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아제르바이잔 측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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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아제르바이잔 측 입장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12.13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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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의 첫번째 법령 중 하나는 예레반(아르메니아 수도)을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로 옮기고, 아르메니아의 수도로 발표하는 것이 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920년 11월 볼셰비키 당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인 지역인 잔게주르를 아르메니아의 편입시켰습니다.
 람지카짐오글루 테이므로브(Ramzi Kazim Oglu Teyrumov)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고대 아르메니아 땅이라는 주장에 대한, 아제르바이잔 측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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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기자의 네이버 이메일로 보내온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수정/편집없음)

요즘 아제르바이잔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7일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의 군사 도발에 직면해 대규모 전쟁에 가담해야 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그리고 1993년부터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자기의 영토에서 싸우고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통상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라는 것을 언급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지역은 국제법상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아제르바이잔의 영토가 되어 왔습니다.

카라바흐는 25만~30만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턱뼈가 발견됐을 정도로 인류 문명의 역사가 오랜 곳입니다. ‘검은 정원’ 혹은 “거대한 정원” 이라는 뜻의 아제르바이잔어인 ‘카라바흐’가 공식적인 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부터로 알려져 있다. ‘나고르노’라는 수식어는 산악 지역임을 뜻하는 러시아식 표기다.

근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1805년 카라바흐의 지도자였던 이브라힘 칸은 (Ibrahim khan) 러시아 제국의 스시아노브 장군과 (Tsitsianov)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의 카라바흐 칸국은 (Karabakh khanate) 독립 국가로서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큐래크차이 조약이라고 (Kurakchay Treaty) 불리는 이 조약에서 (이 조약의 전문은 인터넷에 있습니다)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 인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러시아 제국과 페르시아 전쟁 결과 1813년에 귈뤼스탄 (Gulustan), 1828년에 투르크맨차이 (Turkmanchay) 조약들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들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의 북부는 러시아 제국의, 남부는 이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갈라진 이후 카프카스 지역을 얻은 러시아 제국은 대규모 아르메니아인 이주 정책을 펼치게 된다.

터키와 이란의 무슬림 인구로 둘러싸여 있는 현실을 러시아는 위협으로 느꼈던 것이다. 종교와 문화가 유사한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켜 장벽을 두고 보호장치를 만들고자 했다. 이렇게 하여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카라바흐 땅에 정착하게 된다.

카라바흐 주민 구성비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인을 넘어선 것은 바로 이주 정책 때문이며, 불과 2년만인 1830년 그 목표를 달성한다. 아르메니아인 작가 스테판 자바르얀(Stepan Zavaryan)은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한 후 카라바흐 지역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들 마을 75개가 파괴되어 사라졌다고 전하고 있다.
그후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1918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는데, 파리 강화회담에서 제1차 세계대전 승리국들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인정합니다. 그때 또한 카라바흐 뿐만 아니라, 잔게주르 지역까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되었습니다.

1918년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의 첫번째 법령 중 하나는 예레반(아르메니아 수도)을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로 옮기고, 아르메니아의 수도로 발표하는 것이 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920년 11월 볼셰비키 당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인 지역인 잔게주르를 아르메니아의 편입시켰습니다.

그리고 1921년에 볼셰비키 당의 코카서스 지역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내에서 유지시키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일부 아르메니아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내에서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 카라바흐에 나중에 이주해 왔다는 것을 자기들 또한 증명합니다. 즉 1978년에 카라바흐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자기들의 카라바흐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스러운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고대 아르메니아 영토라면 왜 수도에 대한 고대 아르메니아 이름이 없을까요? 수도의 고대 이름이 칸캔디이기 (Khankendi) 때문입니다. 칸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은 나고르노 카라바흐 수도를 스테파 나케 르트 (Stepanakert)라고 부릅니다. 스테파나케르트는 1917년 볼셰비키이었던 스테판 샤우미안 (Stepan Shaumyan)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영토에 아르메니아 역사적 유산이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11월 20일 이후 휴전 상태로 러시아 평화유지군 2000여명이 분쟁지역에 들어와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전개 과정

1980년대 말 소련이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르메니아는 다시 한번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3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아르메니아 영토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아르메니아는 이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대한 침략을 시작했고, 그 침략의 결과로 우리 영토의 거의 20%가 점령 당했으며 7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이 난민이나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국민은 민족 청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아르메니아 정권은 전쟁 범죄인 호잘리 (Khojaly)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613명의 무고한 민간인 중 106명의 여성과 63명의 어린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10개국 이상이 호잘리 대학살을 인정합니다.

지난 1989년 소비에트 인구 조사에서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인구는 189,00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그중 139,000명은 아르메니아인, 48,000명은 아제르바이잔인 및 다른 민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나고르노 카라바흐에 단 한 명의 아제르바이잔인도 남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든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주변 7개 구역에서 인종적으로 정화되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영토의 국가로서 UN 및 기타 국제기구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로부터 점령을 당하는 1993년 당시 4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822, 853, 874, 884)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인접한 7개 지구에서 아르메니아 군대를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적인 철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외에는 비동맹 운동, 유럽연합, 이슬람 협력기구, 유럽 평의회, 유럽 의회, 유럽 안보 협력기구, NATO 등을 포함한 국제기구들도 관련 결정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는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하라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하여 국제 사회의 요구를 이행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역으로 묘사하는 일부 언론 매체를 관찰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체 국제 사회와 특히 위에서 언급한 국제 문서들은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점령 사실을 확인하고 명백하게 비난합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주요 국제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분쟁지역이 아니라, 점령지로 식별되어야 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점령된 지역 인구의 대부분이 항상 아르메니아인이었다고 일부 편향된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이 시작된 1980년대 후반, 아르메니아인 인구는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거주지에서만 우세했습니다.

그 후 몇년 동안 민족 청소 정책의 결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거주지의 4만명의 적지 않은 아제르바이잔 공동체가 자기의 역사적인 고향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또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 외에 아제르바이잔의 인접한 7개 구역에는 아르메니아 인구가 없었음에도, 그 지역들에 순전히 아제르바이잔인이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에 의해 점령당하였습니다.

더욱이 한 특정 지역에서 한 민족이 수적으로 우세한 것은 해당 민족에, 그리고 해당 민족을 지지하는 외국 국가에 그 지역에서 민족 청소를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엔 헌장의 핵심 원칙을 포함하여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아르메니아 정치인들은 종종 자결권 문제를 제시하는데, 아시다시피, 현 국제법상 그리고 유엔 헌장 및 헬싱키 최종 의정서에 의하면 자결권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보전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경우에도 아제르바이잔이 지난 30년 동안 수차례 최고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한다고 해도 아르메니아가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미 자결권을 행사하였으며, 아르메니아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세웠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논리대로라면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세계 모든 지역들에서 다 아르메니아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군사충돌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

아쉽게도 전쟁 반발 이후 아르메니아 측은 여러번 국제법 및 제네바 협약을 어기며,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아제르바이잔의 평화로운 도시들을 포격하는 것은 전쟁 범죄입니다. 아르메니아 포격으로 현재까지 아제르바이잔 민간인 92명이 사망하고 (8명은 아이들) 40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세 번이나 휴전을 잔인하게 어겼다. 10월 10일 인도주의적 휴전이 발표되었습니다. 다음날 아르메니아 영토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간자 도시에 탄도 미사일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아마 언론에서 그것이 초래 한 파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10명이 사망했습니다. 아르메니아가 이것을 부인하였지만, 탄도 미사일 발사가 위성에 의해 관찰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의 짓이 분명합니다.

10월 17일 두 번째로 아르메니아는 똑같은 일을 했고, 휴전이 발표된지 2분만에 휴전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10월 25일에 세번째로 타르타르 지역에 집속탄을 발사했습니다. 7살짜리 소녀 1명을 포함하여 4명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10월 28일 아르메니아 군대는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 카세트 폭탄을 사용하여 아제르바이잔의 바르다 도시에 인구 밀집지역과 상업시설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가하였다. 그 결과 27명이 숨지고 138여명이 부상 당하였고, 민간 기반 시설과 차량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는 전장에서 대응하겠습니다. 우리는 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고 전장에서만 대응하겠습니다.

9월 27일부터 시작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군사충돌의 원인들

많은 사람들이 왜 충돌이 이전이 아닌 지금 일어났는지 묻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1994년 휴전 이후 26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충돌과 희생자가 있었지만 이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변경된 것이 없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26년 동안 협상을 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특히 지난 17년 동안 아르메니아의 이전 리더십과 평화협상 기본 원칙에 동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것이 2018년(부터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정치-군사 지도부가 지난 2년 동안 한 일과 선언한 바를 살펴보면 그들이 계속 아제르바이잔을 자극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또한 그들이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니콜 파쉬냔(주 : Nikol Pashinyan 2018.12월 총리당선)

예를 들어, 지난 7월 (12일) 아르메니아 군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서부의 토부즈 지역에 있는, 분쟁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마을과 군사 진지를 중포로 공격했습니다. 그 결과 아제르바이잔인 군인 4명은 즉시 살해당했고, 76세 주민 1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은 대응해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영토에 군사 목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밀어 내고 그들이 이미 전쟁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충돌이 멈췄습니다. 그것은 단지 4일 동안만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8월 (23일) 아르메니아 군의 교란 부대가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침투하였습니다. 그 부대의 수장이 우리 군에 의해 잡혔으며, 현재 수사 중에 있으며, 그는 우리 민간인과 군인에 대한 테러 행위를 저지르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 27일에 일어난 일 또한 이 정책의 논리적 연속입니다. 그 외에도 그들이 지난 2년간 계속 우리를 자극해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018년 아르메니아 총리 니콜 파신얀은 집권하자마자 자기 아들을 나고르노-카라바흐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2019년 아르메니아 국방부 장관이 미국 방문 중 뉴욕에서 ‘새로운 영토를 위해 새로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2020년 봄에 나고르노-카라바흐 분리주의 정권의 수장이 아제르바이잔의 문화 수도인 슈샤 (Shu Sha)도시에서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아르메니아 정권이 레바논 아르메니아인들을 공개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정착시킴으로써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르메니아 총리는 1년전 ‘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 성명은 평화 협상을 절대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협상 테이블의 주요 항목 중 하나는 점령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으로 반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아르메니아 정권이 말하고 있는 카라바흐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뿐만 아니라 점령한 모든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의미합니다.

그것을 해석하자면,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점령된 영토 1센티도 돌려줄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협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발언 및 행동으로 아르메니아가 협상 과정을 완전히 파괴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아제르바이잔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아제르바이잔을 비난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어려운 사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메니아는 지금 매우 심각한 경제-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집권 이후 새로운 총리가 했던 모든 약속은 문서에 남아 있고 아무것도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나쁜 상황 중 하나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내 여론의 주의를 돌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르메니아가 말하는 이른바 '아제르바이잔이 공격해 온다'라는 의도는 사회를 공고히하고 개인적 정권 통치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논리적이지만, 이번 만큼은 그들은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군사충돌에 제3국의 참여 가능성

아제르바이잔이 절대로 제3국이 전쟁에 관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의 파트너이자 친구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참여를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아르메니아가 그들 중 일부를 이 전투에 참여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전투입니다. 모든 국가들이 그것을 알고 멀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측에서 터키군이 싸우고 있다는 주장들 또한 가짜 뉴스에 불과합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터키는 정치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아르메니아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점령과 관련하여 아제르바이잔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친밀한 우정과 형제애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엔 결의와 국제법을 존중하는 모든 국가는 신중하고 공정해야 하며 아르메니아의 침략과 공격적인 태도에 맞서 아제르바이잔과 연대해야합니다.

터키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터키군도, ‘자유 시리아 군’도 또 다른 시리아인들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현대식 전쟁에 강한 10만의 군대와 확고한 리더십을 가진 아제르바이잔은 자신의 국력으로 아르메니아에 완벽하게 맞서고 있으며,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한 거짓 주장들과 달리, 아르메니아는 PKK와 YPG 테러리스트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로 데려와 아제르바이잔 병사들과 싸우게 한 나라입니다.

아르메니아의 이 모든 시도는 먼저 다른 국가를 분쟁에 참여시키고, 자기의 수치스러운 패배를 은폐하기 위해 국제화하려는 시도이며, 그래서 전장에서 그들을 격파한 것은 아제르바이잔이 아니라 터키와 파키스탄 특수 부대라고 주장합니다.

이전에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F-16이 아르메니아의 Su-25를 격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사항은 러시아와 다른 공동 의장국에서 모니터링 합니다.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9년에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용병의 고용, 사용, 자금지원, 훈련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아제르바이잔이 이미 1997년에 가입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아르메니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은 종교적인 문제인가

유감스럽게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은 종교적 이유로 촉발되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로 묘사하는 일부 언론 기사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제르바이잔은 수세기 동안 다문화 땅이었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항상 아제르바이잔을 관용의 독특한 사례로 존경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 단체들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문화주의는 삶의 방식이며, 국제 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제르바이잔을 폭력적 극단주의로 나눈 세계에 대한 종교적 관용 모델로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종교가 이 갈등의 기반이 되었다면 아제르바이잔과 코카서스의 또 다른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 사이에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은 종교 문제랑 관계가 없으며, 또한 종교적인 분쟁으로 소개하거나 확대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의 해결 방안

아제르바이잔은 카라바흐 지역의 밝은 미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제르바이잔인과 현재 그곳에 살고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은 이것입니다. 양측의 호의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와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인과 아르메니아인은 러시아와 조지아에서 공동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만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인과 약 2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조지아에 살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는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삽니다. 그들 사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기타 국가에서 평범한 이웃처럼 삽니다. 카라바흐에서만 할 수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 사이에 탄생한 가족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화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메니아 지도부는 단순히 공격적인 정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외에는 아제르바이잔의 투자와 개발 경험을 통해 카라바흐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지역 중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쟁의 결과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점령의 결과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수세기 동안 살았던 땅으로 돌아가 아르메니아 인구와 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화해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기억에 남아서 증오를 불러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이상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기자에게 이메일로 보내온 입장 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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