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의 뿔이 주는 깨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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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의 뿔이 주는 깨우침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9.27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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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한 것이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이 해결한 방법이 뭘까? 바로 ‘소유의 개념’을 적용한 것인데, 인류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동물로 소를 꼽을 수 있다. 소는 우리에게 가죽도 주고 맛있는 살이나 내장까지 다 주는, 버릴게 없는 동물이다.

오대식 목사라는 분이 쓴 『교회를 세우는 교회』란 책에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한때 아프리카에 검은 코뿔소가 멸종 위기에 놓여있어서 그것을 복원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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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아프리카에만 코뿔소가 40만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2000년도에 들어서 40만 마리였던 코뿔소가 2천 마리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복원을 할까 고민하던 중 국제보호동물단체의 노력으로 2010년에 4천 마리로 두 배를 늘렸다고 한다.

코뿔소의 수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활용됐을까? 첫 번째 도입된 생각이 규제를 통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코뿔소를 잡아 죽이는 이유가 뭘까? 코뿔소의 뿔을 잘라서 팔려는 것 이다. 그래서 코뿔소를 죽이는 밀렵꾼들에게 벌금을 매기거나 감옥에 집어넣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첫 번째 방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 그런지 아는가? 코뿔소의 코뿔이 1kg당 미화 5만 불정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천 만 원 이상 나간다고 한다.

무거운 형벌보다는 1kg당 5만 불이나 나가는 한탕의 유혹이 더 컸던 것이다. 그래서 이 첫 번째 복원방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생각해낸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다. 밀렵꾼들이 코뿔소를 죽이는 이유가 뭔가? 값비싼 뿔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코뿔소의 뿔을 미리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코뿔 하나 때문에 소중한 코뿔소의 생명이 희생된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희생과 낭비인가?

그런데 이 방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냐? 동물보호단체에서 코뿔소의 코를 제거하는 속도보다 밀렵꾼들이 코뿔소를 죽여 코뿔을 파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세 번째 방법이다. 말꼬리 다발로 가짜 코뿔소의 뿔을 만들어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천정부지로 판매되던 코뿔의 가격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복제물이 진짜 밀수품을 대체하지 못하고 진짜의 값만 올려놓는 비극적 결과를 낳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한 것이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이 해결한 방법이 뭘까? 바로 ‘소유의 개념’을 적용한 것인데, 인류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동물로 소를 꼽을 수 있다. 소는 우리에게 가죽도 주고 맛있는 살이나 내장까지 다 주는, 버릴게 없는 동물이다.

일부 불교권을 제외하고선 모든 나라에서 소를 즐겨 먹고 있다. 그런데 소가 이렇게 사람들의 소비가 많은 동물이라면 제일 빨리 멸절되었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 소가 이렇게 많은 이유가 뭐냐는 걸 착안한 것이다.

사람들은 소가 내 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코뿔소가 내 것이라는 소유의 의식을 심어줬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관광을 오면 그 수입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그러자 사람들이 코뿔소는 내게 이윤을 창출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코뿔소가 보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유익한가?’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득을 주지 않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만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나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생각은 없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뭘까? 빌 1:1-5절에 답이 나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했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만큼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즐겨 읽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Messenger)일 뿐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내용인 '메시지'(Message)도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는 구별되는 참 빛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오늘 나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세상이 인정하는 차별화 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복된 하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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