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숙한 삶, 성숙한 감사, 김동엽 목사 (통합측 전총회장 목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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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숙한 삶, 성숙한 감사, 김동엽 목사 (통합측 전총회장 목민교회)
  • 박동현기자
  • 승인 2015.11.10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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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들은 정확하게 닷새 후 1620년 12월 21일, 예상보다 일찍 신대륙 프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감사가 낳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전 총회장 김동엽목사 (통합측)

가을은 삶에 대한 감사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계절입니다. 삶에 대한 감사가 가을에 더욱 깊어지는 것은 자연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많기 때문입니다. 고개 숙인 벼는 제 삶이 시작된 뿌리를 내려다보며 겸손히 추수의 때를 기다립니다. 절정의 자태를 뽐내던 단풍잎도 하나 둘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내일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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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은 밤낮으로 보살펴준 농부의 손길에 영근 결실로 감사를 전하고, 자연은 시절을 따라 내려주신 단비와 햇빛에 풍요로 보답합니다. 결실의 계절이 오면 제 삶의 뿌리를 생각하고, 때가 이르게 되면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자연의 모습은 나의 삶이 스스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로 가능하다는 성숙의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결실로 보답하고 삶을 평가 받는 가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계절인 것입니다.

실상 우리의 삶은 일평생을 감사로만 채워도 부족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성장은 부모님의 은혜이며, 지식은 스승의 은덕입니다. 양식은 농부의 수고이고, 생활의 편리는 노동자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수많은 손길이 내 삶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감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사에 인색할 뿐더러 점점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생명은 응당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은혜는 당연한 것이고 지식은 내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버스를 타도 기사에게 감사 할 것이 없습니다. 물건을 사도 노동자에게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주인에게 감사 할 것이 없습니다. 수고에 대한 대가는 이미 내 돈으로 지불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부가 내 집 앞 쓰레기를 치워도, 물과 전기가 중단 없이 공급되어도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의 임금이 지급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내 돈으로 대가를 지불해 준 것이니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여깁니다.

심지어 정성을 다해 길러주신 부모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는 고사하고 부모 노릇보다 자식 노릇이 더 어렵다고 오히려 불평을 정당화 합니다. 우리는 분명 스스로 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없는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감사’에 인색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친절에도 ‘땡큐 Thank you!’를 연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사합니다’ 대신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으로 감사를 대신합니다. 이것은 인성의 차이라기보다는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을 대표하는 한.중.일 삼국의 정서에는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고, 미국의 정서에는 하나님께 성심을 다해 감사드렸던 청교도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감사에 대한 정서의 차이는 교육의 차이로 이어지고, 교육의 차이가 현실의 차이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에 대한 ‘체면’을 가르치지만, 미국은 감사에 대한 ‘실천’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그들의 정서에 뿌리 박혀있는 청교도 신앙입니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그들이 가르치는 감사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의 꿈을 안고 떠났던 메이플라워호는 출범 두 달 만에 식량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아직도 더 많은 날을 항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도자는 하루 분의 비상식량이라도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모두에게 금식의 날을 정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때 다른 지도자가 “금식은 동의하지만 ‘금식의 날’이라는 표현 보다는 ‘감사의 날’이러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감사의 날이라니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그 지도자는 “감사하지 않습니까? 어려운 항해였지만 우리는 신대륙 가까이 와 있고 우리 중에 대부분은 아직도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신대륙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그들은 시편100편을 읽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찬양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그들은 정확하게 닷새 후 1620년 12월 21일, 예상보다 일찍 신대륙 프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감사가 낳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감사에 대한 말과 태도와 같은 형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기적을 알고, 감사의 근원을 안다면 굳이 감사를 미화 시키지 않아도 되고, 태도를 연습하지 않아도 온전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감사가 사라지는 현상은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경쟁이 주도하는 적자생존 시대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풍성하기만한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각박한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고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인 것입니다.

이 가을, 우리의 감사는 풍요 앞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자연을 통해 성숙의 교훈을 주셨듯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감사는 성숙한 감사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숙한 믿음인 것처럼 감사할 수 없는 중에도 감사했던 욥과 다니엘, 바울의 감사가 성숙한 감사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얼마나 성숙해 갔는가에 따라서 하늘의 뜻을 이뤘는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숙한 인격이란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훈련해야 얻어지는 것이듯 성숙한 감사는 감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끊임없는 바라고 따르며 노력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개 숙인 곡식에서 삶의 겸손을 배울 줄 알고, 영근 결실에서 감사의 근원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삶, 성숙한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김동엽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목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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