스에 접하며,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한다. 중미에서 유일하게 대서양(카리브해)과 맞닿아 있지 않은 국가이며, 중미에서 가장 좁은 면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멕시코를 제외한 중미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이다.

인구밀도도 중미 최고여서, 엘살바도르인의 근면한 이미지와 아울러 중미의 일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좁은 국토에 산악 지형으로 이용 가능한 토지자원, 혹은 지하자원이 별로 없다. 이용 가능한 토지 전부와 산까지 농업용으로 개간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파괴가 심각한 국가이다.

지진 및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심각한 자연재해도 종종 입는다. 그러나 화산 인근의 화산재 토양이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이기에 인구가 모여살 수밖에 없어, 주민의 불안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는 적도와 가까워 아열대 기후에 속해 있다.

엘살바도르 정치

엘살바도르는 다당제(실질적으로는 양당 중심 체제)의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2014년 6월 1일에 취임하여 현재까지 살바도르 산체스 세렌이 대통령이다. 주요 정당은 내전 기간 중 우파 정부를 향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등이다.

오랫동안의 독재와 내전을 거쳤기 때문에, 정국이 불안정한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엘살바도르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식민지 시대의 지배 계층인 스페인계 소수 백인의 후손인 지주 계층이 토지를 절대면적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14가문”이라 부르는 이들이 나라의 부와 권력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다.

▲ 황영신 황은숙 선교사 엘살바도르 사역지 시골. 인공사진. 선교지 주소는 San Jase Potrerillos, Nombre de Jesús, Chalatenango, El Salvador 

주민. 대다수의 주민(90%)이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이며, 나머지는 백인(대부분이 스페인 출신, 나머지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출신) 9%와 인디오 1%이다. 인구 밀도는 과밀의 정도가 아니라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 

국외로의 인구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율도 3%를 넘는다. 내전 기간 중에 많은 엘살바도르 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내전이 종식된 현재도 국외 유출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노동 인구의 약 30%가 농업에 종사한다(1999년 통계)

경제, 엘살바도르는 중미에서는 공업이 가장 발달하였으나, 농업이 여전히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재배 작물은 커피, 사탕수수, 면화 등이며 미국계 거대 곡물 자본도 진출해 있다. 농업 생산량은 국내의 과밀한 인구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여, 부족분을 수입하고 있다.

해외 거주 엘살바도르 인이 국내에 보내오는 송금은 국가경제의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산업 시설은 수도인 산살바도르에 집중되어 있어 산살바도르 지역은 공해 및 지방에서 밀려드는 빈민 계층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은 저개발 농업 지역으로서 지역 불균형 발전도 심각하다. 1인당 국민 소득은 4,700달러 정도이다. 독자 화폐 단위인 콜론을 1919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였으나, 그 후 미국 달러를 자국의 기축통화로 도입하였다.

언어,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다수의 아메리카 어는 식민 통치 이후 소멸했고, 소수의 원주민은 나후아틀어를 사용하나, 이웃의 과테말라에 비하여 그 숫자가 많지 않으며, 전 인구의 1% 미만에 불과하다.

교육받은 사람은 영어를 할 줄 아나, 관광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방문객이 자주 찾는 산살바도르의 큰 호텔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므로, 방문 시에는 기본적인 스페인어가 필수이다.

엘살바도르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는 중앙아메리카 스페인어의 일부로서, 지리상의 근접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보다는 콜롬비아 쪽에 더 가깝다.

소통에는 문제가 없으나, 사용하는 특정 어휘에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며, 너(tu)를 vos라고 하는 등, 기본 어휘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와 달리 엘살바도르에서만 사용되는 칼리체라는 슬랭이 유명하다.

대외 국제 관계

유엔과 미주기구연합, 중미공동시장, 중미의회, 중미안보위원회, 세계무역기구 등의 회원국이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승인한 적이 있었다.

이웃나라 온두라스와는 축구 경기로 전쟁을 치렀고, 국경 분쟁도 잦았으나,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가기 전에 평화조약을 채결하였다.

미국과는 국방 및 경제 분야에서 강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196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여, 대략 300명가량이 체류해 있으며, 순수 교민은 30명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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