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유적을 남기고 사라진 성경 속 초강대국 헷 족속(히타이트,hattu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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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유적을 남기고 사라진 성경 속 초강대국 헷 족속(히타이트,hattusas)
  • 박동현기자
  • 승인 2015.08.14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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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라는 낱말은 구약성경의 "헷 사람들(sons of Heth, 헷 족속)"에서 유래하였다.

성경이 진실됨을 증거하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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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3에 히타이트(헷)인들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공동번역: 아브라함은 시신 앞에서 물러나와 헷 사람들에게 가서 청하였다. 가톨릭성경: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개역한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표준 새번역: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옆에서 물러 나와서 헷 사람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KJV: And Abraham stood up from before his dead and spake unto the sons of Heth saying NIV: Then Abraham rose from beside his dead wife and spoke to the Hittites. He said, NASB: Then Abraham rose from before his dead, and spoke to the sons of Heth, saying, YLT: And Abraham riseth up from the presence of his dead, and speaketh unto the sons of Heth, saying,

히타이트(기원전 18세기경~기원전 1180년 또는 기원전 8세기) 또는 히타이트 제국은 고대 근동의 청동기 시대(3300~1200 BC) 중 기원전 18세기경에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국으로, 히타이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4세기경에 최절정기에 들어섰는데, 당시에 아나톨리아의 대부분, 시리아 북서부(레반트의 북부), 남쪽으로는 리타니 강의 하구(지금의 레바논)까지,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장악하였다. 히타이트의 군대는 전쟁시에 전차를 잘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1] 기원전 1180년 이후에 히타이트 제국은 분열되어 여러 독립된 도시 국가로 나뉘었으며, 기원전 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이 도시 국가들을 신히타이트(Neo-Hittite) 도시 국가라고 한다.

"히타이트"라는 낱말은 구약성경의 "헷 사람들(sons of Heth, 헷 족속)"[2]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에 아나톨리아에서 히타이트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처음에 이들을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와 동일시하였다. 현재는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인이 하투샤를 수도로 한 히타이트 제국(기원전 18세기경~기원전 1180년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신히타이트 도시 국가들(기원전 1180년경~기원전 8세기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식별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수필률리우마 1세 와 무르실리 2세 당시의 히타이트 최대 영토

기원전 18세기경, 쿠샤라 왕 아나타스가 카파도키아 고원을 정복하였다. 히타이트 고왕국(古王國)의 조상은 라발나스인데, 그 아들 하투실리스는 하투사스를 수도로 정했다. 무르실리스 1세(Mur-silis Ⅰ, 기원전 1624~기원전 1594?)는 북시리아를 정복, 바빌론을 공략했다. 신왕국의 시조는 투드하리야스 2세로서 수필룰리우마스 1세(Suppiluliumas Ⅰ, 기원전 1380~기원전 1340?) 시대에 히타이트의 판도는 가장 커졌다.

히타이트인은 소아시아의 지배를 강화하여 미탄니를 속국으로 하고, 북시리아를 세력 아래에 흡수, 이집트 다음가는 대국이 되었다. 무와탈리스는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의 군대와 카데시에서 싸워서 격퇴했다(기원전 1286). 하투실리스 2세는 이집트와 화약(和約)을 맺어(기원전 1269) 오리엔트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동편에서는 아시리아에게 압박되고, 소아시아 서부에서는 프뤼기아가 대두하여, 그리스계 해상 민족의 침입으로 기원전 1180년 히타이트는 멸망했다.

히타이트인은 기원전 3000년 초 소아시아에 침입하여, 하티인·루비아인·팔라인 등 원주민을 차차 정복, 아나톨리아 고원의 지배자가 된 인도·유럽계 민족. 처음 쿠샤라를 도읍으로 삼았으나, 뒤에 하투사스를 수도로 정했다. 하투사스는 20세기 초에 독일인 빙클러(H. Winckler)에 의해서 발굴되어, 대신전이나 성채(城砦)가 발견되었다. 왕실 기록문서고에서 히타이트어나 아카드어로 쓰인 점토판 문서 약 2만 매 이상이 출토되었다.

말과 전차, 후르리인(Hurrians)에게 말 기르는 법을 습득한 히타이트인은, 말에 끌리게 한 6개의 바퀴살을 가진 전차를 이용하여, 미탄니군이나 이집트군과 싸웠다. 전차에는 마부와 활쏘는 병사가 탔다. 전쟁의 주된 목적은 포로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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