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부기고> 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특별한 때만 필요한 분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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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외부기고> 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특별한 때만 필요한 분인지 ...
  • 박동현기자
  • 승인 2015.11.16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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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종교적 신념은 가장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뿐입니다.파리에서 일어난 비극들 그리고 이어질 예측 가능한 싸움들이 더 이상 잔인해지지 않기를...
▲ 김병삼목사

“우리는 흔히 ‘기도합시다!" 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기도가 능력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진정한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무언가 ‘일’이 만들어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들이 그것이죠. 제가 군에서 군목으로 사역을 하던 때, 전방에 있는 많은 부대들이 땅굴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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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을 발견하면 진급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믿음이 좋은? 부대장들이 소위 ‘기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었습니다. 기도하고 땅굴이 어디 있는지 ‘시추’하는 것이죠.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 신앙인들이 실망을 했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한 일들인데 땅굴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죠.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점을 치는 사람이나, 뭔가 신령한 능력이 있다는 사람들을 데려다 물어 보았겠지요. 마찬가지의 실망을 경험하고 말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뭔가를 열심히 했지만 근본적인 물음이 없었습니다. 땅굴을 찾는 것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땅굴을 발견하고 진급을 하는 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일입니다. 단지 그 당시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와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우리들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없는 영성과 열심 그리고 능력을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려 했을 뿐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참 열심인 교회들이 그렇게 덕스럽지만은 못했습니다.

(또 오해할까봐. . .신앙의 열심과 은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 .)

열심은 있는데 비인격적이고, 은사는 있는데 교만하고 다툼이 있는 모습들, 별로 덕스럽지 않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한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이란, 각자에게 다른 섬김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열심이 어쩌면 똑 같은 열심을 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시 때가 되면 똑같이 부모들이 기도하고, 군에서 진급철이 되면 똑같이 기도하다가 흩어져 버리는 모습들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특별한 때만 필요한 분인지 말이죠.

군목시절 진급철은 꼭 입시 때와 같았습니다. 정기적으로 있는 11월의 군대 진급 시즌이 생각이 납니다. 진급이 발표되기 전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날이 지나면 새벽예배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믿음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데, 문제는 그 믿음 좋은 사람만 모아 놔도 예정된 진급자의 몇 배가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아무리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해도 성공보다는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고, 하나님께 대하여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우리가 진실한 기도를 한다면, 진급을 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급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만일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휘관이 된다면, 그 지휘관이 지휘를 하되 믿음으로 하기는 하는데 실력이 없어 문제를 일으킨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덕’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기도를 바꾸면 하나님이 보인다! 혹시라도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가리지 않도록. . .주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100%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들 말입니다.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하나님이 드러나는 일 하나 하나를 시작해 봅시다. 무지한 종교적 신념은 가장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뿐입니다. 우리의 본성에 하나님의 마음이 자리 잡는 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비극들 그리고 이어질 예측 가능한 싸움들이 더 이상 잔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부터인가 하나님의 마음이 시작되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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