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철장로 선친 김능백목사의 "악의악식"(惡衣惡食)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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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철장로 선친 김능백목사의 "악의악식"(惡衣惡食) 하고..
  • 박동현
  • 승인 2015.04.24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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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성도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입으며 삶으로 목회를 보인 김능백목사
▲ 김능백목사의 장남 김건철장로(서울/동숭/원로) 부자가 남하 했고 누이들은 북에 살아 있음이 확인되어 핏줄에게 제3국을 통해 생활비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악의악식 (惡衣惡食) 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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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기념비 내용, 장하고 미쁘시도다

"주님의 종으로 주님의 교훈대로 주님의 말씀(사상)을 몸소 실천하면서 주님이 가신 길을 가시다가 지처 쓰러지신 주의 종 김능백 목사님을 여기에 소개 하노라. 김 목사님의 양력은 따로 소개 하거니와 목사님은 1950년 1,4 후퇴 당시에 산과 오지에 흩어졌던 교인( 충남예산교회)들을 모아 교인들과 같이 동거동락(同居同樂) 하시기에 끼니를 굶으시면서 까지 각 지방으로 다니시면서 연보(助)를 얻으시고 한편 미군의 물자를 얻어 피눈물로 이룩한 웅장한 성전이 여기 있으니 한구석 한 모퉁이 돌 한 개를 놓기까지 목사님의 정신의 손이 안 가신 곳이 없으시었다.

목사님께서는 몸소 주님의 생활정신을 본받아 악의악식 (惡衣惡食)하면서 교우와 같이 웃고 울고 같이 생활을 하시면서 위로를 가까지 않으셨으며, 특히 조국 통일을 갈망하시는 애국염원과 철의 장막에 고생하는 동포를 생각 할 때에 울분을 참지 못하셨다. 부정과 불의가 가득한 현세대를 총탄 같은 설교로 시정과 회개를 촉구하시며 몸부림치는 기도로 몸을 돌보지 않아 마침내 쇠약하시어 병드시니 교회를 사면(사직)하시고 효성이 지극한 아들 김건철선생 내(엄영선권사)외의 봉양도 효력을 못 보시고 1965년 27일 하늘나라 본향으로 가시니

아 ~ 위대한 사상가요 고결한 인격자요 강직 근면하신 사회개량주의자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사도요 기도와 영감으로 많은 영감록(靈感錄)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던 그 음성을 후세에 영원히 기억하고자 본 교회(예산교회) 교우 일동은 목사님의 사랑을 이루다 기록 할 수 없어 다만 이 기념비를 건립함으로 그 뜻을 삼고자 합니다. 예산교회 교우일동"

아래는 목회 흔적

6.25 한국전쟁 1,4후퇴 때 큰 아들( 김겅철장로)과 함께 장간 남한으로 피난 왔다가 북으로 돌아 갈 줄 알았는데 고향으로 못 돌아가시고 북에 아내와 딸들을 남겨 둔 체 홀로 예산교회서 목회하시다 떠나셨습니다. 함께 데리고 온 장남 김건철장로가 87세(1929) 재력가로써 돈을 쓸 곳에 균형 있게 잘 써서 타칭 “왕회장” 이라 부른다. 장로가 소유가 어떠냐는 별 의미가 없다 주님을 위한 일에 얼마나 어떻게 쓰느냐가 의미가 있다. 그는 6.25 전쟁 후 동산유지에 다니기도 하고 비누를 판매도 하였다 기업이 커지면서 가지고 있던 주식이 돈이 되어 집짓는 을을 하다가 거부가 되어 강남 압구정동 등에 빌딩이 여래 개 있다

1952. 10. 15 김능백 목사 부임(제1대 목사노회 예산교회 연역입니다) 1953. 03. 04 15 간 기와집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 1955. 03. 20 교회 대지 구입(전250평) 1955. 04. 06 예배당 신축위해 기성회 조직 1956. 11. 30 예배당 목사관 준공 1957. 08. 18 지익풍 목사 부임 (제2대 목사) 1959. 04. 07 최정복 목사 부임(제3대 목사) 1961. 04. 02 김능백 목사 재부임(제4대 목사 )1962. 04. 08 원로목사 추대(김능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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