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오르바는 골리앗의 증조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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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오르바는 골리앗의 증조할머니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4.28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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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 7일자의 이란 잡지 속에 나오는 “The Jerusalem Post International Division”이라는 제목의 글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소년 다윗과 거구 장수 골리앗 싸움 이미지

구약과 신약성경에 대조적인 두 인물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마르다와 마리아, 이들이 그 실례들이다. 또 하나의 예를 소개하자면 나오미의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다. 이들은 둘 다 모압 여인들인데, 베들레헴에서 모압 지역으로 이주한 아비멜렉과 나오미 부부의 두 아들과 결혼한 이방여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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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한 집안의 아들들과 결혼한 동서지간이다. 똑같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이후 이 둘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먼저 큰 동서 오르바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녀는 평소 시부모와 남편을 선대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권고에도 그녀와 함께 유대 땅으로 따라 나섰던 착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어머니의 집요한 설득에 그만 설복 당한 채 결국은 고향 집으로 떠나간다. 이런 사람들을 ‘안전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라 한다. 하나님을 향하건 사람을 향하건 신실함은 끝까지 발휘되어야 함에도 오르바는 그러질 못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이방 나라 유대 땅에 가서 사는 것도 각오했지만, 하나님이 시어머니를 망하게 하셨다는 소망 없는 얘기에 마침내 그녀는 모든 희망을 꺼버리고 고향으로 떠나갔다. 이런 사람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 자신의 생을 걸지 못한다. 한 마디로 오르바는 안전을 추구하는 인생이었다.

오늘 정치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 많다. 한 마디로 ‘철새 정치인’ 말이다. 권력 따라 이해타산에 따라 옮겨 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교회가 힘들면 떠나고 다른 교회를 찾아 옮겨 다니는 ‘철새 신앙인들’도 적지 않다.

다음은 룻기서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룻이다. 그녀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여인이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시어머니의 거듭되는 설득에 오르바는 절망하여 고향을 향해 떠나버렸지만 룻은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 남의 땅 유대로 떠나고자 한다.

동서 오르바처럼 그녀도 시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도 많았다. 고향 땅과 부모 형제를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13절에 나오는 시어머니의 말이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여호와의 징계와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과 함께함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오르바로 하여금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게다.

뿐만 아니라 룻이 마음먹고 베들레헴까지 갔다고 치자. 그들은 이방 사람들을 아주 멸시하고 싫어하는 민족 아니던가?

고향을 등지고 떠난 가문의 과부를, 그것도 이방 여인을 환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고향으로 돌아간 오르바의 생각이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룻의 결심이 얼마나 단호하고 신앙적이었는지 시어머니도 더는 권면하지 못하고 함께 유대 땅으로 출발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버이 주일 때 흔히 설교되는 것처럼 그녀가 효부여서였을까? 효부가 아니라 말할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가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야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었다.

룻 16-17절을 참조해보자.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과 ‘여호와’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아는가? 세 번이나 언급되고 있음에 주목하라. 그렇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절망적이고 불안한 미래라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떠나지 않는다면 두려움도 걱정도 없는 그런 여인이었다. 우리가 모두 추구하고 좇아야 할 모범이 틀림없다.

처음엔 비슷했으나 마침내 오르바와 룻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했다. 하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수 있음을 놓쳐선 안 된다.

이제 두 사람이 내린 선택 후 그들에게 주어진 결과가 궁금해진다. 먼저 하나님과 그 백성을 선택해서 낯선 미지의 땅 유대 베들레헴으로 시어머니를 따라간 룻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유대 땅에서 보아스라고 하는 최고의 남편을 만나 그의 아내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어 다윗과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인생대박을 경험한다. 이런 날이 그녀에게 임할 줄을 짐작이나 했을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룻에게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르바의 경우를 보자. 성경은 이후 오르바의 삶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1997년 6월 7일자의 <이스라엘>이란 잡지 속에 나오는 “The Jerusalem Post International Division”이라는 제목의 글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룻과 오르바 모두 강인한 여인이었다... 나오미에게 등을 돌렸던 오르바는 골리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기재된 <Two Sisters, Two Nations, Two Enemies>이란 제목으로 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참조해보자. “오르바는 룻과 달리 모압으로 돌아가 거인족 르바임의 후예인 블레셋 사람과 결혼했다고 한다.

이후 오르바는 이스비를 낳았는데, 이스비의 아들은 바르실래이고, 바르실래의 아들이 가드의 거인 골리앗이었다. 그러므로 다윗과 골리앗은 룻과 오르바의 증손자 세대인 셈이다. 오르바는 자신의 아들이 테러와 살인에 연루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불행했을 뿐더러 죽음을 갈망했다.

믿음의 가정에 시집 간 그녀는 하나님을 믿는 가문에 속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은 다른 신을 섬기는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오르바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 묘사되어 있는 자료이다. 위의 두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유대인의 자료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성경 속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장면’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내용도 없으리라. 이 유명한 두 사람의 증조할머니가 룻과 오르바였다는 게 사실이라 생각해보라. 이보다 더 큰 반전과 아이러니는 없을 것이다. 

오르바에 관해서는 성경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녀와 골리앗의 관계가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 그녀는 동서 룻과는 달리,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 이전에 섬기던 자기 신에게로 가서 지옥백성이 되었을 게 틀림없다.

눅8:50절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믿기만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처럼 본문의 룻처럼, 끝까지 지속되는 믿음이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고 살면 좋겠다.

글을 주신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 계명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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