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시대는 갔다’고? 신성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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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시대는 갔다’고?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07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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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절간의 주지 스님에게 전도하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상대가 주지 스님이라 하더라도 아파트 한 채를 상으로 준다면 나부터가 시도해볼 용기를 내 볼 것 같다. 그렇다면 천국과 영생이란 보상이 아파트 한 채보다 못하단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2004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주지 스님이 전도한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 신성욱 교수)
2004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주지 스님이 전도한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 신성욱 교수)

대략 10여 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전도에 대한 기피증과 무용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전도해봐야 통해야지요? “개독교 소리 듣는 마당에 전도가 통하나요?” “밖에서 전도하며 교회오라고 하던 시절은 이제 갔어요.”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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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19 상황엔 전도란 단어조차 언급하기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교인들도 교회에 못가는 마당에 무슨 새신자 전도랍니까?”라며 항변할 것이다. 과연 전도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

화진화장품 박형미 부회장은 목표달성에 관한 직원교육을 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150만 원짜리 화장품 2개를 팔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안 든다. 그러자 박 부회장은 “그럼, 모르는 사람에게 화장품 2개를 팔면 아파트 한 채씩 드리겠습니다.

자 이제 팔 수 있는 사람 손드세요.” 강의를 듣던 모든 사람이 손을 든다. 왜 똑같은 화장품인데 팔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을까? 아파트 한 채란 엄청난 성과금이 보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미가 당기고 값어치가 나가는 목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전도 제일 많이 하는 이에겐 성지순례 보내준다 하면 어찌 될까? 이미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과거에 내가 부목사로 사역한 교회에서 전도왕을 뽑아서 성지순례를 보내준다고 했더니, 대상을 받은 장로님이 무려 300명을 전도하는 걸 보았다.

보상을 크게, 그리고 세게 잡으면 사람들의 행동과 움직임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런 보상 없이는 안 되는 것일까? 보상 없이는 왜 못하는 걸까?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에 대신 못 박히시고 천국과 영생을 보상으로 주시지 않으셨나? 이미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보상이 예비되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 각자가 전도 한두 명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당장 교회에서 전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에겐 34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상으로 준다고 해보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전도에 몰두할 것이다.

만일 절간의 주지 스님에게 전도하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상대가 주지 스님이라 하더라도 아파트 한 채를 상으로 준다면 나부터가 시도해볼 용기를 내 볼 것 같다. 그렇다면 천국과 영생이란 보상이 아파트 한 채보다 못하단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아파트 한 채를 상으로 내거는 것보다 천국과 영생이란 보상에 구미가 덜 당기는 것일까? 그건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이루어질 꿈같은 보상보다는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성취에 더 큰 매력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부터가 그런 성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숲 속의 백 마리 참새보다 내 손아귀에 들어 있는 한 마리 참새가 더 낫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br>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때문에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눈을 키워야 한다. 

열두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육신적 안목으로 판단했기에 부정적인 보고를 백성들에게 올릴 수밖에 없었던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영적 가치관으로 긍정적인 보고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가 잘 안 된다고? 전도의 시대는 갔다고? 천만에다. 절간의 주지 스님도 전도의 열정만 있으면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 

 (사진) 2004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주지 스님이 전도한 그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있는 장면이다. 절의 주지 스님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는가? 불가능은 없다.

‘전도의 시대는 갔어!’란 불가능의 부정적 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육안으로 보이는 이 현실 세계보다는, 영안을 떠서 보이지 않는 중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전도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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