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입장에서 주장하는 토론을 보면서 국정교과서 문제 이해에 도움이 될 수있다.
좌경의 무섭고 지울수 없는 추억들
기자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수년 전에 태어 났고, 북한군이 고향 순천까지 장악할 때는 지금의 내손자 "박하" 정도의 나이였다. 우리가족은 시내에서 좀 깊은 산골 마을로 피난을 갔으며, 아버지가 어린 나를 목에 앉혀 가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솟 보리쌀 이불 등, 5,25전쟁 자료화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 였다. 대포 소리에 놀라 논두렁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걸었다.
충격적인 기억이 강하게 인지되어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좌-우의 여순사건의 그 현장이 고향이고 손양원목사의 두 아들 동인-동신이 좌경화된 학생의 총에 맞기 전에 순천제일교회에 출석했다 나는 그 교회서 나덕환(전 총회장)목사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옆집 형뻘되는 사람이 좌경화되어 낮에는 집에 와서 자고 밤이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상하게 보면서 북한산 따발총(연발)을 그집의 동생뻘 되는 이상 0 이 안내하여 만저 보기도 했다.
내가성장하여 구례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유적지를 탐사하면서 보았다. 원래의 선교사들의 풍토병 예방 수양시설을 미군이 폭격하여 일부 흔적난 남아있다. 호남지역 선교사들은 5,25전쟁 약 10년 후 60년대 초에 왕시루봉에 10 여 동을 새로 짖고 여름이면 풍토병을 피해 이곳에서 살면서 선교전략 등을 구상했다.
왜 미국폭격가 지리산의 선교사들의 요양시설을 폭격했는가? 북한군이 맥아더의 인천상륙 작전으로 북으로 후퇴도 못하고 보급은 끊겼지만 항복도 안 했다. 이곳에 숨어 살면서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 소를 끌고 가고 식량을 훔져하는 일이 계속되자 유명한 지리산 소텅작전으로 시설을 폭격하고 일대에서 북한군 소탕했다는 스토리이다, 동족끼리 전쟁한 과거스토리다.
2015년 현재 남한에 인민군은 없지만, 학습에 의한 자발적 자경화 성향자은 많다. 탈북하여 우리곁에 살고 있는 탈북민이 3만여 명이다. 탈북민 목사 학생 등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북한의 김일성주체사상 교육이 인민(국민)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느낀다. 북한은 유아기에 김일성 주체사상 교육을 위해 어린이를 집단적으로 수용하여 반복학습하면서 미국이나 남한을 증오하고 어버이 수령님을 찬양하게 한다.
그 후도 주체사상교육은 철처하다 (세계 10대 종교에 들 정도) 그렇게 자란 세대가 탈북하여 남한에 와서 10년 이상을 살아도, 대화 중에 김씨 3부자 중에 김정일 김정은 함께 비판한다.
그러나 김일성을 비판하면 침묵하면서 표정으로 동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교육효과라고 느낀다. 이점은 탙북하여 예수믿고 신학생, 목사 일지라도 오랜기간 쇠뇌교육의 효과는 그 대상의 일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입증하는것 같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사상-정서적으로 이질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며 북한은 핵폭탄을 개발, 시위하며 겁을 주고 있다. 우리니라가 미국의 군사력을 의존하고 군비증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마음이 열리고, 통크게 포용하고 교과서를 저술했거나 검증에 참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남북이 종전아닌 휴전상태며, 교육과 이념, 정보의 전쟁에서 북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을 안 하는것 같다.
미국 독일 등 통합된 국가에서는 자국의 역사기록의 다양성이 수용되고 가르처도 큰 문제 될 것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토분단과 이념적 이질의 골이 깊은 북한과 휴전상태에서 대치하고 있다. 통합된 국가들과는 자국의 국사이해, 기록시각, 등 교육의 다양성이 대한민국과 같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