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준경전도사의 유골은 이 곳 해변가의 순교현장으로 이장하고 묘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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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준경전도사의 유골은 이 곳 해변가의 순교현장으로 이장하고 묘비를 세웠다.
  • 박동현기자
  • 승인 2015.08.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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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엔 음식과 의복을 가져다주고, 임산부에겐 산파 역할을 자처했으며, 염병이 퍼진 동네에 들어가 몸을 아끼지 않고 섬겼다

한국장로교육원 총동문회(회장: 이덕선장로) 국내성지 순례단은 8월27일 오후 1시경 김제 금산교회를 출발하여 오후3시30분경 전남 신안군 증도(島)에 도착했다. 한국교회 ‘순교신앙’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당시는 여목사 안수제도가 없었다)의 삶과 신앙의 궤적은 증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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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그리고 따라가야 할 순교신앙의 발자취는 섬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전남 신안군, 1004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하여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이 곳. 그 중에서도 증도는 아시아 최초 ‘슬로우 시티’로 선정된 청정 해역의 아름다운 섬이다. 증도에는 담배가게가 6개 정도 있었는데, 청정이미지에 협조하여 스스로 판매를 중단했다는 증동리교회 이상원목사의 설명이 있었다. "그럼 술은 ?" 묻자, 최근에 청정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일반관관객이 몰려들자 식당 등에서는 식사와 함께 술을 주문하면 함께 판매한다고 했다.

순교신앙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

증도를 찾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기독교 ‘순교신앙’의 어머니인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 중심지라는 점이다. 문 전도사는 신안군 섬 일대를 직접 발로 오가며 10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그 영향으로 이 곳에서 159명의 목회자와 81명의 장로가 배출됐다. CCC를 설립한 김준곤 목사, 성결교 이만신 원로목사 통합측 전총회장 안영로목사 고훈목사, 치유사역 전문가 정태기목사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이 그 열매들이다.

특히 문 전도사역사의 전도 거점이 됐던 증도는 중동리교회를 중심으로 11개 교회가 세워져 섬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다. 현재 1,700여 명의 증도 주민 중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한 해에 고무신이 9켤레나 닳을 정도로 전도에 앞장섰던 그녀의 희생과 헌신은 주민들에게 복음과 함께 큰 영향을 끼쳤다.

6.25 한국전쟁 기간에 공산주의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했다는 죄"로 총탄과 죽장으로 죽음을 맞은 문 전도사를 따라 수십 명의 성도들이 함께 순교를 당했는데, 그가 끼친 ‘순교신앙’의 뿌리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순교신앙의 피가 서린 선교 현장, 증도는 곳곳마다 문 전도사의 순교 영성을 되짚어볼 수 있는 순례의 길이다. 먼저 방문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은 성결교단이 모금운동을 벌여 건축한 기념물로, 한국교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녀의 삶과 신앙을 정리해 두었고, 관련 자료와 영상으로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순교 당시 문 전도사의 시신은 모래사장에 방치 되었으나 겁에 질린 사람들이 8일 후 교회 뒷산에 묻혔다가 2005년 다시 이 곳 해변가의 순교 현장으로 유골을 이장하고 묘비를 세웠다.

순교 당시 긴박했던 상황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녀의 뜨거운 순교신앙의 현장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증도에 세워진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우전리교회 등 여러 교회들을 만날 수 있다. 증동리교회를 끼고 올라간 산 꼭대기에는 문 전도사가 매주 무릎으로 기도했던 기도바위가 있다. 그녀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 나라와 민족,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애끓는 기도를 멈추지 않은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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